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전체 글2142

우열반으로 ‘학습효과를 높이자’고? 이명박 정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부쳐 언젠가 했던 얘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다. ‘혁명이 따로 없다’. 새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정책의 ‘폭발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15일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학교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우열반 편성과 0교시·심야 보충수업 허용 등의 폭발성은 만만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사회적 논의’나 ‘예고’도 없이 불쑥 발표하는 형식 자체도 가히 혁명적이지 않은가. “전 국민이 환영하고 좋아할 줄 알았다.” “왜 그렇게 중요한 사항을 교사들과 논의 없이 발표했느냐”는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노조 관계자들의 질문에 대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답이다.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집행하는 주무장관.. 2021. 4. 18.
병원 나들이, 의사와 환자 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 환자에게 의사 선택권이 있는가. 형식적으로만 보면 답은 ‘있다’이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혹은 그 방면의 전문가인지에 대한 정보를 기초로 환자들은 의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이 나라 안에 숱한 대학병원, 종합병원에 있는 ‘특진’은 그 선택의 최종 도착지다. 진료는 불과 몇 분에 그치지만 환자는 예의 대단한 명의를 만났다는 것으로도 상당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특진료는 그 ‘위안’에 대해 지급하는 돈이기도 하다. 일반진료보다 훨씬 비싼 진료비를 물면서 환자들이 특진에 집착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명의를 통하여 자기 신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대부분 환자가 주변의 의사들에게서 그런 확신을.. 2021. 4. 17.
세종 나신 곳 이웃에 웬 ‘영어 도서관’? 세종이 태어난 곳 근처 들어선다는 ‘영어 도서관’ 이 나라의 ‘우리 것 푸대접’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도 서울의 내로라하는 특급호텔에서 한복 입은 손님이 쫓겨나고, 역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공부한다는 대학에서 모든 강의를 100% 영어로 한다는 소식을 확인하면서 사람들은 실소와 분노를 금치 못한다. 그게 우리 핏속에 남은 민족적 정체성의 자취일까. 세종대왕이 좌정하신 서울 한복판을 서울시가 ‘한글 문화관광 중심지’로 꾸민다면서 일대를 ‘한글마루지’로 선포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식당가를 ‘광화문 아띠’라 명명하려다가 세간의 반발의 산 게 석 달 전이다. [관련 글 : ‘아띠’? 광화문, 혹은 세종대왕 수난기] 그런데 이번에는 종로구가 또 한 건을 벌였다. 종로구에서는 세종대왕의 생가가 .. 2021. 4. 16.
영남 보수 ‘성골’의 예상치 못한 표심 구미시 갑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 38.1% 득표, ‘예상 밖 선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무사히 끝났다. 일여다야 구도로 치러지는 선거는 여당의 압승과 분열된 야당의 참패를 빚을 것이라고 예견되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과반수를 점하고 있던 여당은 제2당이 되었고 지리멸렬했던 제1야당은 제1당의 자리에 올랐다. 야권연대를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외친 신생정당은 호남을 석권했다. 아무리 죽을 쑤어도 집권 여당이 승리하는 그간의 선거 공식을 간단히 뒤집어 버린 이 결과 앞에서 패배한 정당은 당혹했고 승리한 정당들은 환호했다. 선거 결과가 전해주는 ‘민심’ 앞에서 모골이 송연했던 게 어찌 패자뿐이었을까. 20대 국회의 판도를 뒤엎어버린 이번 결과는 선거는 기본적으로 ‘심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 2021. 4. 15.
소와 아버지에게 바치는 <워낭소리> [영화평] 다큐멘터리 영화 이충렬 감독의 아내와 함께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상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고 왔다. 지난해 3월 를 본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이 도시에는 다큐멘터리 상영관도 없고 괜찮은 예술영화 따위도 들어오지 않는다. 챙기지 않으면 못 보겠다 싶어서 서둘러 나는 난생처음으로 인터파크에서 표를 예매했고 부리나케 대구를 다녀온 것이다. 대충 위치가 거기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거의 10년 만에 찾은 도심은 낯설었다. 영화관은 도심의 한 빌딩 3층이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아내는 ‘불나면 큰일 나겠다’고 중얼거렸다. 워낙 화제가 되어서인가, 200여 석의 자리가 관람객으로 꽉 찼다. 자리는 좁고 불편했지만,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낡고 오래된 상영관이어.. 2021. 4. 14.
그 딸의 ‘좌익 아버지 찾기’와 역사적 진실 ‘국내파 사회주의자들의 최후 집결체’ 경성 콤그룹의 핵심 이관술과 그 유족 이야기 사회주의자 이관술(李觀述, 1902~1950)을 이름으로나마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봄, 최백순의 을 읽으면서였다. ‘알려지지 않은 별, 역사가 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만만찮은 저작을 읽으면서 나는 당황했고, 이동휘와 박헌영, 김재봉과 권오설 등의 그나마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낯선 이름들의 이력 앞에서 절망했다. 그것은 임시정부를 포함해, 망명지 중국 땅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나름 잘 알고있다고 여겼던 한국 현대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내가 ‘완전히 무지’하다는 통렬한 깨달음 탓이었다.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을 비롯한 5인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기사는, 그런 상황에서 당대의 역사적.. 2021. 4. 13.
영남 ‘성골’ 유권자에게 뛰어든 서른넷 여성 구미시 갑 선거구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를 찾아서 4·13 총선거가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천과정에서 유례없는 막장을 연출해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놓고선 정치권은 이제 바야흐로 표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처음엔 ‘일여다야’ 구도라더니 이제 일부 지역에서도 ‘다여’가 되면서 선거는 결과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지만 정작 유권자들이 선거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뻔한 구도로 이루어지는 선거, 결과야 ‘안 봐도 비디오’인 곳이 영남에 좀 많은가 말이다. 그중에서도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단 한 명의 야당 선량도 내지 못한 영남 보수의 ‘성골(聖骨)’ 경상북도의 경우, 선거는 요식절차와 다르지 않다. 40년 영남 진보 유권자의.. 2021. 4. 13.
‘boggi’, 어떻게 읽을까 원초적 신체 부위를 이르는 ‘금기의 언어’ ‘boggi milano’라는, 이탈리아에서는 꽤 알려진 패션 브랜드가 이번에 국내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의 브랜드 발음이 좀 ‘거시기’해 수입사 쪽에서 고민 끝에 그 발음을 이 나라 ‘미풍양속’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결정했다는 소식[관련 기사 바로 가기]이 있었다. 그렇다. 애당초 브랜드 철자 중 ‘g’가 마땅히 ‘ㄱ’ 발음일 거로 생각했던 수입사 측에선 문제의 발음이 불길하게도(!) ‘ㅈ’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boggi, it’s your style‘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이 나온다. 바지런한 누리꾼들은 이 브랜드가 한글 표기를 어떻게 할지에 집중되었는데 ‘봇찌’설과 ‘보우쥐’설이 맞섰다고. ‘.. 2021. 4. 12.
“미래를 위해 생각을 매도해야 하는 사회가 무섭다”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불온’한 사회 ‘불온(不穩)’의 사전적 의미는 “①온당하지 않음. ②(일부 명사 앞에 쓰여)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말은 ②의 뜻으로 널리 쓰인다. 불온사상, 불온서적, 불온 학생, 불온 인사, 불온한 태도……, 등에서처럼. ‘불온’의 정치 사회학적 의미 ‘불온’의 반대편에 ‘온건(穩健)’이 있음을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건’의 뜻풀이는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맞고 건실함.’이다. 그러나 그 속뜻은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고, 맞서는 성질이 없음.’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불온’이 매도당하고 백안시되는 것은 ‘온건’이 그.. 2021. 4. 11.
63세 라이더,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다 라이더, ‘자전거 세계일주’, 그 대장정을 시작하다 일단 그의 파란 많은 삶에 대해선 줄이기로 한다. 적어도 60년쯤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만그만한 삶의 굴곡과 사연쯤은 장편소설 분량으로 갖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초년에 부모의 품을 떠나 완고한 양부(養父) 슬하에서 자랐다거나 그 사춘기가 만만찮았다는 건 굳이 숨길 필요가 없겠다. 한창때엔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당연히 그걸 까먹고 재기하겠노라고 용을 쓴 세월도 짧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스쿠버 활동을 통해 수중(水中) 사진을 오래 찍었고, 특별히 글쓰기의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스쿠버 관련 잡지에 꾸준히 글을 썼다. 에도 잠깐 ‘물 이야기’를 연재했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동해의 한적한 어촌에 살기 시작한 십여 년 전에 그는 산악자.. 2021. 4. 10.
[사진] 봄 아닌 봄, 벚꽃 행렬 봄 같지 않은 봄의 벚꽃 행렬 오늘을 투표일이 아니라 흔치 않은 임시 공휴일로만 이해한 이들이 훨씬 많았나 보다. 11시쯤 가족들과 함께 인근 투표소로 가 투표를 했다. 노인대학 로비에 마련된 투표소는 한산했다. 선관위에서 예측하듯 투표율은 시원찮은 모양이다. 허리가 잔뜩 굽은 안노인 한 분이 힘겹게 투표소를 나서는 걸 보고, 딸애가 그랬다. “할매, 집에서 쉬시지 않고선…….” 아내가 초를 쳤다. “말조심해라. 그러다가 경친 일도 있지 않아?” 지난 2004년 총선 때의 촌극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노인이 던진 표의 무게가 내 그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노인의 위태한 행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오늘 아침 의 머리기사는 “총선 ‘계급 배반’의 오류 범하지 맙시다”였다. 노.. 2021. 4. 9.
항저우 서호(西湖)와 ‘공산주의’ 임시정부 답사 길에 들른 항저우의 담수호 ‘서호(西湖)’ 항저우(杭州)에 들른 것은 지난 1월 임시정부 노정 답사단 여정의 둘째 날이었다. 우리는 임시정부 항주 시기의 첫 청사였던 군영반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에는 임시정부 항주 옛터 기념관을 거쳐서 전장(鎭江)으로 떠나기 전에 짬을 내 서호(西湖)에 들른 것이다. 항저우(杭州)는 장강(長江) 델타 지역에 자리 잡은 저장성(浙江省)의 성도(省都)다. 중국의 7개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이 도시는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일찍부터 대운하를 이용한 상업이 발달하였다. 10세기에 항저우는 난징(南京)과 청두(成都)와 함께 남송(南宋) 문화의 중심지였다.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 남송의 수도였는데.. 2021.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