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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무엇을 빌 수 있을까

by 낮달2018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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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의 세시 풍속

▲우리 집 찰밥. 지리산 밤을 넣었다 .

정월 대보름이다. 아침에 ‘찰밥’(경상도에선 ‘오곡밥’이란 이름보다 찰밥으로 주로 불린다.)을 먹었다. 아주까리 나물은 여전히 입안에서 행복한 미감을 선사해 준다. 부럼은 미리 깨물었다. 어젯밤 지난달에 산 지리산 밤을 깎으면서 식구들 모두 하나씩 깨물어 먹었다.

 

같은 보름일 뿐, 그게 더 클 이유는 없는데도 우리는 정월 보름을 연중 가장 큰 보름으로 여긴다. ‘상원(上元)’이라 불리기는 하는 이날의 비중은 설날에 뒤지지 않는다. 요즘이야 대보름이라고 해도 오곡밥을 지어 먹거나 보름달이나 구경하면서 보내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연간 세시풍속의 절반 가까이가 정월에 몰려 있고 그 중 대보름과 관련된 세시풍속이 무려 40~50건에 이를 만큼 대보름은 우리 세시풍속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대체로 연간 세시풍속 행사는 모두 200건에 조금 못 미치는데 그 중 1/5에서 1/4에 이르는 행사가 몰린 날이 정월 14, 15일인 것이다.

 

설날이 한 해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기림을 받는다면 달의 운행을 중심으로 한 태음력을 사용해 온 우리 사회에서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이 기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농경 사회에서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다. 그것은 여성으로 인격화되고 여신-대지로 이어지면서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가 가진 생산력으로 이해된다.

▲ 지신밟기는 마을의 안강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민속놀이다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쥐불놀이 .정월의 쥐의 날에 행해지는 행사였다 . 나무위키

대보름 전후의 동제(洞祭)나 줄다리기 등이 바로 그러한 상징으로 연결되는 세시풍속이다. 동제 신은 남신보다 여신이 두 배에 이르는데 사람들은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빌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가 주로 대보름날의 행사로 베풀어지되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행해지는 까닭도 비슷하다.

 

대체로 줄다리기는 성행위로 이해되는 듯하다. 줄다리기의 편 가르기는 여러 방식이지만 모두 남자 편(수줄) 여자 편(암줄)으로 나뉘고, 암줄이 이겨야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점은 같다. 따라서 대개 여자 편이 이기도록 남자 편이 양보하는 것이 묵계로 되어 있다고 한다.

 

대보름에 행해지는 기풍(祈豊)·기복 행사는 대체로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발생시키고, 또 결과는 원인과 유사하다는 원리’에 바탕을 둔 ‘유감주술(類感呪術, 모방 주술)’에서 비롯한다. ‘쥐[子]의 날’에 행하는 쥐불놀이, 과일나무의 가지 친 데에 돌을 끼워 두면 과실이 열린다는 나무 시집보내기[가수(嫁樹)], 볏가릿대 세우기 등이 그것이다.

▲무자년 보름달 . 밤 8 시 반께 찍었다 .

대보름의 세시풍속에 담긴 신앙과 세계관은 무격신앙(샤머니즘)의 원화소복(遠禍召福)과 밀접히 연관된다. 풍년과 복을 비는 행위는 액막이 등 축사(逐邪)의 의식과 이어진다.

▲ 나무 시집보내기. 한국학 중앙연구원

쥐불놀이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액을 물리치는 상징적 행위이듯 매귀(埋鬼), 또는 메구로 불리는 지신밟기도 같은 기능을 한다.

 

귀신을 묻든[매귀(埋鬼)], 지신을 밟든 그것은 터가 센 곳을 찾아가 잡귀가 발동하지 못하도록 눌러놓음으로써 동네나 가정의 무사 평안을 비는 것이다.

 

지신을 밟는 곳은 마을의 당산나무, 공동우물, 마을 입구, 다리, 그리고 기가 센 곳이며, 개인 집에서는 대청의 성주, 부엌의 조왕, 광, 곳간, 우물 대문, 뒤란의 장독대 등이다.

 

대보름의 세시풍속은 ‘망월(望月)을 논다’는 달맞이 행사로 절정을 이룬다. 마을의 높은 산에 올라 달집을 세우고 달 뜨는 시간에 맞추어 태우는 이 풍속을 내 어릴 적에는 ‘달불 놀이’라 불렀다. 이제 숲이 우거져 길도 제대로 찾을 수 없는 산에 올라가는 일도 없고, 산불을 경계하게 되면서 쥐불놀이도 시들해진 듯하다.

 

아이들에겐 대보름이 무싯날과 다른 점은 그나마 ‘찰밥’을 먹는 것일 뿐이다. 잘은 모르지만, 찰밥을 먹는 집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낮엔 흐렸는데 대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8시 반쯤 베란다에다 삼각대를 세우고 달 사진을 찍었다. 옥토끼와 계수나무의 전설은 이제 옛이야기다. 흐릿하게 그늘진 달 표면을 바라보면서 막연하게 올해는 무엇을 빌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2008. 2.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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