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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환기한 ‘불편한 진실’

by 낮달2018 2022.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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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싸우는 반도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

▲가족 휴먼드라마로 보든 ,현실에 대한 고발로 보든 ,분명한 건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

지난주 토요일 10시 반께, 나는 아내와 함께 메가박스 3관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상영관 축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동료의 조언대로 일반 상영시간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조조 시간을 예약했다.

 

영화는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지역에선 유일하게 이 복합상영관 한 군데에서만 개봉되었다. 삼성전자 후문에 있는 메가박스 구미 강동점에서의 개봉 여부도 지역 영화 팬들의 관심사였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시내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이 시작될 때까지 3관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뜻밖에 젊은 여성들과, 연인들이 여러 쌍 보여서 아내와 나는 머리를 잠깐 갸웃거렸다. 뒷자리여서 객석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자리가 한 1/3쯤 찼나, 하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빈자리는 꾸준히 메워졌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을 전후한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란 회사가 가진 영향력, 아니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섬뜩하게 환기해 주고 있다. ‘삼성’은 단지 굴지의 국내 대기업의 상호에 그치지 않고 마치 하나의 ‘상징’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 드리워진 ‘삼성’의 ‘그림자’

▲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포스터

더 볼 것 없이 ‘삼성’은 ‘일류’나 ‘최고’의 의미를 대체하고 있다. 삼성은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회사로 꼽히니 일반인들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다. 삼성에서 실시하는 입사 시험 직무적성검사에 지원하는 인원이 연간 2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그것을 웅변으로 입증한다.

 

구체적 통계 숫자로도 삼성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201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삼성그룹의 매출 비중은 23%, 국내 전체 법인의 법인세 비용에서도 삼성그룹의 비중은 14%에 달했다.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17개 상장사의 시가 총액은 지난해 9월 말 297조6,000억 원으로 전체 시가 총액의 23.7%를 차지했다. ‘삼성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흰소리라고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삼성이 올해 대학별 신입사원 채용부터 적용하기로 한 ‘대학 총장 추천제’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삼성의 비대한 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꼼짝없이 ‘대학의 서열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반의 우려 탓에 결국 이 제도가 유보되어 버린 것은 이 나라에서 삼성이 점유하고 있는 영향력의 절대적 크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셈이다.

 

국가 경제와 관련된 여러 객관적 표지, 국제 사회에서의 브랜드 가치 따위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리 탐탁지 않아 보인다. 창업 이래 금과옥조처럼 이어오고 있는 무노조 경영을 비롯하여 이른바 ‘관리의 삼성’을 있게 한 비인간적인 조직 관리 등은 삼성이 기왕에 이룩한 여러 성과를 무력화해 버리는 삼성의 아킬레스건이다.

▲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다룬 국제학술지'IJEOH' 2012 년 4-6월호의 앞뒤 표지 ⓒ 반올림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다루는 이야기도 바로 그 부분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과 대적하는 자랑스러운 반도체 회사 ‘삼성전자’가 백혈병과 희귀 질환을 유발하는 매우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6년간 노동자 79명이 죽었다!

 

그로 말미암아 지난 6년간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 79명이 직업병으로 사망했다. 이들은 대부분 백혈병을 비롯한 재생 불량성 빈혈, 난소암, 상세 불명암, 악성 림프종, 뇌종양 등 희귀 질환과 투병하다 죽었다. 그러나 문제는 삼성이 이를 ‘산업재해’로 처리하는 데 반대하고 있으며, 산재 주무 부서인 근로복지공단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인다는 점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피해를 세상에 알린 첫 제보자였던 고 황유미 씨의 이야기다. 아니다, 딸 유미가 자신의 개인택시 뒷좌석에서 숨지는 걸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 황상기 씨가 거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한 투쟁의 기록이다.

 

영화는 황유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인물과 회사의 이름 따위는 허구화했다. 영화 바깥의 현실, 가공할 힘을 가진 대기업 삼성의 존재를 의식한 결과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찍은 영화가 ‘가족’을 ‘약속’으로 바꾼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고 황유미 씨의 6주기에 이루어진 반도체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기자회견 . ⓒ 반올림

영화는 삼성을 ‘진성’으로 바꾸었지만, 삼성의 그림자는 이 영화의 바탕이 된 고 황유미 씨의 발병에서부터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짙고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이 영화가 개인 기부금과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제작된 첫 한국 영화가 된 것도, 예매율과 좌석 점유율이 높은데도 고작 전국 150여 개 상영관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은근히 시치미를 떼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해당 기업은 외견상 이 영화와 관련된 어떤 논평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 영화의 배경에 삼성의 그림자가 음험하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남은 역설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삼성의 압력 때문이든, 혹은 대기업 극장들의 알아서 긴 결과이든 대중들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상영 기회를 제한한 것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부정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유 시장 경제에 반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입만 벙긋하면 시장경제를 노래하던 신문과 방송들도 입을 닫아버렸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흥행 소식은 긴밀하게 전하던 방송들은 <또 하나의 약속> 앞에서 약속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놀라운 담합, 이해하기 어려운 침묵이다.

▲ 진성의 회유와 위협 ,기약 없는 싸움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진성의 ‘관리’도 소름 끼친다. 죽어가는 딸 앞에 나타난 진성의 관리자는 사표를 종용하고 보상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이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필요할 때마다 집요한 미행과 감시가 이어지고 심지어는 가족마저도 갈라놓으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의 악명 높은 노무관리의 비열한 수단, 방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작은 승리,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아버지는 위대했다. 회유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아버지는 “죽은 딸과 여기 앓는 사람들과 유족들이 당신들이 요구하는 증거”라고 절규하듯 항변한다. 그리고 근로복지 공단을 상대로 한 이 행정소송에서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딸의 산재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은 승리’ 앞에 관객은 느꺼워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진성은 항소했고,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만들어지고 극장에 내걸리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여전히 이 싸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현실에 대한 완곡한 고발로 보든, 특정 기업과 무관하게 한 가족에게 닥친 아픔을 가족애로 견뎌내는 휴머니즘으로 바라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불편한 진실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 현실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상식과 합의가 살아 있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위한 고민은 관객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도 주어진 몫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아버지가 고단한 싸움을 선택한 것은 또 다른 희생자가 더 이상 생겨나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듯, 우리 사회가 또 다른 희생을 용인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014. 2. 11. 낮달

 


▲황유미 11주기인 지난 3월 6일 오후 고 황유미 씨와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에 참가한 이들. 맨 앞이 황상기 씨.

삼성에서 산재로 백혈병을 앓고 죽거나 투병 중인 노동자 문제는 2018년 11월 1일 최종 해결점을 찾았다. 10년 만이다. 진작에 거대기업으로서 삼성이 피해자 중심의 적극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이미 풀렸을 문제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기사 “‘삼성 백혈병’ 보상 11년 만에 마침표…피해자 전원 보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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