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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선산 톺아보기 ④]‘짝퉁’ 이름의 구미 대둔사, 보물 넉 점을 품고 있다

by 낮달2018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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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톺아보기 ④]옥성면 옥관리 복우산 대둔사(大芚寺)

▲ 복우산 대둔사는 조그만 절이지만, 사역 안에 무려 네 점의 보물을 품고 있는 절이다. 보물인 대둔사 대웅전. 오른쪽은 명부전이다.

대웅전과 건칠(乾漆) 아미타여래좌상과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등 보물이 세 점이나 있다는 대둔사(大芚寺)가 옥성면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도 한동안 나는 길을 나서지 못했다.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옛 이름이기도 한 대둔사가 구미에 있다는데 어쩐지 그게 무슨 짝퉁인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미덥지 않아서였다.

 

차일피일하다가 길을 나선 건 2020년 8월 말이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이 내킨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앞세우고 절집을 찾아가는데, 상주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가 국도를 버리고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도 잠깐, 내비게이션은 야트막한 산길로 가잔다. 야트막하다고 느낀 건 착시, 차는 꽤 가파른 산길을 위태롭게 타야 했다.

▲ 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나타나는 개활지에 적지 않은 전각이 들어찬 대둔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

하마나, 하마나 하는데, 차가 산 중턱의 개활지에 닿자, 널따란 부지에 적지 않은 전각이 들어찬 절집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파르게 올라온 산이 복우산(伏牛山)이라니, 차를 타고 오른 산길이 ‘엎드린 소의 등’이라는 얘기다.

 

옥성면 옥관리 1090번지 대둔사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아도(阿道)화상이 446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절집이다. 아도는 해평면의 ‘해동 최초 가람’ 도리사(桃李寺)를 연 이인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설도 있다’는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미덥지 않다는 얘기다.

 

사명대사 유정이 중건하여 승군을 머물게 한 절

 

대둔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1231년(고종 18)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 버렸는데, 충렬왕 때 왕자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중창하였다. 임진왜란(1592~1598) 뒤인 1606년(선조 39)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중건하여 승군을 주둔시켰는데, 당시엔 암자만 1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쇠퇴하기 시작한 듯한데 일제 강점기에는 시왕전의 불상까지 진주의 어느 절로 옮겨 가는 수난에 이어 사찰의 모든 암자가 해체되었다. 최근 신도들이 모금하여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의 사역(寺域)은 원래 대둔사 암자인 청련암(靑蓮庵) 자리로, 대둔사 옛터는 현 위치에서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있다.

▲ 왼쪽이 '대둔사' 현판을 단 요사채다. 오른쪽은 선불장이다.
▲ 원래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승과고시의 과장이나 사찰의 승당이나 선방을 가리키는 선불장. 경내에서 제일 큰 전각이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응진전·요사채 등이 있을 뿐이고, 절 왼쪽으로 오르면 요사채에 이어 절집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절집이 품은 문화재 가운데 국가 지정문화재인 ‘보물’이 네 점이나 된다는 점에서 대둔사가 조그만 절이라는 생각을 멈추게 한다.

 

출입구 맞은편에 공양간이 있고, 그 옆으로 ‘대둔사’라는 편액을 단 요사채가 이어진다. 그 옆은 경내에서 가장 큰 전각인 선불장(選佛場)이다. ‘선불도량(選佛道場)’이라고도 쓰는 선불장은 원래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승과고시의 과장이나 사찰의 승당이나 선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불장을 지나면 절 마당 깊숙이, 꽤 높이 올린 축대 위에 대웅전이 서 있다.

 

내소사 대웅전 닮은 대둔사 대웅전

 

대둔사 대웅전은 17세기 말 건축물로, 전북 부안의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대웅전과 형태가 비슷하다. 절 마당 뒤쪽에 높이 쌓은 석축 위에 올라앉은 대웅전의 모습은 날렵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다포집이다. 팔각형 활주(活柱)가 지붕의 네 모서리를 받치고 있다.

 

1987년 대웅전을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서는 광해군 6년(1614)부터 순조 4년(1804)까지 다섯 차례 보수했다는 기록이 확인됐다. 또 지붕에는 1766년을 뜻하는 ‘건륭(乾隆) 31년 병술(丙戌)’ 글자가 새겨진 장식기와가 남아 있으니 이 날렵한 건물이 견뎌온 세월은 4백 년이 넘는 것이다. 대웅전은 2017년 9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 대둔사 대웅전은 17 세기 말 건축물로 ,전북 부안의 능가산 내소사 ( 來蘇寺 ) 대웅전과 형태가 비슷하다 .
▲ 대웅전 안 보물 건칠 아미타여래좌상. 건칠이란 삼베와 옻칠을 계속 겹쳐 바르는 기법이다. 좌상 좌우에 보물 경장이 보인다.
▲ 대웅전 정면의 꽃살여닫이문.

보물 건칠 아미타여래좌상과 삼장보살도

 

대웅전 안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좌상은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된 건칠 아미타여래좌상이다. 건칠(乾漆)이란 “삼베와 옻칠을 계속 겹쳐 바르는 기법”인데, 경북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건칠 기법으로 조성한, 완성도 높은 불상이다. 고려 후기 불상에서 조선 초기 불상으로 이어지는 불교 조각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불상이라고 한다.

 

세 번째 보물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제석도(帝釋圖), 현왕도(現王圖),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되었던 작품으로, 이 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 삼장보살도는 “유려하면서도 세련된 필치와 안정된 구도, 적색과 녹색이 중심이 된 조화로운 색감 등에서 18세기 전반 불화 양식을 잘 반영”(국가 문화유산 포탈)한 그림이다. 대웅전 아미타여래좌상 오른쪽 벽에 걸린 이 그림은 문화재청의 요구로 훼손을 막으려고  천으로 가려놓았다.

▲ 보물 대둔사 삼장보살도. 현재 문화재청이 보존을 위해 가려놓았다.
▲ 2021년보물이 된 대둔사 경장(經欌)(향좌측과 향우측) 경장은 경전 보관함이다.

2021년 보물이 된 경전 보관함 ‘경장’

 

대둔사를 다녀오고 난 뒤에 지정된 보물이 하나 더 있다. 2021년 1월에 지정된 ‘구미 대둔사 경장(經欌)’이다. 경장은 ‘경전을 보관하는 함’이다. ‘구미 대둔사 경장’은 뒷면의 명문을 통해 1630년(인조 8)에 제작한 사실을 알려주는 불교 목공예품으로, 제작 시기뿐만 아니라 제작에 참여한 ‘화원(畵員)’, 인출장인(‘引出匠人)’, ‘태장인(炲匠人)’ 등의 정보를 모두 알려 주고 있어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경장은, 좌우 경장의 문짝 안쪽에 각각 2구씩 그려진 사천왕상의 배치를 통해 원래부터 한 쌍으로 제작되어 대웅전의 불단 좌우에 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당시의 문양과 채색을 거의 상실하지 않고 남아 있어 당시의 채색기법 연구 및 선묘불화(線描佛畵)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대웅전 오른쪽, 지장보살과 시왕상(十王像)을 모신 명부전 안에는 1714년(숙종 40)에 조성된 유명도(幽冥圖) 1폭이 있는데, 연대가 뚜렷하여 탱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또 여느 명부전에서는 보기 힘든 조사(祖師)들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다. 또 응진전에는 흙으로 만든 석가여래 삼존상을 비롯한 16나한상과 동자상·나한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 대둔사 응진전. 흙으로 만든 석가여래 삼존상을 비롯한 16 나한상과 동자상 나한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
▲ 응진전의 16 나한상. 16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를 받은 열여섯 명의 부처님 제자를 일컫는다.
▲ 대둔사 당간지주. 아래 향토문화대전의 사진과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대둔사 측에서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 대둔사 당간지주. 강희 5년 명(銘) 당간지주라 이른다

이 밖에도 대웅전과 명부전 앞의 공터에 당간지주가 있는데 소형 당간지주의 북쪽 측면에 ‘강희5년병오(康熙五年丙午)’라고 음각되어 있어 ‘강희 5년 명(銘)’ 당간지주라 이른다. 강희 5년은 1666년(현종 7)인데, 이때 이 당간지주가 세워졌다는 것은 대둔사에 속한 청련암 자리에 소실·폐사된 대둔사가 옮겨 왔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여름 오후의 절집은 너무 고요했다. 혼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녀도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대웅전 앞에 잔디밭을 조성했는데 잘 가꾸지 못했던가, 웃자란 잔디는 마치 잡초처럼 보였다. 보물이 네 점이나 있는 흔치 않은 절집, 대중들의 시주로 중수한 사찰인데도 한여름 뙤약볕 탓일까, 어쩐지 쓸쓸하고 허전했다.

 

대둔사는 해남 두륜산(대둔산) 대흥사의 옛 이름이기도 하지만, 인근 칠곡군 가산면에 또 다른 대둔사가 있다. 신라시대 고찰로 전해져 오는 이 대둔사는 신라 화랑들의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 이후 사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840년(헌종 6) 대홍수로 사역 전체가 물에 잠겼고 1992년 다시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졌으나 1999년 극락전을 세웠다. 현재는 선방인 심검당을 세워 스님 10여 명이 정진하는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대둔사의 ‘둔(芚)’의 훈은 ‘채소 이름’인데, ‘초목이 싹 트는 모양’을 뜻하기도 해 “크게 싹을 틔우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새겨진다.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대둔사)는 이미 싹을 틔운 절이라 할 만하지만, 구미 복우산 대둔사나 가산의 대둔사는 아직도 그 싹이 제대로 자랄 여지가 적지 않은 절이다. 날마다 중창에 바쁜 절집은 말고, 의연히 사부대중 제도의 구실을 다하는 가람으로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

 

 

2022. 2. 6. 낮달

 

 

[선산 톺아보기 프롤로그] 구미대신 선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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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톺아보기 ⑥] 선산읍 원리 금오서원

[선산 톺아보기 ⑦] 구포동 구미 척화비

[선산 톺아보기 ⑧] 진평동 인동입석(仁同立石) 출포암과 괘혜암

[선산 톺아보기 ⑨] 오태동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선산 톺아보기 ] 지산동의 3대 자선, ‘박동보 구황비와 계선각(繼善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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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톺아보기 ⑫] 선산읍 죽장리 오층석탑

[선산 톺아보기 ⑬] 태조산(太祖山) 도리사(桃李寺)

[선산 톺아보기 ⑭] 청화산 주륵사지(朱勒寺址) 폐탑(廢塔)

[선산 톺아보기 ⑮]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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