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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삼월을 맞으며

by 낮달2018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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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여학교로 돌아와서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만든 탁상 달력 .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이 담겨 있다 .

3월이다. 내 탁상 달력에는 ‘온봄달’이라 이름 붙이고 있는데, 그 ‘온’의 의미가 잘 짚이지 않는다. 아마 ‘온전하다’는 의미인 듯한데, 따로 사전을 찾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짐작하고 만다.

 

1일은 3·1절. 오늘 저녁에는 시(市)에서 ‘횃불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고 한다. 행사 사진을 몇 장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찌감치 행사장 인근의 건물을 물색해 사진 찍을 장소를 봐 둬야 하는데, 썩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삼각대를 설치해 야경을 찍은 경험이 없어서다.

 

안동은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인 ‘갑오의병(1894)’이 봉기한 곳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지사를 열 분(전국 60여 분)이나 낳았고, 단일 시군으로는 시도 단위인 서울(221)이나 대구(122)보다 많은 291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그야말로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다.

 

또, 조선공산당 제1차 책임 비서를 지낸 김재봉과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를 지낸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이곳 출신이니 안동은 ‘무장 투쟁, 문화 투쟁,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독립운동의 전시장’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 20여 일이 넘게 ‘곡기를 끊어’ 순국한 지사들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 등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몇 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를 연재 기사로 쓸까 하여 자료를 모으고 있다.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킨다”는 쇠귀 선생의 글귀가 새롭게 들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돌아온 여학교, 2학년 자연반을 맡다

▲ 20여 년 만에 돌아온 여학교. 오른쪽 교사가 내가 이후 5년 동안 근무한 건물이다. 2007년 10월.

2일은 2007학년도를 여는 날이다. 임지를 옮기고 첫 출근. 2학년 자연반, 갓 18살이 된 큰아기들을 만나는 날이다. 초임지가 여학교여서 나는 여학교를 무슨 친정처럼 느끼는 편이다. 스물몇 해 만에 세 번째 여학교 근무를 시작하게 되는데, 은근히 마음이 설레는 걸 감추지 못한다.

 

설렘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가르칠 교과목에 대한 내 이해와 인식의 폭에 관한 것, 나머지는 아이들 앞에서 내가 여밀 변화에 대한 것이다. 시 한 편을 가르치는 데 두어 시간을 쓰면서 거품을 물고 좌충우돌했던 초임 시절을 지금에야 따뜻하게 추억하지만, 기실 ‘문학’에서 그 문자 이전의 함의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을 넘기고서부터다.

 

물론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교사의 이해가 아이들 이해의 핵심적 전제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첫 단원은 ‘문학과 인생’이다. 삶과 문학은 어떻게 맺어지고 어떻게 끊어지는지를 아이들과 함께 더듬어 보면서 그 성패와 무관하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리라.

 

아직도 자기감정을 쉬 다잡지 못하는 ‘식지 않은 피’ 다스리기. 절대 쉽지 않은 일일 터이지만 ‘항심(恒心)’을 배우는 과정으로 올해를 갈무리하고 싶다는 게 두 번째 기대이다. 그 실천요령은 대단하지 않다. 목소리 줄이기(고함 지르지 않기를 순화한 표현이다), 혹은 천천히 말하기 따위다.

 

학교에서는 연중 3월이 가장 긴 달이다. 학년을 처음 시작하는 때여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시간은 느림보같이 지나가서 붙인 이름이다. 3월을 지나면 한 해가 반쯤 지나간 느낌이라고도 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첫 출발은 쉽지 않은 법이다.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느슨해 있기보다는 적당히 긴장하는 것도 성찰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새달, 3월을 맞는다.

 

 

2007. 2.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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