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여학교로 돌아와서
3월이다. 내 탁상 달력에는 ‘온봄달’이라 이름 붙이고 있는데, 그 ‘온’의 의미가 잘 짚이지 않는다. 아마 ‘온전하다’는 의미인 듯한데, 따로 사전을 찾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짐작하고 만다.
1일은 3·1절. 오늘 저녁에는 시(市)에서 ‘횃불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고 한다. 행사 사진을 몇 장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찌감치 행사장 인근의 건물을 물색해 사진 찍을 장소를 봐 둬야 하는데, 썩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삼각대를 설치해 야경을 찍은 경험이 없어서다.
안동은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인 ‘갑오의병(1894)’이 봉기한 곳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지사를 열 분(전국 60여 분)이나 낳았고, 단일 시군으로는 시도 단위인 서울(221)이나 대구(122)보다 많은 291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그야말로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다.
또, 조선공산당 제1차 책임 비서를 지낸 김재봉과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를 지낸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도 이곳 출신이니 안동은 ‘무장 투쟁, 문화 투쟁,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독립운동의 전시장’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 20여 일이 넘게 ‘곡기를 끊어’ 순국한 지사들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 등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몇 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를 연재 기사로 쓸까 하여 자료를 모으고 있다. “현재에 대한 과거의 위력은 미래에 대한 현재의 의미를 증폭시킨다”는 쇠귀 선생의 글귀가 새롭게 들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돌아온 여학교, 2학년 자연반을 맡다
2일은 2007학년도를 여는 날이다. 임지를 옮기고 첫 출근. 2학년 자연반, 갓 18살이 된 큰아기들을 만나는 날이다. 초임지가 여학교여서 나는 여학교를 무슨 친정처럼 느끼는 편이다. 스물몇 해 만에 세 번째 여학교 근무를 시작하게 되는데, 은근히 마음이 설레는 걸 감추지 못한다.
설렘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가르칠 교과목에 대한 내 이해와 인식의 폭에 관한 것, 나머지는 아이들 앞에서 내가 여밀 변화에 대한 것이다. 시 한 편을 가르치는 데 두어 시간을 쓰면서 거품을 물고 좌충우돌했던 초임 시절을 지금에야 따뜻하게 추억하지만, 기실 ‘문학’에서 그 문자 이전의 함의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을 넘기고서부터다.
물론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교사의 이해가 아이들 이해의 핵심적 전제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첫 단원은 ‘문학과 인생’이다. 삶과 문학은 어떻게 맺어지고 어떻게 끊어지는지를 아이들과 함께 더듬어 보면서 그 성패와 무관하게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리라.
아직도 자기감정을 쉬 다잡지 못하는 ‘식지 않은 피’ 다스리기. 절대 쉽지 않은 일일 터이지만 ‘항심(恒心)’을 배우는 과정으로 올해를 갈무리하고 싶다는 게 두 번째 기대이다. 그 실천요령은 대단하지 않다. 목소리 줄이기(고함 지르지 않기를 순화한 표현이다), 혹은 천천히 말하기 따위다.
학교에서는 연중 3월이 가장 긴 달이다. 학년을 처음 시작하는 때여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시간은 느림보같이 지나가서 붙인 이름이다. 3월을 지나면 한 해가 반쯤 지나간 느낌이라고도 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첫 출발은 쉽지 않은 법이다.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느슨해 있기보다는 적당히 긴장하는 것도 성찰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새달, 3월을 맞는다.
2007. 2.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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