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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구미사람들과 북봉산, 그리고 ‘새마을’ 대청소

by 낮달2018 2022.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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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봉산과 새마을 대청소

▲ 북봉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구미 시가지 . 아직도 개발을 기다리는 땅이 많다 .

프롤로그에서 밝힌 대로 자리 잡는 대로 뒷산도 다녀오고, 인근 재래시장 따위를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움직일 만하면 한파가 찾아오곤 해서 나는 고작 인근 할인점 구경 정도만 했었다. 그래도 옮아온 지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이 도시의 공기와 정서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사 오고 사나흘쯤 후에 인근의 목욕탕에 들렀다. 규모가 꽤 큰 온천이었는데 설 대목이라서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목욕하는 내내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는데 목욕탕을 나서면서 그 정체를 깨달았다. 나는 저도 몰래 우리 식구들이 즐겨 찾았던 안동의 학가산 온천과 이 욕탕을 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균연령 34세, ‘젊은 도시’ 구미

 

규모는 안동 쪽의 것이 크다. 그런데 그 커다란 온천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태반이 노인이다. 글쎄,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젊은 아버지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곳은 정반대였다. 어깨를 부딪는 사람들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분명한 아들 녀석들의 등을 밀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30대의 건장한 가장들이었다.

 

이내 나는 그게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2011년 9월 현재 구미 주민의 평균연령은 33.9세, 30대 이하가 61.9%라고 했다. 안동이 좀 늙은 고장이라고 한다면 구미는 젊은 도시인 셈이다. 명색이 국가산업공단이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바로 그 젊은이들이다.

 

그걸 의식하는 순간 구미는 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관리소장은 630세대가 사는 우리 아파트 주민의 평균연령이 30대 후반이라면서 전출입도 아주 잦다고 말했다. 그래서인가, 승강기에서 만나는 사람은 단연 아이들이다.

 

우리 집이 있는 동은 26층이다. 승강기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세대는 모두 52세대, 나는 식구들에게 승강기에서 이웃을 만나면 목례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만만치가 않았다. 이쪽이 먼저 인사하려 해도 상대가 아예 외면하고 나오면 뻘쭘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사람들은 무심히 승강기 안으로 들어와 무표정하게 외면하고 섰다가 승강기가 멎으면 부리나케 내려 버린다. 인사를 살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 인사말을 건네기는 어려운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도 이 아파트촌의 풍속에 따르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인사를 나누게 된 이는 어느 층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또래의 내외다. 서로가 부담 없이 안부를 나누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나이의 힘이다. 우리는 가볍게 목례하고 날씨를 화제 삼아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 날씨가 따뜻해지면 아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 우리 아파트엔 이런 아이들이 많다 .

구미, ‘젊은 구미사람들’

 

젊은 아낙들이 아이를 안고 타면 그나마 아이를 어르면서 말이라도 붙이는 게 어렵지 않지만, 아예 앵돌아진 표정으로 승강기에 오르는 사람들과 만나는 기분은 꽤 씁쓸하다. 이런 기분은 상승하는지 아내와 나는 좀 시무룩해졌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죽 이어졌다. 이사하고 나서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간 짐 정리에 바빴던 아내가 시장에 갔다가 옆집에 인사를 해야 한다며 딸기 한 통을 사 왔다. 예전 같으면 이사 오면서 떡이라도 돌렸을 터이지만 시절이 시절이다. 아내는 떡 대신 딸기를 들고 옆집 문을 두드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이 집에는 중학생 아들밖에 없었다. 아내는 아이에게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며 어른더러 인사를 대신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날 저녁 늦게라도 옆집 사람들이 인사하러 오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이었다.

 

사흘, 나흘, 일주일이 지나자, 우리는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그 중학생 아이가 딸기를 먹어 치우고 어른에게 따로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거라고. 입맛이 썼지만 우리는 그게 이 도시의 인정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이사 오던 날부터 이 아파트의 층간 소음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걸 알았다. 위층에서는 아이가 공을 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가 하면 난데없이 신경질적인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은 쿵쿵 하는 소음도 뒤따랐다.

 

층간 소음 문제는 자칫하면 아래윗집 사이에 ‘원수’ 질 수도 있는 예민한 문제다. 층간 소음으로 다투다가 결국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후배의 사례를 나는 떠올렸다. 한 열흘쯤 우리는 참았다. 나는 비교적 무신경한 편이지만 아내는 유난히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다. 딸애도 한 번쯤 얘기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 북봉산의 솔가리. 경상도에서 '갈비'라 부르는 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이 푹신했다.

나는 바로 인터폰으로 바로 윗집으로 연락하려다가 경비실로 전화했다. 위층에서 소음이 심하니 연락해 달라고. 그런데 바로 위층에서 구내전화가 걸려왔다. 젊은 여자의 목소린데 날이 서 있었다. 우리 집에는 초등학생 딸애가 공을 친 것 외에는 소음을 낸 게 없다……. 말하자면 그런 전화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투였다.

 

입맛이 썼지만 나는 ‘이러저러해서 참다못해 전화했다. 그런데 소음을 내지 않았다니 할 말이 없다.’라고만 말했다. 여자는 층간 소음은 대각선 쪽에서도 나기도 한다면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했다. 나는 알겠다고, 관리실에 요청 전체 주민의 주의를 환기해 달라고 해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 식구들은 마주 보며 어색한 미소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소도시 안동에서 온 촌사람들은 훨씬 큰 도시 구미가 보여주는 정리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이삼일 후였다. 이번에도 소음이 인내의 한계를 넘게 했다. 아내가 총대를 메고 나섰다. 아내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아내에게 부드럽게 달래듯 설득하고 오라고 일렀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으로 발전하면 피차가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 뿐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내려온 아내의 표정이 밝았다. 이야기하니까 말이 통하네요, 조심하자고 했어요.

 

다행이었다. 이튿날부터 소음은 두드러지게 줄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4학년이라는 그 여자애에게 감사했고 그 어머니의 배려를 고맙게 여기기로 했다. 결국 위층의 젊은 여자는 할 말은 하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는 ‘요즘 사람’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아, 잊은 줄 알았던 옆집 사람에게서는 아주 뒤늦게 연락이 있었다. 거의 한 보름쯤은 지난 뒤였다. 시간이 일정하지 않게 어디 가게에 나가 일을 해서 늦어졌다면서 떡을 전해 왔다. 얌전하게 생긴 부인인데 인사성도 밝았다. 우리 내외는 이웃에게 가졌던 선입견을 버리기로 했다.

 

어제는 3·1절이었다. 며칠 전부터 베란다 쪽에 어디 국기를 거는 장치가 있나 살펴보았는데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아침에 관리실에서 국기를 걸어달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그때야 보니 안방 쪽 베란다에 깃대를 거는 홈이 눈에 띄었다.

 

태극기를 달고 나서 위를 올려보았는데, 어럽쇼, 우리 라인 쪽은 빠지지 않고 국기가 걸려 있었다. 역시 젊은 사람들이라 재바른가,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국경일 챙기는 일은 나이 많은 이들이 잘 따르는 일인데 이건 무슨 조홧속인가.

▲ 북봉산에 봄이 오고 있다. 생강나무가 눈망울이 영글고 있다.
▲ 북봉산으로 이름이 바뀐 동네 뒷산 . 꽤 물매가 가파른데 정상쯤 가면 구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북봉산 오르기

오후에 혼자서 아파트 뒷산 북봉산(北峰山·388m)에 올랐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다봉산(多峯山)이었다. 그런데 부근 주민들이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산 이름을 바로 잡아달라고 건의하자 국가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북봉산이 된 것이다. 대신 구미시는 여기서 남쪽으로 약 700m 떨어진 이름 없는 봉우리를 다봉산(333m)으로 등록했다고.

 

길은 좀 가팔랐다. 너무 오랜만에 오르는 산이다. 동네 뒷산인데 어떠랴, 등산바지에 등산화만 신고 상의는 평상복 차림으로 나섰는데 이내 땀이 나고 숨이 차 왔다. 겨울산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밋밋하고 황량한 풍경 속을 드문드문 쉬어 가면서 올랐다.

 

얼마나 올랐을까. 길 오른편으로 벗어난 샛길 너머에 바위 봉우리가 시내를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댄가 보았다. 젊은 남녀가 의좋게 두런대고 있어 나는 그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나는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읽었다. 산속이지만 4G는 이내 새 기사를 갈아 주었다. 참, 좋은 세상이야, 나는 혼자서 중얼댔다.

 

정상을 십여 분 앞에 두고 바위투성이 작은 등성이를 넘는데, 갑자기 아랫도리에 힘이 빠진다고 느꼈다. 동시에 나는 어어, 사진기를 들고 보기 좋게 바위틈에 엎어져 버렸다. 바위 사이의 땅바닥에 오른쪽 무릎을 정통으로 부딪쳤다.

 

얼마나 아픈지, 아이고, 아이고 비명을 질러대면서 한동안 엎드려 꼼짝을 못했다. 누가 구경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일어나 바지를 걷으니 무릎이 까져서 피가 천천히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너무 아파서 어디 뼈가 상하진 않았나 걱정했지만 걸어보니 괜찮다. 잘 됐다. 이제 여기서 하산이다.

 

‘새마을 대청소’를 하는 새마을의 성지

 

절룩거리면서 하산해 집에 들어오자, 아파트 구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내일은 3월 새마을 대청소의 날입니다. 내일 아침 7시까지 ○○동 주민센터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내와 나는 어리둥절해져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요즘도 새마을 대청소를 해? 아내가 물었고 나는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그래서 여긴 ‘새마을의 성지’ 구미라는 거 아니야…….

▲ 지난해 4월에 벌어진 구미시의 새마을 대청소 ⓒ 구미 뉴스

 

2012. 3.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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