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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19세기 ‘모니퇴르’, 그리고 ‘KBS’

by 낮달2018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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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의 <한국방송>

▲ 자체 조사에 따르면 뉴스 앵커 선호도와 의제 설정 기능에서 KBS는 MBC에 뒤졌다고 한다 .

요즘 나는 KBS 뉴스를 보지 않는다. ‘9시 뉴스’는 물론이거니와 한때 뉴스 시간대로는 애매한 저녁 8시에 즐겨 보았던 ‘뉴스타임’도 보지 않는다. 대신 그 시간의 뉴스는 YTN이나 한때는 피한 SBS 뉴스를 보는 걸로 때운다.

 

당연히 9시 뉴스는 MBC ‘뉴스데스크’를 즐겨 본다. 남녀 앵커가 가끔 ‘내지르는’ 촌철살인의 논평이 시원하고 사안에 대한 심층보도도 알차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마음에 차기 때문이다. 부득이 KBS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에도 KBS 뉴스를 보고 있자면 기분이 영 씁쓸해지는 걸 어쩌지 못한다.

 

며칠 전이다. 11시께 우연히 ‘뉴스라인’의 원세훈 청문회 기사를 잠깐 보다가 그예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앞서 본 MBC 기사는 질문자인 박영선 의원의 발언을 앞뒤가 통하게 보여주어서 그 발언의 요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KBS의 그것은 요지 파악이 애매한 공방 장면만을 보여주는, 요령부득의 어정쩡한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국민의 방송’ KBS가 ‘정권의 방송’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는 날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용산참사의 경찰 면죄부 주기식 검찰 수사를 비판 없이 전달하는 KBS를 규탄하면서 수신료 납부거부·취재거부 등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 등은 당연한 귀결이다.

 

KBS의 공정성은 시청자들로부터 의심을 받기 시작했고, 9시 뉴스의 시청률은 SBS에도 밀리고 있다고 한다. KBS 취재진이 최근 서울 용산 철거민 추모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로부터 구타와 수모를 당했다는 뉴스는 KBS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방증하는 예다.

▲ 기사 배치로 현실과 정책의 부조화를 보도한 MBC

얼마 전 KBS는 외부 출입 기자들에게 보도본부·제작본부 등이 소재한 건물 출입을 막아 비판을 받았다. 이제는 한술 더 떠 보도본부 내 의사소통을 위해 만든 보도 정보 게시판을 일방적으로 실명화하고, 글에 대한 찬반 기능도 없애 기자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전한다.

 

KBS 기자협회에서는 보도위원회를 통해 용산참사 보도 태도와 제작 거부 기간 중 ‘미디어 비평’ 결방 사태를 따진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사후약방문’에 그치는 이런 대응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건 뻔한 노릇이다. 그나마 이런 기자·PD들의 노력이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를 간신히 떠받치고 있긴 하다.

 

모르긴 몰라도, 노동조합에도 별로 기대할 게 없는 듯 보인다. 기자·PD에 대한 중징계 이후 기세 좋게 칼을 빼어 드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슬그머니 거두어들였고, 회사 측이 화답하듯 징계 수위를 낮추면서 그 서릿발 어린 출사표는 중동무이가 되었다. 그게 현재 KBS가 서 있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TV 뉴스가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고 방영되는지 그 시스템이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 드러나고 있는 보도 문제가 이병순 사장 1인에게만 귀책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절대 권력의 비호를 받는 이 ‘빅브라더’ 아래, 충성스럽게 그의 의중을 헤아리면서 뉴스를 취사선택하고 있는 ‘하수인’들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청자들, 곧 전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빅브라더와 권력의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자기 검열’ 장치를 움직인다. 권력의 이해 앞에 납작 엎드린 이들 사이비 지식인들 탓에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훼손되면서 KBS는 마침내 ‘국민의 방송’에서 꼼짝없이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언론은 장악할 수도 없다.’라고 되뇌었지만, 현재 KBS 뉴스는 그들의 공언이 가증스러운 기만에 불과함을 방증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장악을 꿈꾸는 권력과 언론의 대치 국면은 시방도 계속되고 있다. YTN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최근엔 지역방송마저 특보 출신 사장을 선임하려는 권력의 움직임에 OBS 언론 노동자들이 결기를 세우고 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나폴레옹의 부침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갔던 신문 <모니퇴르( Moniteur universel)>의 예는 권력 앞에 투항한 언론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초반의 이 언론사를 한갓진 과거사로 넘기기엔 2009년 한국의 언론 상황은 절대 만만치 않다. 언론인 신홍범이 쓴 “<모니퇴르>와 언론 속성”을 다시 읽으며 언론의 독립성을 다시 생각해 본다. [관련 글 : [오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유배지 엘바섬 탈출]

 


<모니퇴르>와 언론 속성

▲ 1805년6월 16~21일 르 모니퇴르 위니베르셀 1면

언론의 생명은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만일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잃는다면, 그 언론은 이미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언론의 예로 우리는 흔히 프랑스의 신문 <모니퇴르>를 예로 든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의 편에 서서 이들을 옹호함으로써 프랑스 최대의 일간지가 되었던 <모니퇴르>는 시민의 힘이 약해지자 왕정(王政)의 편으로 돌아섰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또한 이를 찬양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유배되고 루이 18세가 등장하자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나폴레옹을 찬양하던 펜으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힘이 없는 황제를 맹렬하게 두들겨 팼다. 이러한 <모니퇴르>의 논조는 나폴레옹이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유배지를 탈출하자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신문의 탈바꿈은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진격해 올라오던 3주 동안의 논조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쥐앙 만에 상륙하여 그를 진압하려는 군대를 연달아 격파하면서 북상, 파리에 접근하여 마침내 3월 20일 수도에 입성했다. 이 짧은 기간에 시시각각으로 변한 <모니퇴르>의 논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살인마, 소굴에서 탈출”

“코르시카의 아귀(餓鬼), 쥐앙만에 상륙”

“괴수, 카프에 도착”

“폭군, 리용을 통과”

“약탈자, 수도 60마일 지점에 출현”

“보나파르트, 급속히 전진! 그러나 파리 입성은 절대 불가!”

“황제, 퐁텐블로에 도착하시다”

“어제 황제 폐하께옵서는 충성스런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튀를리 궁전에 듭시었다”

 

3주일 동안에 ‘살인마’가 ‘황제 폐하’로 바뀐 논조의 변화를 이 신문은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강약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이러한 언론을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얘기가 낡은 사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도 ‘칼’ 앞에 ‘펜’이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참 언론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예이다.

 

- 신홍범(<한겨레> 기자)

 

 

2009. 2. 12. 낮달

 


▲ 2017년 언론노조 kbs 본부의 총파업 출정식 보도

‘국민의 방송’ KBS가 이명박 정부(2008~2013) 당시 공공성을 의심받고, 시청자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당시 기자·PD·기술직 등이 하나로 조직되어 있던 ‘KBS노동조합’은 신뢰를 잃었다. 이에 2008년 8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 조직되어 노조를 대신하여 공정언론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듬해인 2009년 12월(이 글은 2009년 2월 상황이다)에 ‘언론노동조합 KBS 지부’가 창립된다. 2010년 이 노조는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언론노조 KBS 본부’로 승격되고, 10년 후인 2020년에는 조합원 3천을 확보하여 과반수 노조가 되어 제1노조의 지위를 얻었다. 따라서 현재 KBS에는 ‘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기존 노조인 기술직 중심의 ‘KBS노동조합’ 등 2개 노조가 있다.

 

노조는 언론이 공정언론과 비판의 성역이 없는 민주, 자유노조로 거듭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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