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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고별-나의 ‘만학도’들에게

by 낮달2018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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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고 졸업생 여러분께

▲ 만학도들이 건네준 화사한 꽃은 지금 우리 집 식탁에 꽂혀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나의 만학도, 방송고 졸업반인 당신들에게 마음으로 드리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날 연휴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마땅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식은 14일이고 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12일입니다.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강행군을 하면서 여독이 만만찮았고, 거기다 가족 모두가 독감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오한과 발열로 하룻밤을 꼬박 밝히면서 저는 문득 이게 내가 31년을 머문 학교를 떠나면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학도들에게 건네는 고별인사

 

여행의 첫 3일은 좀 무더웠고 마지막 날은 추웠습니다. 공항에서 몸을 잔뜩 오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은 더해졌습니다. 귀가해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자 찌뿌둥한 몸이 개운해지는 듯했습니다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무시로 고열이 찾아왔는데, 어제 들른 병원에선 ‘신종 플루’로 의심된다며 타미플루를 처방해 주었으니까요.

 

졸업식 당일에도 여전히 떠난다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시상 순서의 끝에 학교장이 교육개발원(방송 통신 교육 담당 기관)에서 보내온 감사패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동료와 재학생, 졸업생들이 나와서 선물과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주었을 때야 비로소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짤막하게 드린 작별 인사를 기억하시는가요? 늘 그렇듯 할 말은 많지만 그걸 중언부언하는 건 오히려 말하지 않음만 못한 일, 저는 교직의 마지막 4년 동안, 방송고의 만학도 여러분과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31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저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고자 한다고, 남은 뉘우침과 회한은 제 개인의 한계로 안고 가겠다고 했지요. 그리고 여러분과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베풀어주신 우정과 사랑을 잊지 않고 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식이 끝나고 학급으로 돌아와 졸업장과 상장, 기념품 따위를 나누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지난 1년 동안의 우리 반의 팀워크를 제대로 조율해 준 학급 임원들을 치하하고, 무엇보다 아무도 낙오하지 않고 34명 모두가 졸업할 수 있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마지막 대목에선 당신들은 박수로 자축해 주었지요.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의 삶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상입니다만, 어떤 만남은 기쁨으로, 어떤 헤어짐은 슬픔으로 우리에게 남겨집니다. 저는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을 잠깐 얘기했었지요. 흔히 불가에서는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오백 겁(劫)의 소중한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겁은 우주가 시작되어 소멸하기까지의 시간인데, 천년에 한 번 떨어지는 빗방울이 집채만 한 바위를 뚫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되려면 8천 겁의 인연이, 형제로 만나려면 9천 겁, 부모나 스승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만겁의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굳이 사제(師弟)의 연을 이야기한 것은 그 내용과 무관하게 당신들과의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제라고는 하지만 속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한 해 동안 만날 수 있었던 날이 24일에 불과했음에도 우리를 이어준 것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시니어(senior)의 친화력과 동질감이 아니었는지요.

 

제가 가르친 것만큼이나 당신들에게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였을 겁니다. 동시대를 살아왔다는,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은 인간과 관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가능케 해 주었고, 우리는 눈을 맞추고 머리를 주억거리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던 듯합니다.

▲ 한때 교직에 대한 애착으로도 다가왔던 분필꽂이. 어제 이걸 챙겨 학교를 떠났다.

저는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졸업’의 의미를 환기해 주고 싶었습니다. 소년기에 거쳐야 했을 과정을 수십 년 뒤에야 이수하는 뒤늦은 배움의 길은 소중합니다만 그게 단순히 졸업증서 1장, 고졸의 학력을 얻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는 당신들이 졸업장이나 고졸 학력이 아니라 세상을 더 넓고 깊이, 그리고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눈과 귀를 얻었다고 생각하시기를 주문했습니다. 물론 방송고의 교육과정이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만학의 과정에서 만났던 갖가지 경험과 각성의 시간을 그러한 인식으로 승화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들은 청소년기의 10대 학생이 아니라, 삶의 신산을 모두 맛본 시니어들이니까요.

 

익숙한 관습과 태도로부터의 해방을

 

그러기 위해선 뻔한 세상을 다르게 보려는 노력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겠지요. 아주 익숙한 관습과 태도, 다수가 선택한 입장을 비판 없이 답습하는 맹목(盲目) 따위에서 벗어나 나름의 눈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책이 그런 일에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고 주문했습니다.

 

어느새 작별의 인사를 건넬 차례군요. 애틋하지 않은 작별의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제가 교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당신들과의 이별은 더 큰 애틋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편안한 이웃으로 다시 만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지요.

 

고열과 근육통은 어지간히 숙졌습니다만, 어지러움과 무력감은 여전합니다. 종일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면서 저는 한 번씩 제가 딛고 선 현실의 경계가 혼란스럽습니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겠다는 공언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압니다. 결국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약이라는 걸 말이지요.

 

어저께 당신들이 전해 준 꽃은 지금 식탁 위 꽃병에 꽂혀 있습니다. 갖가지 종류의 꽃송이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도 하나로 어우러지며 화사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당신들이 연출했던 우정과 연대도 마치 저 화사한 꽃의 화음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귀 하나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합니다. 이 글귀는 제가 다른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저 자신에게 건네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이랑 많이 일굴수록 쟁기날은 빛나고, 유수봉하해(流水逢河海),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납니다. 땀 흘려 일구어 빛나는 쟁기날이 되고, 쉼 없이 흘러 큰 바다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2016. 2.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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