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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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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교실 ‘문틈’으로 온다 학교, 학생들의 겨울나기 겨울은 어디로 오는가. 10월이 기울면서 아침과 밤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침 출근길과 밤 열 시 야간자습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은 선득해서 저도 몰래 몸이 오그라지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그러니 아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 학교는 다행인 편이다. 일찌감치 냉난방 시스템이 설치되어 며칠 전부터 난방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 냉난방 시설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부분의 학교(주로 중학교)에서는 얼음 소식이 들려야 난로를 피울 터이니. 이는 어쩌면 입시 준비로 골몰해야 하는 고교생에게 주어지는 특혜인지도 모르겠다. 학급에 들어가면 아이들 대부분이 얄팍한 담요로 무릎 아래를 감싸고 있다. 심한 아이들은 아예 담요를 긴 치마처럼 아랫도리에 두르고 다니기도 한.. 2020. 11. 7.
<의자 놀이> 사태 단상 공지영의 관련 사태를 생각한다 유명작가란 일반 대중들에겐 ‘외계인’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들의 삶이 자신들과 달라서라기보다 일상에서 그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삶은 대중들의 그것과 같지 않다. 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그 범주 안에서 그들 유명인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사태 그래서다. 그들의 삶을 짐작하는 것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다루는 가십과 마찬가지 형식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른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힘입어 이들과 말을 섞을 수 있게 된 게 최근 일이다. 우리는 이들의 근황을 “어, 그렇다고? 그랬구나!”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이내 잊어버린다. 인기 작가 공지영이 쓴 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도 비슷하다. 나는 그 얘길 띄엄띄엄 주워들었다. 거칠게 .. 2020. 11. 6.
‘만만하지’는 왜 ‘만만치’로 주는데 왜 ‘생각하지’는 ‘생각지’가 되나? [가겨찻집] - ‘-하다’에서 ‘-하’의 줄임에 관하여 오늘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현관 승강기 옆에 놓아둔 구미시 시정 소식지 를 집어왔다. 가져와도 알뜰히 읽는 일이 드물어서 굳이 가져오지 않는 편인데, 오늘 그걸 집어든 것은 표지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표지에 실린 사진은 국보 130호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의 야경이다. ‘짐작하게’를 줄이면 ‘짐작게’ 승강기를 타고 오르면서 표지를 넘기니, 뒷면은 해평면 금산리에 있는 상어굴 사진이다. 베틀산이라는 산에 커다란 상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굴인데, 상어굴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베틀산이 아득한 옛날엔 산 아닌 바다였음을 짐작게 한다고 씌어 있다. 내가 눈을 번쩍 뜬 것은 베틀산 상어굴 때문이 아니라, ‘짐작하게’가 준 형태인 ‘짐작게’를.. 2020. 11. 5.
비둘기, ‘평화의 새’에서 ‘닭둘기’까지 잘못된 ‘통념’의 표본, ‘비둘기’, 이제 ‘닭둘기’가 되다 비둘기는 새 중에서 인간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새다. 무엇보다 비둘기는 여전히 ‘평화의 상징’이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은 기독교와 관계 깊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둘기는 두더러진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비둘기, ‘평화의 새’? 신은 타락한 인류를 벌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키고, 믿음이 깊은 노아의 가족과 생물만 방주를 타도록 했다. 비가 멎자 노아는 물이 빠졌는지 보려고 방주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비둘기는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왔다. 이런 내력 때문에 비둘기와 올리브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 한국군 중 베트남전에 최초로 파견된 부대의 이름이 비둘기였다. 비전투 부대인 건설지원단의 이름으로 ‘비둘기’.. 2020. 11. 5.
“애비가 죽고 없어도 굳게 살아라” ‘고 권재혁 선생 40주기’ 추모제 기사를 읽고 오늘 아침 에서 ‘고 권재혁 40주기 추모제’란 기사를 읽었다. 기사의 제목은 “간첩 낙인 40년, 아버지 원망 이젠 내려놔”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발표한 ‘간첩’과 ‘빨갱이’ 조작 사건이 한둘이 아니어서 좀 심상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워낙 생소한 이름이라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마음이 여간 애잔해지지 않는다. 권재혁은 생소한 이름이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글(권재혁을 아십니까)에 따르면 그는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을 당한 진보적 경제학자다. 지난 11월 4일이 그의 40주기였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권씨는 1955년 미국 오레곤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귀국해 건국대와 육.. 2020. 11. 4.
그 가게의 ‘공정 서비스’ 어느 도시락업체의 ‘공정 서비스’ 요즘 ‘스노우폭스(SNOW FOX)’란 도시락업체가 화제다. 이 업체의 한국 매장에 내건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란 글 덕분이다. 심심찮게 터지는 고객들의 이른바 ‘갑질’이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안내문은 도입부터 자못 파격적이다. 도시락업체 ‘스노우폭스’의 ‘공정서비스’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슬로건은 우리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있었으니 꽤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건 말 그대로 ‘구호’에 가까웠지 않나 싶다. 그때의 서비스 산업이란 오늘날과 비기기 어려운 아주 낮은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서.. 2020. 11. 3.
김동인, 혹은 ‘문필보국(文筆報國)’의 전범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김동인(金東仁·東文仁, 1900~1951)은 우리 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춘원 이광수와 함께 초기 현대소설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소설 문장을 과거형 시제로, 영문의 ‘he’와 ‘she’에 대응하는 ‘그’와 ‘그녀’라는 삼인칭 대명사를 정착시킨 게 이들 작가인 것이다. 김동인의 아버지는 평양의 대부호인 기독교 장로 김대윤, 일제 강점기 때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동원이 이복형이다. 동인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19년 2월, 도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창조(創造)』를 창간했다. 그는 주요한을.. 2020. 11. 2.
24년 뒤에 출생신고서 회수… ‘꿈’이 선명해졌다 [나는 전교조다] ‘법외노조’ 되더라도 참교육 꿈은 변하지 않아 지난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 노조’ 통보를 강행했습니다. 국제 기준에 어긋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의 권고도,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국내외 여론도 간단히 묵살되었지요. 이로써 1989년 ‘참교육’의 깃발을 내걸고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합법화된 지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로 아시다시피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는 데 인용된 것은 ‘법’ 논리였지요. 노동부 장관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단체에 더 이상 법에 의한 보호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교육부 장관은 “노동자이기에 앞서 선생님이기 때문에 교육을 위해서라도 현행법 준수를 촉구했다”라며 ‘교.. 2020. 11. 2.
‘갈려고’가 아니라 ‘가려고’다 의도형 어미 ‘-려고’의 활용 오류 어미 ‘-려고’는 (받침 없는 동사 어간, ‘ㄹ’ 받침인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어떤 행동을 할 의도나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로 흔히 ‘의도형 어미’로 불린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용례는 다음과 같다. ¶ 내일은 일찍 일어나려고 한다. ¶ 너는 여기서 살려고 생각했니? ¶ 집을 마련하려고 저축을 한다. ¶ 일찍 떠나려고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 위 문제에서 답은 ‘②집에서 놀려고 친구들을 불렀다.’다. 역시 기본형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보기에 밑줄 친 동사들의 기본형은 각각 ‘①가다, ②놀다, ③주다, ④하다, ⑤쓰다’다. ‘②놀다’를 빼면 모두 받침이 없는 낱말이다. 따라서 거기다 어미를 붙이면 각.. 2020. 11. 1.
사랑은 ‘잉여’ 아닌 ‘결핍’에서…김정환 시 「가을에」 사랑은 ‘진귀함과 고귀함’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으로 채워진다 어제 상주에 다녀왔다. 시를 쓰는 선배가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스케치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서 피곤했던가 보았다. 5시께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9시 안 돼 고꾸라졌다. 실컷 잤다 싶어 깨어나 시간을 보니 새로 1시였다. 두어 시간 잠들지 못했다. 거실에 나와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베란다 문을 여니 자욱한 빗소리가 뛰어 들어왔다. 창에 머리를 바투 붙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앞과 옆 동에도 여럿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지금도 잠들지 못한 이들이 있는가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새벽 1시인 것이다. [시 '가을에' 읽기] 김정환의 시 ‘가을에’가 떠오른 건 그때다. 이 시를 만난 건 1990년대 막바지였.. 2020. 11. 1.
가난도 가난 나름, ‘가난’을 다시 생각한다 ‘장식’, 혹은 ‘성공의 배경’으로의 ‘가난’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60년대를 전후해서 ‘인구에 회자’한 얘기다. 다분히 비장한 기운마저 감도는 이 말이 마치 경구처럼 쓰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6·70년대라는 시대의 미덕이었다. 그것이 미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극복될 수 있는 가난’, 곧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에 힘입은 것이다. 가난은 다만 ‘불편한 것’? 깡촌의 무지렁이 농민의 아들이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나와 각종 ‘고시’에 ‘패스’하는 성공담은 그 시대의 꿈이고 전설이었다. 그 시대는 달리 말하자면 ‘입지전’ 주인공들의 전성시대였다. ‘검사와 여선생’ 따위의 신파가 연출될 수 있었던 것도 신분 상승의 신화가 가능했던 시대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 2020. 10. 31.
외고와 이완용 한 외고생의 ‘이완용 양산론’ 다음 아고라에 오른 한 외고생의 글이 화제다. 자신을 한영외고 2학년이라는 이 학생은 ‘외고 폐지에 찬성하며, 외고를 자율고나 자사고, 특성화고로 전환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라는 의견을 아고라에 올렸다. 또 이 학생은 외고가 ‘또 다른 이완용들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한 외고생의 토로…“외고는 제2의 ‘이완용’ 만드는 곳”][홈플러스 이승한 회장 관련 글 : 중소상인이 '맛없는 빵을 만드는 장애인'이라고?] 말도 많은 외고, 그 과실을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학생이 뜻밖의 주장을 하는 데 대해서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학생의 주장이 나름의 경험과 고민의 결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학생은 외.. 2020.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