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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놀이> 사태 단상

by 낮달2018 2020.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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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의자 놀이> 관련 사태를 생각한다

▲ 이른바 <의자놀이> 사태의 당사자인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 <한겨레> 강재훈

유명작가란 일반 대중들에겐 ‘외계인’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들의 삶이 자신들과 달라서라기보다 일상에서 그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삶은 대중들의 그것과 같지 않다. 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그 범주 안에서 그들 유명인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의자 놀이> 사태

 

그래서다. 그들의 삶을 짐작하는 것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다루는 가십과 마찬가지 형식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른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 힘입어 이들과 말을 섞을 수 있게 된 게 최근 일이다. 우리는 이들의 근황을 “어, 그렇다고? 그랬구나!”의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이내 잊어버린다.

 

인기 작가 공지영이 쓴 <의자 놀이>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도 비슷하다. 나는 그 얘길 띄엄띄엄 주워들었다.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집필 노동자 이선옥의 글을 인용해 쓴 글이 있다. 이 글을 공지영이 인용하면서 다른 인용 글과는 달리 인용 사실을 부실하게 표시했다. (사태 경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디어스>의 한윤형 기자가 잘 정리해 놓았다. 아래 기사 참조)

 

[관련 기사 : ‘의자 놀이’ 스캔들, 무슨 일이었나 (, ) 트위터 세상을 달군 그 ‘논쟁’에 관한 요약정리]

 

이 사실에 대해서 문제 제기와 요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좀 비틀려버린 것 같다. 공지영이 발끈했는지 과하게 받았고 이에 대해 하종강이 정색을 하면서 문제가 꼬인 것이다. 이 과정의 팩트를 전해 듣고 나는 딸애와 얘길 나누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 공지영이 이 사람, 좀 모자라는 사람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어이가 없네요.”

 

사태는 좀 강하게 상승하였고 그 과정에서 감정의 골은 더 깊이 파여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사안의 성격이 만만찮았다.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다룬 르포인데다 작가가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해고자들을 돕고자 출판사와 함께 낸 책이었다. 해고자 문제를 주로 다루는 르포를 써 왔던 이선옥 작가나 노동자 상담과 강연으로 유명한 하종강이나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는 데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상황은 가라앉았고 <의자 놀이>는 순조롭게 팔렸다. 나는 공지영의 르포에 그리 당기지는 않았지만, 책을 사는 거로 거들었다. 책을 읽다가 이웃 블로거의 글에 댓글을 달면서 그런 얘기도 잠깐 했다. 공지영은 정신적으로 좀 미성숙한 데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오해 말기 바란다. 나는 그에 대한 별다른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나는 공지영을 그의 첫 장편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처음 만났다. 운동권의 사랑과 갈등을 다룬, 좀 감상적인 소설이었는데도 나는 애틋한 느낌으로 그걸 읽었고, 이후에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그를 괜찮은 작가로 평가하고 있었다.

 

나중에 공지영이 인기 작가의 반열에 들어서면서 나는 더는 그의 작품을 읽지 않게 되었다. 뚜렷한 이유는 없는데, 굳이 찾아서 읽을 만큼의 작품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읽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그만하면 괜찮은 작가라고 여기고 있다.

 

그가 우리 사회의 예민한 주제들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이해했다. 그가 젊음의 한때,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하면서. 비록 그이의 말과 행동거지에 다소의 푼수끼(누구 말대로라면 일종의 공주병)가 엿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하종강이나 이선옥이 그를 ‘문화 권력’이라고 칭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문화 권력’임은 분명하다. 그는 총합 1천만 부의 책을 판 정상의 작가고 자신이 재능기부로 쓴 <의자 놀이>도 10만 부를 넘겼다. 그는 권력이면서 그것을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을 위해 썼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분명한 일 아닌가.

 

‘당사자’ 하종강의 상처

 

최근에 <한겨레> 토요판의 ‘김두식의 고백’에서 공지영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권력이 권력이어선지(?) 그 기사는 2회에 걸쳐 실렸다. 나는 기사를 읽으며 내가 느꼈던 ‘미성숙’이 사실일 수도, 오해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고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의 고통과 아픔도 얼마간은 이해하게 되었다.

 

정작 <의자 놀이> 사태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한겨레>가 논란의 일방인 공지영에게 2회에 걸쳐 지면을 할애한 게 부담이 되었던가. ‘김두식의 고백’은 다음 인터뷰이로 하종강을 선택했다. 하종강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내가 이 사태를 매우 어정쩡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관련 기사 : 하종강 인터뷰 기사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시기는 바로 지금”]

 

공지영은 여전히 씩씩하다. 그녀라고 왜 이 논란에서 상처를 받지 않았겠냐만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그는 이 사태를 졸업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걸 나무랄 수는 없다. 그가 살아온 곡절 많은 삶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그 나름의 방식은 그것대로 그녀를 이해하는 한 잣대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런데 뜻밖에 하종강이 받은 상처는 꽤 큰 것 같았다. 나는 기사를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가졌던 그에 대한 인상과 평가를 상당 부분 교정했다. 상황과 무관한 내게도 그의 아픔이 비교적 생생하게 다가왔다.

 

당대 가장 유명한 작가로부터 ‘겉으로는 위선을 떨고 다니는, 내면으로는 온갖 명예욕과 영웅심 그리고 시기심에 사로잡힌, 남의 헌신을 믿지 않는, 한 번도 진심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규정되는 기분은 어떨까. 글쎄, 모르긴 해도 주고받은 감정이 아무리 사나워도 평생을 노동교육과 상담으로 살아온 이에게 던진 말로는 온당하지도 않을뿐더러 비열한 비난이다.

▲ 하종강의 인용 때문에 사태 당사자가 된 기록노동자 이선옥 ⓒ <프레시안> 최형락

겉으로 보기에 상황은 그럭저럭 정리되는 듯했지만, 기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프레시안>이 실은 인터뷰에서 작가 이선옥의 목소리도 차분하긴 했다. 그이는 ‘무명 작가’로 불려서가 아니라 ‘쌍용 사태’라는 대의 때문에 “자신과 동료들의 정체성인 ‘현장 기록노동’에 대한 무시와 몰이해에 대해서도 반박과 설명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관련 기사 : ‘무명 작가’, 공지영·진중권에게 묻다 “르포가 뭔가요?” [‘기록노동’을 말하다] 노동 현장의 기록자, 이선옥]

 

‘당사자’ 이선옥의 경우

 

그렇다. 천만 부의 책을 판 유명작가가 아니라고 해서, 비록 알려진 작가가 아니긴 하지만 노동 현장의 기록자로서 이선옥 작가의 존재 의미가 공지영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노동자라고 칭하’고 ‘작가라는 말에 담긴 허영에 경멸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록노동자 이선옥의 노동과 기록도 유명작가의 그것과 같은 무게로 존중되어야 한다.

 

눈치챘겠지만, 이 글은 이 사태를 평가하고 그 당사자의 시비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설사 시비를 가린다고 한들 수백만의 블로거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인 내 판단과 평가가 무어 대수겠는가. 나는 공지영이 사회적 발언을 통해 동시대의 모순과 문제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한 행위로 바라본다.

 

▲ <한겨레>가 창간한 월간지 <나 · 들> 표지

동시에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를 널리 알리고 이들을 돕기 위해 이루어진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형식으로 흘려버릴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보여준 공지영의 반응은 ‘그럴 수 있겠다’가 반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도 반이다. 이선옥 작가가 꼬집은 ‘노동 문제에 관해 쓴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수고한 노동에 대해서는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두고두고 공지영이 져야 할 짐이다.

 

<한겨레>가 새로 창간하는 이른바 ‘사람 매거진’ <나·들>의 표지에는 공지영이 활짝 웃고 있다. 관련 기사는 ‘공지영, 낮은 데로 임하는 문화 권력’이다. 그녀가 ‘문화 권력’이고, 낮은 데로 임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이의를 걸 일은 없겠다. 그는 때로 상처받고 때로는 비난을 받으면서 그 낮은 데로 가는 발걸음과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다소 냉소적인 대응은 오히려 그 ‘낮은 데’로 향하는 그의 눈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단지 유 무명의 차이이거나 방식이 다를 뿐, 그들 낮은 사람들의 삶과 투쟁에 함께 하고 또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의 글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관점은 마땅히 교정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여러 매체로부터 발언을 요구받는 공지영과는 달리 이선옥은 <프레시안>을 통해 자기 생각을 말할 기회를 얻었다. 그의 말을 오래 곱씹으면서 나는 이 밀리언셀러 시대의 작가와 당대 사회, 기록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떠올려 본다.

 

 

2012. 11.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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