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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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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생명의 숲을 찾아서 경북 영양 ‘주실마을’ 기행 전날 마신 술이 미처 깨지 않은 주말 아침에 아내를 재촉하여 길을 나선다. 오늘의 여정은 경북 북부의 3대 오지인 이른바 ‘비와이시(BYC, 봉화·영양·청송)’ 가운데 하나인 영양이다. 내 계산은 아주 단순했다. 나는 영양 ‘주실마을’을 들렀다가 그 마을 숲을 만난 뒤 ‘대티골 숲길’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생각하였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숲은 지난해에 베풀어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같은 면 용화리의 ‘대티골 숲길’이 어울림 상을 받았으니 영양의 숲은 시방 이태에 걸쳐 ‘아름다운 숲’으로 기려지고 있는 참이다. 그뿐이 아니다. 주실마을이 어디인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난 동네다. 19.. 2020. 11. 12.
사이버 모욕죄, ‘파놉티콘(Panopticon)’을 꿈꾸는가 전문가들, ‘사이버 모욕죄’ 입법 반대, 법안 철회 촉구 사이버 모욕죄, 표현과 민주주의 어제는 이른바 ‘빼빼로데이’였다. 말하자면, 어느 제과업체에서 만든 과자 이름이, 11월 11일이라는 날짜 표기와 겹치면서 무싯날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아이들과 ‘상업적’으로 만난 날이다. 이날, 법학·언론학 등 전문가 229명이 선언을 통해 정부의 ‘사이버 모욕죄’ 입법에 반대하고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고 한다. 말도 많던 그 ‘사이버 모욕죄’다. 한 배우의 자살을 계기로 그 배우의 이름을 붙이다가 유족의 항의를 받았던 그 법이다. 사이버 모욕죄가 ‘표현의 자유ㆍ민주주의 침해’일 뿐 아니라, ‘한국 지성의 말살 기도’라는 주장을 구태여 되뇔 필요는 없을 터이다. ‘OECD 국가들 대부분에서 이미 폐기되었거나 실질.. 2020. 11. 12.
100일 간다는 온돌 ‘아자방’은 [아:짜방]이다 온돌 ‘아자방’의 발음은 [아:짜방] 지난 7일 밤 케이블의 보도전문 채널 뉴스에서 경남 하동 지리산 칠불사에 있다는 ‘아자방(亞字房)’ 관련 뉴스를 시청했다. 기자가 [아자방]이라고 읽어서 나는 무언가 하고 귀를 쫑긋했는데, 화면에 잠깐 비친 그 선방의 편액 ‘亞字房’을 보고서야 그게 [아:짜방]의 오독임을 알았다. 천 년 전, 신라 효공왕 때 지었다는 이 선방은 방안 네 귀퉁이를 높게 만들어 그 모양이 한자 ‘버금 아(亞)’를 닮아 ‘아자방’으로 불린다. 한 번 불을 지피면 온기가 100일이나 이어졌다는 기록이 에 전하는데 최근 발굴·복원 작업으로 그 비결이 밝혀졌다는 기사다. 아자방이 온기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가마 형태의 대형 아궁이에 이중 구들을 사용해 불이 서서히 오래 타도록 하고, 한 번에 .. 2020. 11. 11.
일연의 인각사, 혹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가을 나들이 ②] 군위 인각사(麟角寺) 아미산 가는 길에 애당초 내 여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인각사에 들른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군위군이 브랜드 슬로건으로 선정할 만큼 일연과 , 그리고 인각사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인각사는 한적한 시골, 초라한 전각 몇 채가 쓸쓸하게 서 있던 20여 년 전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일연이 를 편찬한 절집이라고 해서 인각사가 규모를 갖춘 사찰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거기서 일연의 시대를 떠올릴 단서라도 하나 찾아보고 싶었다. 아직도 인각사 대신 ‘인각사지’인 까닭 인각사는 고로면 화북리 화산(華山)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 지대에 자리 잡은 절이다. 등에 의하면, 인각사 북쪽에 있는 높은 절벽에 전설상의 동물인.. 2020. 11. 11.
‘NEXT(넥스트)’로 써도 시청자는 ‘곧이어’로 읽어라? 텔레비전 화면에 로마자 쓰기, 방송이 잊은 것들 텔레비전도 그냥 재미나게 보고 말면 좀 좋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맞춤법에 어긋난 자막과 잘못된 발음 따위가 저절로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블로그에 그런저런 사연을 끄적이다가 정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텔레비전 화면에 ‘로마자’가 넘치기 시작하면서다. 지금도 신문과 잡지 등에선 부득이하게 로마자를 표기해야 할 때는 한글로 쓰고 괄호 안에 알파벳을 함께 적는 방식을 쓴다. 신문 지면이 한글 전용으로 바뀌면서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한자가 괄호 속으로 들어가 묶인 것과 같은 방식이다. 영어, 밀려난 한자의 자리를 대체한 걸까 신문 지면에 한글과 같이 섞여서 쓰이던 한자가 괄호 속에 묶인 현상의 함의는 분명하다. 그것은 더는 한자가 한글보다 우위.. 2020. 11. 10.
‘빼빼로 데이’? ‘농업인’과 ‘지체장애인의 날’! 11월 11일, ‘빼빼로 데이’보다 ‘가래떡의 날’ 칼럼 ‘[유레카] 빼빼로 데이(정영무)’를 읽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건네준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과자 한두 개를 씹으며 우리 시대의 씁쓸한 풍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내일을 보낼 뻔했다. 천 년에 한 번 온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요란을 떨어대지만, 기실 내일은 열여섯 번째 맞는 ‘농업인의 날’이고 ‘지체장애인의 날’ 열한 돌이기 때문이다. 워낙 유행과 추세를 받아들이는 데는 정평이 난 사회이긴 하지만, 무슨 날에다 의미를 붙여서 이를 기념하는 날은 좀 유난스럽다. ‘밸런타인데이’가 그렇고 ‘화이트데이’가 그렇다. 정작 어른들은 그 의미도 제대로 새기지 못하는데 청소년들은 그걸 스스럼없이 자기 삶의 일부로, ‘관계’와 ‘우의’를 확인하는 장치로 받.. 2020. 11. 10.
경북 군위에도 ‘작은 공룡능선’이 있다 [가을 나들이 ①] 경북 군위군 고로면 아미산(峨嵋山) 지난 7일은 입동(立冬)이었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미루었던 나들이를 이날 나선 것은 전혀 비가 올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날이 맑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간다 간다 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아미산을 드디어 찾았다. 경북 군위읍에 사는 벗의 경차를 타고 고로면 석산리로 향했다. 군위에서만 30여 년째 살고 있는 벗은 익숙하게 꼬불꼬불한 지방도로를 여유롭게 달렸다. 도중에 인각사(麟角寺)와 일연공원을 들렀다가 군위댐(화북댐)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군위(軍威)는 경상북도 한가운데쯤에 있는 조그만 고장이다. 남으론 팔공산과 대구광역시에 닿고, 동으로는 청송군·영천시와, 서로는 구미시와 칠곡군, 북으로는 의성군과 접경하고 있다. .. 2020. 11. 10.
마지막 동행, 정지용 문학기행 퇴직 앞두고 아이들 문학기행에 인솔 교사로 참가하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아이들을 데리고 정지용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1·2학년 마흔 명에다 지도교사로 네 명의 국어 교사가 동행했는데, 나는 거기 묻어갔다. 같이 가겠느냐는 동료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그러겠다고 한 것은 그게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일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 동행, 지용 문학기행 학교 예산으로 치르는 행사였지만 생각보다 아이들 반응은 미지근했다. 토요일이었지만 학원 수강 등을 이유로 참여를 주저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사내아이들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이들이 이 입시 체제에 너무 잘 길들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은 눈앞의 이해에만 매달릴 뿐, 새로운 체험에 대한 호기심마저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문학 교과서마다 정지용의 시.. 2020. 11. 9.
김기진, ‘황민(皇民) 문학’으로 투항한 계급문학의 전사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카프에서 활동한 비평가, ‘황민(皇民) 문학’에 투항 ‘기진’이라는 이름보다는 ‘팔봉(八峯)’이라는 호로 더 알려진 김기진(金基鎭· 金村八峯, 1903~1985)은 회월(懷月) 박영희와 함께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주요 성원으로 활동한 이다. 그는 대체로 시인과 평론가로 소개되고 경향소설인 「붉은 쥐」(1924)를 쓰기도 했지만, 대중적 시인이나 작가로 알려진 이는 아니다. 파스큘라, 카프 등 계급문학의 주역 오히려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소략하게 소개되는 1920년대 이후 계급문학(프로문학)의 전개에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2020. 11. 9.
토란, 토란국, 토란대 수확한 토란으로 끓인 토란국과 개장에 쓸 토란대 지지난 주말에 장모님의 밭에서 토란을 수확했다. 일손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밭 위에 쓰러진 굵직한 아까시나무에 깔려 있어 수확하지 못했던 토란이었다. 트렁크에 넣어 다니던 비상용 톱으로 그걸 잘라내고 서둘러 알줄기를 캐냈다. 씨알은 그리 굵지 않았으나 꽤 양이 많았다. 그 알줄기를 트렁크에 싣고 돌아왔다. 딸애가 젊은 애답지 않게 별식으로 토란국을 매우 즐기는 것이다. 아이는 토란 알줄기를 보더니, 반색했고 이내 그걸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토란 알줄기를 잔뜩 넣고 끓인 토란국에 맛을 들인 것은 언제쯤일까. ‘토란’은 식용하는 ‘알줄기’ 토란은 천남성과의 인도·인도네시아 등 열대 원산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토란은 ‘흙 난초’[토란(土蘭)]가 아니라, ‘흙.. 2020. 11. 8.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의 작가 이상운 떠나다 소설가 이상운 1959 ~2015. 11. 8. 오늘 아침 신문 ‘궂긴 소식’란에서 작가 이상운의 부음을 읽었다. 8일 새벽,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능일이 며칠 남지 않은 3학년 교실에서 그 부음을 읽고 나는 잠깐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아, 나는 자습하는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던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좋이 10년이 넘었다. 매체에서 작가라고 소개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나지만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그냥 작간가 보다, 하고 만다. 이상운도 그런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 대신 그가 쓴 간병일기 를 읽었다. 그는 가까운 포항 출신이다. 1959년생이니 우리보다 몇 년 아래다. 그는 1997년에 장편소설 으로 대산 .. 2020. 11. 8.
낙동강 강변에 펼쳐진 ‘으악새’를 아시나요 자생한 구미 낙동강 체육공원의 억새밭의 발견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다니지 않으면 코앞의 절경도 모른다는 건 맞는 말이다. 좋은 풍경을 찾는 일을 즐기기는 하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고장에 쓸 만한 풍경이 있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는 것을 확인해서 하는 얘기다. 최근 낙동강 체육공원, 경북 구미시 고아읍 괴평리 쪽 강변에 꽤 널따란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2012년에 문을 열었다는 낙동강 체육공원은 그간 서너 번쯤 들렀을 것이다. 그러나, 체육과는 별 인연이 없는 나는 바람이나 쐰다고 휑하니 들렀다 나오곤 했으니 거기 조성해 둔 풍경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 없다. 바깥 활동이 잦은 아내를 통해 가끔 거기 무슨 무슨 꽃.. 2020.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