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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가난도 가난 나름, ‘가난’을 다시 생각한다

by 낮달2018 202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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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혹은 ‘성공의 배경’으로의 ‘가난’

▲ 대통령의 민생 방문 현장. 유독 이 대통령은 시장 등 현장 방문이 잦았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60년대를 전후해서 ‘인구에 회자’한 얘기다. 다분히 비장한 기운마저 감도는 이 말이 마치 경구처럼 쓰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6·70년대라는 시대의 미덕이었다. 그것이 미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극복될 수 있는 가난’, 곧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에 힘입은 것이다.

 

가난은 다만 ‘불편한 것’?

 

깡촌의 무지렁이 농민의 아들이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나와 각종 ‘고시’에 ‘패스’하는 성공담은 그 시대의 꿈이고 전설이었다. 그 시대는 달리 말하자면 ‘입지전’ 주인공들의 전성시대였다. ‘검사와 여선생’ 따위의 신파가 연출될 수 있었던 것도 신분 상승의 신화가 가능했던 시대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시장과 자본이 세상을 끌고 가면서 가난은 그냥 ‘불편한 것’으로만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게 당사자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 된 시대, ‘개천에서 용 나기’는 바야흐로 전설이 되었다.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는 세상의 반대 편에서 ‘가난의 대물림’은 이미 고착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난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을 때만 ‘견딜 만한 것’이다. 1년, 2년, 3년……, 10년 후에도 내 삶에 어떤 나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가난은 ‘징그러운 멍에’일 뿐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벗어날 길 없는 가난과 절망이니 말이다.

 

국어 교과서에도 가난은 맞춤한 상차림처럼 올랐다. 첫 발령을 받아 여고생들을 가르치던 4차 교육과정 시기다. 국정교과서에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다. ‘일본에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유명한 수필 <목근통신>의 지은이 김소운(1907~1981)의 작품이다.

 

가난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주제로 한 세 부부의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도 내내 좀 찜찜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글쎄, 그것은 역시 현재형의 가난이 아니라 ‘추억’으로서의 가난이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거기 그려진 가난은 마치 ‘장식’ 같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이는 가난한 신혼부부가 나눈 대화인데 대조·대구가 쓰인 절묘한 표현이다. 초라한 밥상을 그런 비유로 눙친 재치도 돋보인다. 젊은 부부는 현재의 가난을 미래의 행복을 위한 통과 의례쯤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렇다. 그들에게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삼포’의 절망이 없었다.

 

“저의 작은 아버님이 장관이셔요. 어디를 가면 쌀 한 가마가 없겠어요? 하지만 긴긴 인생에 이런 일도 있어야 늙어서 얘깃거리가 되잖아요."

 

찐 고구마로 아침밥을 대신하게 된 어느 부부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 있다. 가난은 당장은 불편하긴 하지만 ‘긴긴 인생의 얘깃거리’로 길이 남을 추억이 될 터이니 요즘 말로 그건 ‘추억 만들기’인 셈이다. 그러나 가난이란 이처럼 단순히 ‘겪을 만한 경험’에 그치는 것일까.

 

1970년대 들면서 가난은 그예 ‘도둑맞기’에 이른다. 작가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에서다. 어딘지 신파조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풍기고 있는 이 소설의 상황은 다분히 70년대식이다. 가난에 쪼들리다 ‘하룻밤에 연탄 반 장을 아낄 수 있다’라며 동거를 시작하는 주인공도 그렇고, 가난을 ‘경험’하라며 대학생 아들을 빈민촌에 보낸 아버지도 그렇다.

 

배금주의 사회에서 허위의식이 끼치는 해독과 그로 인한 절망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에서는 가난도 ‘주고받거나 훔치고 도둑맞는’ 어떤 것이다. “이제 부자들이 가난마저 훔쳐간다”라고 울부짖는 주인공의 모습 앞에서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는 그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난을 훔친 것은 부자들만은 아니었다. 기억이 아련한데 당시에 “가난해도 연탄 반 장을 아끼려 동거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라는 노동자들의 항변도 적지 않았던 걸 보면 작가도 그런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성싶다.

 

입지전 주역들의 가난

 

거듭 얘기하거니와 ‘개천에서 용 나기’는 이제 일찌감치 빛바랜 신화가 되었다. 강남 아이들의 유명대학 입학률과 모모한 외국어고 출신의 사법시험 합격률은 이미 고착되고 있는 계급 사회의 일면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가난을 넘어 신분 상승에 성공한, 이른바 ‘입지전’의 주인공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50대 이후 세대다. 현 사회에서 지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현세대들에겐 ‘맏이’지만 ‘입지전’ 세대론 막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연말 대선에 나설 문재인 후보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그가 겪은 ‘가난’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단칸방에서 살며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로 때워야 했고 초등학교 때 성냥, 김밥, 밀가루떡을 팔러 다녀야 했단다. 자라서도 행상을 하거나 넝마를 주웠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명문대를 나와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간 것부터가 입지전적 성공담이다. 그는 단기간에 이사, 사장을 거쳐 정치인으로 변신, 국가 최고 권력이 되었다. 그는 수백억에 달하는 재산가로 권좌에 오른 첫 대통령이다. 언제였던가, 그의 진술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내가 부자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둑질이나 부동산 투기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부자가 되었으니 그게 자랑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런 능력을 정치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해 이 나라 국가수반의 자리에 올랐으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으랴.

▲ 가난은 어떤 사람들에겐 천형이기도 하다. ⓒ 최민식 작가

그러나 가난뱅이들은 그의 자랑과 긍지 앞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으리라. 그의 성공은 ‘개천에서 난 용’의 이야기지 우리 갑남을녀의 것이 될 수 없는 ‘예외 사례’일 뿐이라는 걸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외’였기 때문에 그의 성공은 더욱 빛나는 것, 발에 차이는 숱한 실패사례 위에서 그것은 홀로 우뚝했다.

 

국가 지도자가 가난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뿐 아니라 가난을 직접 겪기까지 했다면 그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민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있음은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니 말이다.

 

그들의 가난과 우리들의 가난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후보의 성공은 마치 모든 서민의 성공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의 가난 체험이 가난한 사람들을 부조(扶助)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래 사람들의 기대가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사족이다.

 

사람들은 이내 대통령이 겪은 가난은 자신들의 현재 가난과 무관한 상징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가난은 그의 화려한 출세기를 뒷받침하는 최고의 배경이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의 현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위대해 보이게 했을 뿐이다.

 

그가 방문한 적지 않은 민생 현장, 재래시장과 식당 등에서 내뱉은 격려의 언사들은 상인들이 견뎌내야 하는 현재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과는 무관해 보였다. 그것은 그의 위로가 진심의 위로이기보다는 자신이 겪고 이겨낸 과거에 대한 반추에 그쳤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을 때 그가 상정한 것은 자신이 사람들의 역할 모델이라는 사실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며 던진 ‘당신들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가 서민들에게 확인해 주는 것은 ‘그건 아무나 이루는 게 아니’라는 역설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예외 사례’가 그렇듯, 그것은 사람들이 실낱 같은 가능성에 매달리다 결국은 희망과 현실의 끔찍한 간극을 확인하게 하는 게 고작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 역시 입지전적 인물이다. 월남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도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행상 등으로 내몰리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그는 타고난 능력에 힘입어 변호사가 되었고, 재야운동을 같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와 청와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여전히 그는 유력한 대선 후보다. 그는 가난 때문에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고, ‘돈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했다. 만약 그가 대선에서 승리해 권좌에 오르면 자신이 겪은 가난은 어떤 방식으로 국민을 만나게 될까.

 

나머지 두 명의 대선 후보는 ‘가난’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다. 박근혜 후보는 일평생 생계를 위한 돈을 벌어보지 못한 이고 안철수 후보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의사가 된 데다 기업의 시이오(CEO)로 살아온 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부자는 아니었더라도 이들이 넉넉하고 유복하게 자란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가난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대권에 뜻을 두면서 가난한 국민을 어떤 방식으로 부조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이름이 ‘맞춤형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국민의 삶의 질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데 별 차이가 있을 듯하지는 않다.

 

가난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이라고 해서 이들의 정책이 가난을 체험한 이들과 특별히 다를 이유는 없을 터이다. 이해란 반드시 체험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주관적 경험보다 객관적 인식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난? ‘불편하고 부끄러운 것…’

 

그러나 그것은 꼭 거기까지이다. 대선 후보들이 펼쳐 보이는 장밋빛 미래로 정작 가난한 사람들의 굽은 어깨가 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정작 그것이 사회적 강자들의 이해와 배치될 때, 양념 혹은 구색으로 오른 가난 대책이 갈 길은 뻔하다는 얘기다.

 

가난을 화두로 두서없이 지껄였다. 이런저런 얘기였으나 핵심은 “‘당신들의 가난’은 우리들의 그것과 별로 관계없다”이다.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즐겨 정치적 이슈가 되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 가난한 이들의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라는 속담이 공연히 생겼겠는가.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는 여전히 가난한 이들에게는 ‘문밖’의 일이다. 요즘 투표 시간 연장으로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정작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거참여란 고급스러운 선택일 수밖에 없는 역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다.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가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세상의 변화에 걸맞게 ‘쿨’해졌다. 그래서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는 “가난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쪽팔리는 것이다.”로 바뀌었다. 중고생들이 겨울철에 입는 외투에까지 ‘계급’이 부여될 정도로.

 

지나치게 비관적인 인식이라고 타박해도 어쩔 수 없다. 오히려 현실은 더 비관적일 수도 있는 까닭이다. 세상의 근본적 변화를 겨냥하는 진보정당의 외침이 그나마 진실을 환기하게 하긴 한다. 그러나 막장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여전히 ‘계급 배반 투표’를 답습하는 이 역설 앞에서 ‘가난’이 갈 길은 아직은 멀기만 하다.

 

 

2012. 10.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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