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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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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잉여’ 아닌 ‘결핍’에서…김정환 시 「가을에」

by 낮달2018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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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진귀함과 고귀함’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으로 채워진다

 

어제 상주에 다녀왔다. 시를 쓰는 선배가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스케치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서 피곤했던가 보았다. 5시께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9시 안 돼 고꾸라졌다. 실컷 잤다 싶어 깨어나 시간을 보니 새로 1시였다.

 

두어 시간 잠들지 못했다. 거실에 나와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베란다 문을 여니 자욱한 빗소리가 뛰어 들어왔다. 창에 머리를 바투 붙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앞과 옆 동에도 여럿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지금도 잠들지 못한 이들이 있는가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새벽 1시인 것이다. [시 '가을에' 읽기]

 

김정환의 시 ‘가을에’가 떠오른 건 그때다. 이 시를 만난 건 1990년대 막바지였다. 경북 북부의 시골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시 전문을 출력하여 운전석 앞에 붙이고 출퇴근 때마다 그걸 소리 내어 읽어 엔간히 외웠던가 싶었다.

 

▲ 시인 김정환(1954~   )

그러나 그 기억은 한 달이 채 가지 않았다. 그 무렵에 나도 더는 무언가를 암기한다는 게 불가능한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40대 중반이었는데 말이다. 서너 해 위의 선배 교사가 노래를 배울 때 가장 힘든 게 가사를 외는 일이라더니 그게 실감이 났다.

 

교직의 마지막 10여 년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지만, 김정환의 시를 가르친 기억이 없다. 그 시기의 18종 문학 교과서에 그의 시가 한 편도 실려 있지 않은 까닭이다. 모의고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글쎄, 문제집에서 어쩌다 그의 시를 구경할 수 있었던가…….

 

시에 대한 이해도 얕을 뿐 아니라, 문단 사정에 대해서도 워낙 아는 게 없는지라 나는 황지우, 이성복, 최승자 시인과 함께 ‘80년대 시의 시대를 견인’했다는 시인 김정환을 잘 모른다.

 

그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을 거쳐 민중문화운동연합 의장,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 등을 맡으며 90년대 초반 진보적인 문화운동 진영을 이끌어가고 있었는데도 앞의 동료 시인들보다 덜 호명되었던 이유는 더더욱 모른다.

▲ 어느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서둘러 잎을 물들인 은행나무는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시집 한 권 없어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그의 시 ‘가을에’에 나는 빠졌다. 그것은 하고많은 연시와는 다른 결로 사랑과 그 본질을 환기해 주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순결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그대의 몸짓’과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 뿐이라고 말이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치유될 수 없는 어떤 생애 때문일 뿐 /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그렇다. 사랑은 진귀함과 순결함 때문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 때문에 이루어지고 채워지는 것이고 ‘잉여’가 아니라 ‘결핍’에서 비롯하는 것일 뿐이다.

 

10월의 어느 새벽에 뜬금없이 시 한 편을 떠올리면서 새삼 가을을 실감한다. 뒤늦은 태풍 소식이 잇달아 들려오지만, 계절은 이미 가을이 확연하다. 오는 토요일(8일)이 한로(寒露), “바람은 한로(寒露)의 / 음절을 밟고 지나”(신동집 ‘송신’ 중에서)갈 것이다.

 

 

 

2016. 10.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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