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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22

6월의 연꽃 구경 근무하는 학교 교정의 연꽃 학교 뒷산 기슭에 연못이 하나 있다. 학교 꽃이 수련(睡蓮)이어서 ‘옥련지(玉蓮池)’라 불린다. 물론 인공으로 조성한 못인데, 드는 물도 빠지는 물도 없으니 그 물의 사정은 짐작할 수 있겠다. 이 학교를 나온 딸애는 서슴지 않고 ‘4급수’라고 말할 정도다. 어느 날 보니 그 4급수 연못에 연꽃이 피고 있었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진흙과 연꽃’이란 비유는 ‘번뇌와 해탈’처럼 양극을 이루지만 사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즉 ‘불이(不二)’라고 하는 불교적 인식의 표현이다. 나는 주변에서 연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처음으로 연꽃을 구경한 게 스무 살이 넘어서인 듯하다. 요즘은 대규모로 연을 재배.. 2020. 6. 14.
“거기 사람이 있다!” 영도조선소 크레인에 오른 노동자 김진숙 지난 주말 부산 영도조선소. 전국 각지에서 희망 버스를 타고 천여 명의 사람들이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파업 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찾았다. 오랜 싸움에 지쳐가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평범한 시민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그 연대의 만남은 사측이 동원한 용역의 폭력에 얼룩졌다고 한다. 경찰은 시종 사태를 방관했고, 보수언론은 사실을 왜곡 보도함으로써 ‘희망 버스’와 ‘시민 연대’가 가진 의미를 외면했다. 에 실린 ‘이명수의 사람그물’ “그래야 사람이다”가 전하는 경위다. “……한진 파업노동자 가족의 눈물 고백은 가슴이 저리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끼리 투쟁하다 우리끼리 말라죽는 거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매일 사원아.. 2020. 6. 14.
“말려 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서평] 밀양 구술 프로젝트 … ‘슈퍼 갑’ 국가에 맞선 할매 할배 외국으로 이주하지 않는 한 제가 나고 자란 나라(국가)를 부정할 수 있는 백성은 없다. 속지주의니 속인주의니 하는 복잡한 개념을 보탤 필요 없이 사람은 태어나면서 절로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 그것도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주어지는. 그래서일까. 여느 사람들의 삶에서 국가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납세나 병역, 교육과 같은 의무도 습관처럼 받아들일 뿐, 개인이 구체적 문제의 당사자로서 국가를 상정하는 일은 드물다. 올림픽이나 아시아 경기대회 같은 국가 대항의 스포츠 경기 등에서 국가적 동일성을 인식할 때 나라는 때로 구체적이고 친근한 이웃의 얼굴로 돌아올 뿐. 그러나 국가가 요령부득의 이유로 내 신체나 거.. 2020. 6. 13.
6월에 익어가는 것들, 혹은 ‘화해와 평화’ 6월, 익어가는 꽃과 열매, 그리고 남북의 화해 6월, 익어가는 것들 6월이다. 한동안 다투어 피어나던 꽃들도 고비를 맞았다. 찔레에 이어 온 동네를 붉게 물들이던 장미꽃이 아마 동네에서 만난 마지막 봄꽃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불타오르기 시작한 장미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인근 공립 중학교, 그리고 산 아래 이어지는 주택가 담장으로 번져갔다. ·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 qq9447.tistory.com · 동네 한 바퀴 ② 살구와 명자.. 2020. 6. 12.
‘고객님’에서 ‘사장님’까지 - 우리말의 ‘호칭’ 생각 두루뭉술한 우리말의 ‘호칭어’ 접객업소나 가게 따위에서 ‘사장님’으로 불린 경험은 중년 이후의 남성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글쎄, 그런 호칭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기실 ‘사장’과는 무관한 사람이 그런 호칭을 들어야 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런 호칭을 선택한 것은 일종의 예우다. 그가 사장이든 아니든 그건 별문제가 아니다. 이 호칭은 본인의 지위와는 무관한 ‘말치레(립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장’으로 불린 사람이 이걸 가지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지나가는 말로 ‘나 사장 아닌데…….’ 하고 얼버무리는 게 고작인 것이다. 사장님, 아버님… 나는 집 앞의 이용소에서 10여 년 가까이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었다. 상.. 2020. 6. 12.
아이 업은 저 여인, 어딜 가는고 안동 서지리 ‘서낭당’과 ‘선돌’을 찾아서 소싯적 일이다. 이웃 마을에서 산 너머 동네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작로로 가면 금방이었지만 자동차도 드물고 어지간한 거리라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다. 밋밋한 오르막 위 산등성이에 일부러 만든 듯한 묘한 돌무더기가 하나 있었다. 사람마다 거기다 돌멩이 하나씩을 던져 넣고 지나갔다. 그 마을 아이들은 그게 ‘아기 무덤’이라고도 했고, ‘귀신 무덤’이라고도 했던 것 같다. 거기다 돌 하나라도 던져넣고 가지 않으면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우리를 은근히 을러대곤 했다. 지금은 아마 그 길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의 물결이 들이닥치면서 시골에 남아 있었던 공동체의 흔적 따위는 거짓말처럼 지워졌으니까. 그 미스터리의 돌무더기가 .. 2020. 6. 11.
2인칭 대명사 ‘당신’ 정치권의 2인칭 대명사 ‘당신’ 논란 요즘 ‘당신’이란 낱말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권발 소식이다. 거두절미, 요점만 따서 말하면 이렇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충청도에서 열린 당원 보고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정원과 단절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 그래야 당신의 정통성이 유지된다.” 이 발언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 의원이 대통령에게 쓴 ‘당신’이라는 지칭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제2의 귀태’ 발언이라며 반발,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해찬 의원 측은 “‘당신’은 상대방이 없을 때 높여 부르는 말이지 막말이 아니”라고 일축했다고. 당신, ‘막말’인가, ‘높임말’인가 여기까지는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정치적 공방으.. 2020. 6. 11.
17세기 ‘후미에’, 21세기 한국에 오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증’하라는 어떤 국회의원 현 정부 들어 이른바 ‘퇴행’이라고 할 만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긴 하다. 2012년 여름, 이 나라 역사는 바야흐로 된통 뒷걸음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6월 9일 자 의 사설은 새누리당이 연출하는 이른바 ‘매카시즘 광풍’을 빗대어 ‘6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질책한다. 1950년대 미국 정가를 휩쓴 ‘매카시즘 광풍과 판박이’라면서 말이다. ‘종북’을 후미에 식으로 ‘검증’하자? 이 ‘시대착오적 종북몰이’의 한복판에 새누리당의 한기호라는 국회의원이 있다. 그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종북 의원을 가려낼 수 있다”고 하며 “북핵 문제, 3대 세습, 주한미군 철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의 문제에 질문을 하면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했단다. 그는 그 방법으로.. 2020. 6. 10.
‘예민한 살갗’의 외침 - 6·9 작가선언 작가들, 정치검찰과 수구 언론을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로 고발 시인, 작가 등 문인들이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땅에서 문인들의 현실 참여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졌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투쟁은 가장 좋은 예다. ‘절대 자유’를 추구하긴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시대와 현실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소설 의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는 시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책무를 ‘잠수함의 토끼’에 빗댔다. 그것은 사회적 위기를 확인하는 지표로 약자의 고통을 이용한다는 비유로 흔히 이해된다. 지금이야 기술 발달로 잠수함 내부의 산소 밀도를 쉽게 점검할 수 있지만, 작가가 잠수함 승무원이던 때만 해도 산소 감소의.. 2020. 6. 9.
‘고맙다’는 되고 ‘미안하다’는 안 된다 ‘고맙다’와 ‘미안하다’의 위계(位階) ‘고맙다’와 ‘감사하다’ 사이엔 뜻 차이도, 위계도 없다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의 손석희가 ‘감사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를 쓴다는 점을 가리키며 “‘고맙다’는 말 쓰는 것이 건방진 게 아니라는 점 인식할 필요 있다”고 환기해 주었다. [관련 기사 : 손석희는 왜 “감사합니다” 말고 “고맙습니다”를 쓸까] 나도 고마움의 인사는 ‘고맙습니다.’로 한다. 의례적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행사를 진행할 때도, 여럿을 대표해 인사를 할 때도 ‘고맙습니다’만 쓴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고맙다’보다 ‘감사하다’가 더 격식적인 성격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고맙다’는 우리 고유어고, ‘감사(感謝)하다’는 한자어지만 이 두 낱말이 각각 뜻하는 바는 다르지 .. 2020. 6. 9.
멋있지 않아도 좋다! 건강하게 돌아와다오! 해병 신병 교육훈련 수료식 참관, 면회기 ‘그래도 군대는 가야 한다’는 ‘숙맥’ 조카[기사 바로 가기]는 기어코 입대했다. 조카는 군대를 마치고 복학하는 타이밍까지 고려해 육군에 응모했다. 그러나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입대에 실패한 조카는 궁여지책으로 해병대에 지원했다. “하필이면 해병대야. 그러잖아도 고생스러울 텐데 굳이 해병대를 지원할 게 뭐람.” 친지들의 근심도 당연히 컸다. 한 다리를 건너긴 했어도 나 역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도 전의 기억이긴 하지만 나도 해병에 대한 인상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렀다. 군대도 달라졌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전히 군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트라우마가 겹겹이 묻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도 녀석의 입대 결심을 말리.. 2020. 6. 8.
무기수 김신혜 앞에서 멈춘 ‘정의’ [서평] 박상규·박준영의 르포르타주 살아가면서 누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우리는 무심코 남의 물건을 동의 없이 가질 수 있고, 누군가를 속이고 위협하거나 때려서 상처를 입힐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행위의 결과가 곧 절도, 사기, 상해, 살인이라는 형사 범죄다. 그러나 소시민 대부분은 평생 그런 상황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감옥이나 법원은 말할 것도 없고 파출소에조차 한번 불려가는 일도 없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긴 하지만 누구나 무엇을 훔치고, 누군가를 속이거나 때리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법과 정의’에 대한 ‘로망’과 현실 모두에게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은 누구나 그런 상황에 휩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2020.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