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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22

팔자에 없는 ‘종합소득세’를 내다 소액의 원고료 수입 때문에, ‘종합소득세’ 자진 신고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모든 봉급생활자처럼 ‘세금’에 관해선 나는 꿀릴 게 없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소득은 얼음같이 드러나 있는, 이른바 유리 지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월 세금을 공제한 급여를 받고, 연말에는 원천징수한 세액의 과부족을 정산한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자의는 아니지만, 가장 모범적인 납세자인 셈이다. 봉급생활이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소득에 매기는 세금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연말정산 때면 으레 가짜 약값 영수증 따위를 만들어 제출하던 시기에도 나는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건 내가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걸 귀찮고 성가신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행위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 2020. 6. 6.
짧은 만남, 긴 여운 방송통신고에서의 짧은 만남 어제는 부산 동래고등학교에서 방송통신고 영남 연합 체육대회가 열렸다. 고교생(?)이 치르는 대회라기엔 대회 규모도 내용도 만만찮다. 우리 학교도 세 대의 전세버스 편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애당초 친선행사인 만큼 승부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다. 영남권의 방송고는 모두 10개교다. 경북 4개교를 비롯하여 대구, 울산에 각 1개교, 부산과 경남에 각 2개교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남녀공학인데, 부산의 동래고는 남학교, 경남여고는 여학교라는 점이다. 입장식에서 모두 남녀가 같이 들어오는데, 두 학교는 단출하게 각각 남학생과 여학생만 들어왔다. 십 대 청소년도 아닌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는 광.. 2020. 6. 5.
‘표절 논란’ 이후, 독자는 ‘호갱’인가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 이후의 독자 ‘신경숙 표절 논란’을 다룬 “성공한 ‘작가’의 표절은 ‘무죄’다?”를 쓰고 난 뒤, 나는 적어도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게 일정한 변화의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 아직 결과를 말하기엔 이른 건 사실이지만 - 나는 내가 아직도 순진하고 어수룩하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했다. 발 빠르게 창비가 관련한 입장을 밝혔고 신경숙도 창비에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신경숙은 “ 외엔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은 모르는 작품이다. 독자들께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다.”고 밝혔다고 했다. 고종석, “창비는 돈 몇 푼에 제 이름을 팔았다” 신경숙의 입장은 요약하면 ‘나는 모르는 일이다. 믿어달라.. 2020. 6. 5.
“성공한 ‘작가’의 표절은 ‘무죄’다?” - 신경숙 표절 논란 작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부쳐 목하(!) 대한민국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중견작가 신경숙 문학의 ‘표절’을 제기한 동료작가의 고발이 화제다. 시인이자 작가인 이응준이 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드러난 표절 사실은 일단 꽤 충격적이다. [관련 기사 :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일단’이라고 전제한 것은 그가 제시한 표절 의혹이 아직 대중의 공감과 동의를 받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표절 혐의는 제시한 증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는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지만, 표절 혐의는 상식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동료작가가 고발한 ‘신경숙의 표절’ 이응준은 신경숙이 자신의 단편에다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의 소설.. 2020. 6. 4.
‘조선의용대의 영혼’ 윤세주 열사, 타이항산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2년 6월 3일-윤세주, 타이항산 폔청 전투에서 전사 1942년 6월 3일, 조선의용대 화북(華北)지대 정치위원 석정(石正) 윤세주(尹世胄, 1901~1942)가 타이항산(太行山) 석굴에서 순국했다. 허베이(湖北)성 폔청(偏城)에서 일본군의 제팔로군 소탕 작전에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은 지 닷새 만이었다. 폔청 전투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중국 타이항산맥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운 타이항산 전투 가운데 후자좡(胡家庄) 전투·싱타이(邢台) 전투(1941)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1942년 5월 28일, 허베이성 셰현(涉縣)의 북쪽 가장자리 산시성 경계에 있는 폔청에서 시작된 이 전투는 일본군의 소탕 작전에 대항한 팔로군의 반 소탕전으로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5월 29일 항일.. 2020. 6. 3.
그 삶과 시- 박영근 유고 시집『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노동시인 박영근(1958~2006)의 삶과 죽음 시집 몇 권을 샀다. 지난번 글(노동시인 조영관과 임성용의 만남)을 쓰면서 온라인 책방 보관함에 갈무리해 둔 조영관 유고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 임성용 시집 『하늘공장』,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 등이다. 생각난 김에 민음사에서 펴낸 소월 시집 『진달래꽃』과 만해 시집 『님의 침묵』에다 릴케 시집 『형상시집 외』도 샀다. 『진달래꽃』은 중학교 1학년 때 읍내 문방구에서 100원을 주고 산 이래 두 번째로 사는 소월 시집이다. 그러고 보니 그 손바닥만 한 문고본의 조악한 시집이 내가 난생처음으로 돈을 주고 산 책이었다. 시의 ‘효용’, 국밥과 소금? 아이들에게 소월과 만해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서가에는 그들의 시집 한 권 .. 2020. 6. 2.
백선엽과 필리프 페탱, ‘구국’과 ‘반역’ 사이 백선엽 현충원 안장 관련 논란... ‘국가반역자’를 기리지 않는 프랑스 최근 한국전쟁의 ‘영웅’이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한 백선엽(1920~ ) 예비역 대장과 관련 뉴스가 뜨겁다. 언론이 올해 100세가 된 백 대장을 불러낸 것은 그가 사망하게 되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찬반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와 ‘한국전쟁 영웅’ 사이 한국전쟁 초기 전세를 뒤집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1950)’를 비롯하여 ‘평양전투(1950)’와 ‘중공군 춘계공세(1951) 저지’ 등 여러 차례 승전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백선엽에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은 충분하다. 그가 이명박 정부 때 우리나라 최초의 ‘명예 원수’로 추대될 뻔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2020. 6. 1.
고정희, 우리 모두에게 이미 ‘여백’이 된 고정희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좋은 시인이나 작가를 제때 알아보지 못했을 때 느끼는 부채감은 꽤 무겁다. 그것은 성실한 독자의 의무를 회피해 버린 듯한 열패감을 환기해 주는 까닭이다. 제때 읽지 못했던 시인 작가로 떠오르는 이는 고정희 시인과 작가 공선옥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훌륭한 시인·작가는 수없이 많을 터이다. 요컨대 내가 말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공선옥은 내게 그를 너무 늦게 읽은 걸 뉘우치게 한 작가다. 2003년에 그의 소설집 『멋진 한세상』을 읽고 나서 나는 책 속표지에다 그렇게 썼다. 너무 늦었다……. 나는 삶을 바라보는 공선옥의 눈길과 태도에 전율했다. 나는 그이의 삶과 그가 그리는 삶이 어떤 모순도 없이 겹.. 2020. 6. 1.
그들만의 커뮤니티, 광고 두 개 아이들만의 공통체 아이들은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침 8시에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교하니 아이들은 무려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학교는 아이들이 일상이 보장되는 온갖 형식을 갖추고 있다. 유리창에 매달린 칫솔, 교실 콘센트마다 꽂힌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 정오를 전후하여 행정실 옆 공간에 쌓이는 택배상품들(아이들은 책이나 생활필수품 등을 택배로 학교에서 받는다.)은 말하자면 이 입시경쟁 시대가 낳은 새로운 학교 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양이 한참 떨어지는 낡은 교실의 수업용 컴퓨터로 메일을 받거나 숙제를 하고, 도서와 상품을 주문하는 일을 빼면 아이들은 인터넷과 한참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2020. 5. 31.
오월의 산, 숲은 가멸다 어느덧 오월도 막바지입니다. 오늘은 대구 지방의 온도가 섭씨 35도에 이를 거라니 계절은 좀 이르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숲은 더 우거졌고 산색도 더 짙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얼마간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도 숙지는 듯합니다.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 풍매화(風媒花)는 이제 꽃가루를 날리고 받는 일은 끝낸 것일까요. 수분(受粉)에서 수정에 이르는 6개월 뒤에 비로소 암꽃은 솔방울을 달게 되겠지요. [관련 글 :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올에 유난히 짙은 향기로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던 아까시나무꽃도 이제 거의 졌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아까시나무 꽃잎은 산길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밟히고 있습니다. 싸리꽃도 .. 2020. 5. 29.
우리 아이들이 본 다큐 영화 <우리 학교>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 교원, 학생들과 함께한 3년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는 김명준 감독이 홋카이도 조선 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함께 3년여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해방 후 재일 조선인들에 의해 세워진 조선학교의 역사와 그 현재에 관한 이야기며, 타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자기 민족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키려는 민족 구성원들의 이야기이다. 지난 5월 18일부터 지역의 한 대학 강당에서 DVD로 가 상영되었다. 이틀 동안 2회 상영된 이 영화를 본 이들은 약 6백여 명, 그중 100여 명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세계 인식의 폭을 넓히는 매우 좋은 기회임을 역설했고 아이들은 이른바 나의 ‘강추.. 2020. 5. 28.
슬픔’과 ‘분노’를 넘어 ‘여성성’으로 황석영 장편소설 황석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기쁨이면서 고통이다. 마치 잘 벼루어진 끌이나 대패로 미끈하게 다듬어 놓은 얼개와 짜임을 만나는 것이 기쁨이라면, 그것들이 냉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저며내는 이 땅의 사람 살이의 모습들은 둔감해진 정수리를 날카롭게 베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70년대 이후 내내 진보적 문학 진영을 짓눌렀던 화두였던 ‘리얼리즘’을 황석영만큼 건조하게 천착해 온 작가가 또 있을까. 파란과 격동의 20세기 말의 문학적 연대기인 을 거쳐 이데올로기의 광기와 그 덫에 걸린 한 시대를 조감한 을 거쳐 그는 이제 고대사회의 인신공희(人身供犧)라는 제의적 공간과 불교적 환생의 세계에 침잠해 있던 심청을 냉혹한 근대화 시대의 저잣거리로 끌어낸 듯하다. 이 소설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본격화와 .. 2020.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