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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31

화왕산 기슭에서 ‘용을 보다’ 돌담과 돌장승의 절집, 관룡사(觀龍寺) 기행 고통스러운 중생의 삶이 ‘이 언덕(차안:此岸)’에 있다면 바다 건너 ‘저 기슭’이 바로 피안(彼岸)이다. 그것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일’, 즉 바라밀다이다. 피안은 생사의 바다를 건넌 깨달음과 진리, 무위(無爲)의 언덕을 뜻하니, 열반 곧 니르바나의 경지를 이르기도 한다. ‘번뇌가 소멸하여 삶과 죽음마저 초월한 상태로서의 피안’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바의 바다를 건너야 한다. 고통 없는 피안의 세상으로 건너갈 때 타는 상상의 배가 바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다. 반야는 ‘진리를 깨달은 지혜’, ‘바라밀다(彼羅蜜多)’는 ‘피안의 세계로 간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절집은 흔히 깨달음을 얻어 도달해야 할 피안의 세계를 향하는 배와 같은 모.. 2020. 7. 12.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 처음 만난 시로 기억된다. 시보다는 시와 관련된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회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애매하게나마 나는 ‘문학’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학과 동시에 들어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소설에만 치우친 책 읽기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주제로 한 시건방진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짓 만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무렵, 동아리의 친구들에게 거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소설이 이동하의 장편, 이었다. 삼성문고로 출간(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의 정가는 160원이다, .. 2020. 7. 11.
2020 텃밭 농사 시종기(1) 감자 농사 두 번째 감자 농사 올해 블로그는 가히 ‘개문 휴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나흘이면 한 편씩 꼬박꼬박 무언가를 끄적이던 때와 달리 올해는 마치 질린 것처럼 글쓰기를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정말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글을 써낸 지난 10여 년이 거짓말 같을 지경이다. 물론, 아주 문을 닫고 논 것은 아니다. 그간 블로그에 썼던 1천몇백 편의 글 가운데, 그나마 쓸 만한 글을 골라 새로 티스토리에 재수록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 왔기 때문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 7월 10일 현재, 블로그에 쌓인 1,094편의 글이 그 결과다(여기엔 일부러 중간중간에 넣어 놓은 ‘예비’ 꼭지가 있으니 실제 글은 이보다 적다). 오늘까지 올해에 새로 쓴 글을 몇 편이나 될까 세어 봤더니, 모두 27편이다.. 2020. 7. 11.
[2010 텃밭일기 ⑥]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다 ‘장마’라더니 정작 비는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잠깐 내리다 그친다. 변죽만 울리고 있는 장마철,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그래도 두어 차례 내린 비는 단비였던 모양이다. 밭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새파랗게 익어가는 작물들의 활기가 아주 분명하게 느껴진다. 밭을 드나들 때마다 저절로 이웃집 고추와 우리 걸 비교해 보게 된다. 밭 어귀의 농사는 썩 실해 보인다. 이들의 고추는 키도 훤칠하니 클 뿐 아니라 대도 굵고 전체적으로 고르게 자라서 한눈에 턱 보면 농사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것이 탐스러워 보’여서 만은 아니다. 파종 시기도 빨랐고 제대로 가꾸어 준 표시가 역력한 것이다. 밭 주인이 성급하게 뿌려준 비료로 골병이 들었던 우리 고추는 거기 비기면 뭐랄까, 그간 .. 2020. 7. 11.
평창, 혹은 당신과 나 안의 파시즘 평창 2018 동계올림픽 유치 관련한 ‘애국과 비애국’ 갈라치기 어젯밤에는 일찌감치 자리에 들어 아침에 뉴스를 보고 평창 2018 동계올림픽 유치가 성공했다는 걸 알았다. 잘됐죠? 잘됐네. 삼수라더니 성공했으니 다행이야……. 아침을 짓고 있던 아내와 덤덤한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또 뉴스는 그거로 도배를 하겠네. 그럴 만하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야……. 모두가 바빴던가.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창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자리의 후배 교사와 잠깐 이래저래 나라 안이 시끄러우니 필요한 쪽에서 평창을 잔뜩 우려먹지 않겠냐는 얘길 건성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국민’과 ‘비국민’에 담긴 기시감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무려 11년 동안 노심초사한 노력의 결과는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하는 게 이상할 게 .. 2020. 7. 10.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 떠나다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1932 ~ 2015. 7. 10.) 오늘 새벽,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 이집트 출신의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Omar Sharif, 1932~2015)의 부음을 읽었다. 알츠하이머로 투병해 왔던 그는 어제(7월 1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향년 83세. 그의 부음은 무심하게 받아들였지만, 그가 여든을 넘긴 노인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깐 망연했다. 중1 때 문화 교실로 본 내가 오마 샤리프를 만난 것은 1969년, 중학교 1학년 때 영화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노벨문학상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 를 다시 보았다. 상영 시간이 무려 3시간 12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열네 살 때도 이렇게 길었던가, 그러나 거짓말처럼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시 qq9447... 2020. 7. 10.
무슨 말이 이래? -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들 ‘번역 투’의 국적이 의심스러운 문장 우리 민족이 더는 혈통의 순수성을 주장할 수 없듯, 우리말도 어차피 순혈은 아니다.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겪었고, 더러는 실질적으로 그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말에 녹아든 이민족의 말도 여럿이다. 고려 시대에 실질적으로 우리의 지배했던 몽골도 그렇고 개화를 전후한 시기의 일본과 일부 서양 나라도 그렇다. 그러나 개화와 해방 이후 물밀듯 들어온 외국어-특히 영어와 일본어-와 접촉하면서 생긴 우리말의 변화는 훨씬 심각하다. 만남이 잦아지면서 원래 우리말에는 없었던 생소한 어법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흔히 이를 두고 ‘번역 투’라고 하는데 이런 국적이 의심스러운 문장을 쓰면서도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때로는 우리는 사.. 2020. 7. 8.
‘아내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에 숟가락을 걸치다 [퇴직 이후, 생활의 복원] 나의 시간이 가고 아내의 시간이 왔다 2016년 2월, 32년간의 교단생활에서 물러났다. 정년이 남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됐다는 걸 깨닫고 주저 없이 학교를 떠났다. 물론 그건 남은 동료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4년, 생계를 위한 노동과 그것이 규정하는 일과에서 벗어나 나는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고 생각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자유라기보다는 ‘일상’과 ‘생활’이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하는 공간이었을 뿐인 집이 비로소 내 삶의 가장 주요한 공간이 되었다. 퇴직 후 내가 한 일은 내 일상과 생활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나는 늘 일해 가용(家用)을 벌어왔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2020. 7. 7.
‘노숙(露宿)’의 기억 중앙인사위원회 앞 노숙 항의 지난 7월 25일 오후, 나는 복원된 청계천 시작점 옆, 한 빌딩 앞 인도에 마련된 야외용 매트에 동료 50여 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길 건너 동아일보사 건물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보수의 성채인 양 위압적으로 서 있었고, 끊임없이 오가는 행인들 너머 인도턱에 바투 세워 놓은 이동경찰서 차량(이른바 ‘닭장차’) 세 대가 차도에서 달려드는 매연을 막아주고 있었다. 지휘관인 듯한 사복 차림의 중년 사내가 주변을 서성거렸고 헬멧을 덮어쓴 대여섯 명의 의경들이 우리가 등지고 있는 건물의 현관 앞에서 방패를 앞세우고 마치 로마의 검투사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무표정한 눈빛 너머 현관 입구에는 ‘중앙인사위원회’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랬다. 우리는 중앙인사위원회에 복직 교사 원상회복을.. 2020. 7. 6.
선돌, 구실 잃은 옛 ‘바위’들은 외롭다 안동 와룡면의 ‘자웅석’과 ‘선돌’ 을 찾아서 안동에 십 년 넘게 살아왔지만, 아직 안동에 대해선 모르는 게 더 많다. 이 경북 북부의 소도시가 드러내는 오늘의 모습을 살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서울의 2배가 넘는 땅덩이 곳곳에 숨은 이 땅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안동이 2006년부터 써 온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다. 글쎄, 안동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구호는 다소 민망한 구호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외부인들에게는 좀 다르게 다가가는 모양이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는 국가 브랜드 선정위원회가 전국 기초·광역단체 246곳의 브랜드를 평가한 ‘2010 국가 브랜드 대상’에서 전통문화 브랜드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니 말이다. 안동은 ‘한.. 2020. 7. 4.
우리나라 좋은 나라, 풍경 2제 [풍경 1] ‘최저임금’ 인상, 1,090원과 30원 사이 30원이냐, 1,090원이냐를 두고 다투던 최저임금 심의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하지 못한 채 합의 시한인 어젯밤 자정을 넘겼다고 한다. 올해 최저임금은 4,320원, 노동계의 요구대로 1,090원을 인상하여도 5,410원이다. 말하는 것조차 민망한 ‘30원’은 재계의 인상안이다. ‘비지니스 프렌들리’나 감세 혜택을 온전히 누린 재계가 내놓은 이 30원은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잊은 부끄러운 수치다. 이들은 마치 노동의 대가를 달걀값이나 설탕값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평균 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고작 32%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6위에 그친다. 2011년 최저임금인 시급 4,320원으로는 밥 한.. 2020. 7. 3.
<서머타임 킬러>의 칼 말덴(Karl Malden) 지다 1912~2009.7.1. 오늘 아침 ‘궂긴 소식’은 미국의 원로 배우 칼 말덴(Karl Malden, 1912~2009)의 부음을 알린다. 향년 97세. 신문은 그가 ‘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한 배우였다고 전하지만, 나는 칼 말덴이 출연한 영화 몇 편으로만 그를 기억한다. 그가 출연한 작품 목록을 보면서 나는 아, 잠깐 탄성을 질렀다. 1970년대 흑백 TV 시절에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 등에서 만났던 영화 나, 도 그의 출연작인데, 정작 말론 브랜도의 포스가 너무 강렬했는지, 거기서 칼 말덴을 보았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도시의 중학교로 진학해서 ‘문화 교실’로 관람한 첫 영화가 이다. 샤이안 인디언들과 백인들의 싸움이 소재인 영화였는데, 정작 주연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보다 리처드.. 2020.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