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늦깎이들과의 산행-서산 팔봉산

by 낮달2018 2020. 11. 18.
728x90

방통고 학생들과 함께 서산 팔봉산 산행

▲  서산 팔봉산은  362m 의 낮은 산이지만 봉우리에서의 서해 조망이 좋다 .
▲ 2봉에서 바라본 1봉. 감투봉 또는 노적봉으로 불린다고 한다.

산이 ‘이름’을 얻는 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듯하다. 주변에 막연히 ‘앞산’, ‘뒷산’으로 불리는 이름의 산이 좀 많은가 말이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그 방향으로 이름을 붙이는 게 고작인 이유는 그 산이 하고많은 산 가운데 하나인 ‘그저 그렇고 그런’ 산이기 때문이다. 더 높거나 더 깊거나 더 수려한 산세를 갖고 있었다면 ‘앞뒤’ 대신 그에 걸맞은 이름을 얻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지난 10일, 충남 서산 팔봉산(八峰山)을 향해 출발하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잠깐 들여다본 인터넷에선 ‘여덟 개의 바위 봉우리’가 올망졸망 이어졌다고 해 ‘팔봉산’이라고 했단다. 봉우리의 숫자로 이름 붙이는 것은 아주 수월한 명명법일 듯하다. 다른 어떤 고려를 할 필요 없이 단지 봉우리를 특정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필 ‘서산 팔봉산’인 이유

 

봉우리의 숫자로 이름 붙인 산은 대체로 홀수로 된 게 일반적이다. 봉우리가 셋인 삼봉산(三峰山)은 경남 함양과 충북 제천, 경기 파주에 있고, 다섯인 오봉산은 강원도와 전라도, 경상도 등에 꽤 여럿이 있다. 칠봉산은 경기도 동두천에 있고 구봉산은 대전과 전북 진안, 전남 여수 등에 있다. 홀수를 양(陽)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선호하는 우리 민속의 영향 때문일까.

 

그러나 짝수로 된 산으로는 팔봉산이 고작인 듯하다. 강원도 홍천에 있는 팔봉산(327m)과 충남 서산에 있는 팔봉산(362m)이 그것이다. 그러나 서산 팔봉산은 원래 구봉이었단다. 제일 작은 봉우리를 제외하자 매년 12월이면 그 봉우리가 자기를 넣지 않았다고 울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나중에 그 봉우리는 태안으로 옮겨가 백화산(284m)이 되었다나.

 

이번 산행은 방송고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동아리 ‘산악회’에서 주최한 행사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치르는 행사로 이번 산행은 2013년의 마지막 산행이었다. 그간 한 번도 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지라 나는 체면치레를 할 요량으로 마지막 산행에 낀 것이다.

 

경상북도 구미에서 충청남도 서산까지 달려갈 만큼 팔봉산은 유명하거나 매력적인가. 모르긴 해도 그것은 아니었다. 우리 방송고 늦깎이 학생들의 산악회는 산행 자체보다는 오고 가는 버스 속에서 보내는 친목과 유흥의 시간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편도로 세 시간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하필이면 그리 먼 데를 갈 이유가 있냐고 묻자, 산악회장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 버스에 타는 시간이 길수록 즐기는 시간은 늘어나지요.
- 버스에서 춤추고 노는 게 고통 법규 위반이라는 건 아시지요?
- 형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 …….
- 단, 산행은 가볍습니다. 해발 400m 미만이니까요.

 

나는 늦깎이 학생들의 문화를 존중하기로 했다. 달리는 관광버스에서 통로에 나와 ‘음주 가무’하는 것은 도로교통법 49조 위반이다. 적발되면 버스 기사는 벌금에다 면허정지까지 당하는. 그러나 그 법규도 우리 백성들의 ‘음주 가무’에 대한 유구한 전통 앞에선 맥을 못 춘다. 씁쓸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 제3봉에 오른 우리 일행들. 산 위에 올라 이른바 ‘인증샷’을 남기는 것도 관례다 .
▲ 팔봉산은 높이는 별로지만 그 경관이 남다르다.

8시 반쯤 출발한 관광버스는 11시쯤에 서산시 팔봉면 양길 주차장에 닿았다. 주차장은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버스와 승용차, 그리고 서둘러 산행을 떠나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우리는 도시락 하나씩을 받아 배낭 속에 넣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의 목적은 산행에만 있지 않다. 산악회장은 1봉과 2봉 사이로 올라 2봉 쪽으로 가서 정상인 3봉을 들렀다가 하산하는 코스를 권했다. 친절하게도 4, 5, 6, 7, 8봉은 이름 외에 볼 게 없다면서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정보도 알려주었다.

 

팔봉산에서의 조망, 서해 바다

 

부지런한 이들은 1봉에 갔다가 다시 2봉으로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일찌감치 1봉을 포기하고 2봉 쪽으로 길을 잡았다. 1, 2봉이 갈리는 고갯길까지는 밋밋한 오르막이었다. 그러나 해발 362m라는 산을 시뻐 보아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은 2봉과 3봉을 오르는 과정에서였다.

 

전체적으로 팔봉산의 능선은 밋밋하다. 그러나 1봉과 2봉, 3봉은 모두 바위 봉우리다. 거기 오르는 산길은 당연히 가파르고 험하다. 2봉은 힘센 용사의 어깨를 닮았다 하여 ‘어깨봉’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정작 2봉에 오른 사람은 2봉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그걸 확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신 2봉에서 1봉을 바라보면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1봉은 대감의 ‘감투’ 또는 ‘노적’을 쌓아 올린 듯하다고 하여 ‘감투봉’ 또는 ‘노적봉’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2봉에서 내려다뵈는 1봉의 모습에서 감투나 노적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형상의 바위 여러 개가 군데군데 소나무를 품고 선 1봉의 모습은 골산(骨山)이 그러하듯 ‘수려(秀麗)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봉우리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에 점점이 박힌 빨갛고 파란 등산복의 점경(點景)도 이채롭다. 그 너머 보이는 것은 서해다.

 

동해 바다에 익숙한 이들에게 서해는 마치 호수처럼 느껴진다. 거칠게 숨 쉬며 용틀임하는 동해가 젊은 바다라면 서해의 안존하면서도 처연한 모습은 마치 여인네의 조신함을 닮았다. 동해처럼 검푸른 빛깔도, 부서지는 물보라도 보이지는 않는 서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곳이 충청도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다.

 

2봉에서 헬기장을 거쳐 3봉으로 오르는 길은 꽤 험하다. 깎아지른 봉우리로 오르기 위해서 설치한 쇠 계단과 밧줄을 번갈아 타면서 올라 만나는 3봉이 팔봉산의 정상이다. 최소한의 통로를 빼면 죄다 바위투성이다. 자칫 부주의하면 실족하여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순간순간 엄습했다.

 

그러나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등산객들은 지치지도 않고 산길과 벼랑을 탄다. 여가도 전투처럼 즐기는 ‘한국인’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바위 봉우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산 아래 풍경을 조망했다. 멀리 팔봉의 들판과 가로림만을 바라보는 기분은 상쾌했다.

▲ 3봉에서의 조망.  서해와 가로림만, 팔봉의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

가팔라 오르는 데 꽤 힘이 들긴 하지만 팔봉산은 그만하면 수려하다 해도 좋을 산세와 일망무제 펼쳐지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았다. 비록 해발 400m에 미치지 못하는 산이지만 야트막한 산과 구릉 사이에 이른바 ‘돌올(突兀)’한 바위 봉우리, 그 봉우리 뒤편으로 다가오는 가로림만과 태안반도 일원의 풍광도 만만치 않았다.

 

팔봉산 봉우리에서 태안 앞바다로 떨어지는 해, 그 낙조를 바라보는 일은 상상으로 대신하고 이내 하산길에 올랐다. 헬기장 앞 정자에서 도시락을 비우고 술도 몇 잔 곁들였다. 오랜만에 먹는 도시락밥은 달고 맛있었다.

 

여흥과 ‘도로교통법 49조’

 

하산하니 주차장에는 산악회 일꾼들이 아예 한 상을 차려놓았다. 둥근 알루미늄 두리반(7, 80년대 집집이 있던)에 수육과 어묵탕 등의 안주를 곁들인 술상이었다. 두리반이 하도 반가워 어디서 났나 했더니 관광버스가 세트로 갖추어 다니는 것이라 했다. 바야흐로 우리의 레저문화는 관광버스가 유흥에 필요한 소품마저 준비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한 시간쯤 머물면서 새해에 산악회를 이끌 임원을 추천해 뽑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왕 온 길, 차는 논산시 강경의 젓갈 시장을 거쳤다. 학생들은 다투어 갖가지 젓갈과 새우, 따위를 샀다. 늦깎이들은 학생이기에 앞서 집에 가면 지엄한 가장이고, 어머니인 것이다.

 

강경을 떠나 학교로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 반 남짓은 여흥의 시간이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줄인다. 꼼짝없이 도로교통법 49조를 정면으로 어긴 시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만 밝혀둔다. 교사도 함께하자는 요청에 동료와 함께 통로로 나서 사지를 조금 놀렸더니 학생들의 환성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도.

 

어느덧 11월도 꺾였다. 이제 남은 방송고의 일정은 12월 첫째 주의 졸업여행뿐이다. 일찌감치 목적지는 경주로 정해졌다. 수학여행도 당일치기니 졸업 여행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학생들에겐 아마 그게 뒤늦게 치르는 고교 시절의 마지막 행사가 될 터이다. 학생들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선생님, 졸업여행 때도 오늘처럼 놀아주실 거죠?”
“좋지! 걱정하지 말아요. 이왕 버린 몸인걸, 뭐…….”

 

 

2013. 11. 18.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