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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10월의 학교 풍경, 그리고 아이들

by 낮달2018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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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학교 풍경

▲ 강당 뒤편 산기슭의 코스모스도 끝물이다 .

중간고사가 끝나면서 잠시 소강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책에다 코를 박고 있다. 아침 여덟 시 이전에 학교에 와서 밤 열 시가 넘어야 집으로 가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은 거의 14시간이 넘는다. 아이들을 남겨두고 퇴근할 때마다 안쓰러움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이다.

 

아이들은 학교 급식소에서 오후 1시, 6시에 각각 두 끼의 식사를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틈만 나면 매점으로 달려간다. 막대사탕이나 짜 먹는 얼음과자를 입에 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주전부리로 보상받으려는 ‘결핍’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집보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으니 자연 일상을 고스란히 학교로 옮겨야 한다. 교실의 콘센트에는 늘 휴대전화와 PMP, 전자사전 등의 충전기가 꽂혀 있고 아이들은 철제 사물함에 다 담지 못하는 책과 잡동사니들을 보관하는 종이 상자 하나씩을 책상 옆에 두고 있다. 말하자면 보조 사물함인 셈이다.

▲ 학교에서 하루 대부분을 머물다 보니 학교엔 아이들 흔적이 어지럽다.

하루 두 끼를 학교서 해결하니 칫솔도 빠질 수 없다. 유리창에다 아이들이 붙여놓은 칫솔 너머로 가을이 물들고 있다. 학교 현관의 우편함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받아보는 일간지가 늘 쌓여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아이들은 자주 저마다 가진 얇은 담요를 몸을 감싸는 일이 많다. 계절의 변화에 훨씬 민감한 여학생인 것이다.

▲ 창문에 붙여둔 치솔과 아이들의 휴대폰 충전모습

아이들은 쉬는 시간 등 틈만 나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일이다. 졸음은 아이들의 의지쯤은 간단히 배반해 버린다. 비몽사몽 졸음에 빠지는 데는 예외가 없으니 ‘잠에는 장사 없다.’라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 졸음을 견디기 힘들면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뒤편의 사물함에 기대선다. 자지 않고 수업을 듣겠다는 건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몰라도 그러는 아이들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2학기는 짧다. 견주어 보면 반드시 그런 건 아닌데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한가위, 개천절 같은 공휴일과 각종 행사 따위로 거저 지나가는 날도 적지 않은 데다 바야흐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세월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 아이들의 상상력은 방송 쪽의 단순 패러디 형태로 갇혀 있는 걸까.  5월 체육대회.

서둘러 오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가을이 깊다. 학교 뒷산 들머리의 옥련지 옆의 느티나무가 벌써 빨갛게 물들었다. 드러난 하늘은 투명하게 맑고, 끝물의 코스모스가 애잔하다. 옥련지 주변의 콘크리트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린 강아지풀도 이제 파장인 듯하다. 뒷산 골짜기로부터 스물스물 내려오는 건 단풍뿐이 아니라, 겨울인지도 모른다.

▲ 여전히 아이들의 시계는 국기를 가리고 ‘닥치고 공부’나 하라고 넌지시 권유하고 있다 .

 

2007. 10.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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