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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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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숲길로 드는 옛 가람, 고운사(孤雲寺) 아름다운 숲 속의 도량, 경북 의성의 등운산 고운사 고운사(孤雲寺)에 들른 건 지난 8월 중순께다. 의성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략 백오십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짬이 나는 대로 사진을 훑어보면서 방문길의 감흥을 되새기곤 했다. 비록 생물은 아니지만, 사진도 오래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참나무통에 든 포도주처럼 숙성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관련 글 : 의성 등운산 고운사(孤雲寺)의 가을 본색] 고운사, ‘시대와 불화한 고독한 천재’ 최치원과의 연 고운사 방문은 두 번째다. 9년 전쯤 가족들과 스치듯 들렀는데, 절간 한쪽을 흐르는 시내 위에 세워진 누각이 인상적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의성에서 근무할 때, 날마다 고운사 입구를 표시한 이정표를 쳐다보며 다녔지만, 정작 이 절.. 2021. 9. 10.
<한겨레>, ‘모아 댄 워즈(more than words)’는 심했다 한글 전용 원칙 , 그러나 ‘모아 댄 워즈’는 뭔가 는 창간 때부터 한글 전용의 가로쓰기 체제로 출발하여 우리 언론의 지형을 바꾸어 온 진보 언론이다. 창간 주주로 의 창간을 기다리다가 1988년 5월 15일 집에 배달된 창간호를 읽으면서 자못 벅찼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백두산 천지를 밑그림으로 목판 글씨로 새겨 넣은 다섯 자는 마치 그 감격시대의 표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 창간된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존 신문들도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늦게 가로쓰기로 전환한 매체는 이었던 것 같다. 한글 전용도 대부분의 매체가 를 뒤따랐다. 그러나 아직도 과 는 기사에서 한자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으며 한자로 된 신문 제호도 유지하고 있다. 신생지 가 창간되면서 시도한 변화는 여.. 2021. 9. 9.
23년, 그 ‘어머니의 눈물’ 일흔여덟 어머니 가슴속 아들은 여전히 스물여덟이다 살아 있다면 아들은 쉰둘이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슴속에 아들은 23년 전 스물여덟 살로 살아 있다. 사고로 운신할 수 없는 남편을 부양하며 마산에서 함안까지 오가며 생선을 팔았던 어머니. 대우중공업에 다니던 아들이 집에 다니러 온 날, 아들이 좋아하는 돼지불고기를 해주려고 평소보다 일찍 생선 노점을 접고 돌아왔지만, 아들은 반대로 어머니를 만나러 시장에 가서 길이 엇갈렸다. 그리고 그 불발로 끝난 만남이 모자가 나눈 마지막이었다. 며칠 뒤, ‘민주노조’를 꿈꾸던 아들은 실종되었다. 아들은 결국 아홉 달 만인 이듬해 3월 유골로 돌아왔다. 검찰은 아들이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어머니는 그걸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 2021. 9. 8.
‘길들여지다’는 ‘길들다’로, ‘잊혀진’도 이제 그만 [가겨 찻집] 불필요한 피동과 ‘이중 피동’ 표현들 10여 년 전, 여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룬, “우린 서로에게 잘 길들여지고 있다”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신학년도에 담임으로 아이들을 만난 지 한 달, 아이들과의 편안해진 관계를 기꺼워하며 쓴 글이었다. “한 달이 덜 되었지만, 아이들은 내게 잘 ‘길들여지고’ 있다. 어린 왕자가 말했던 것처럼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시에 나도 아이들에게 잘 길들여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면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되는’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새 블로그에 올리려고 글을 정리하는데 내 문서편집기 ‘아래아 한글 2018’은 그 제목을 비롯하여 본문 곳곳에 .. 2021. 9. 7.
군 복무 24개월 ‘백지화’? 청년세대 우롱이다 널뛰는 복무기간 논의…‘18개월’ 약속을 지켜라 얼마 전, 동료가 연가를 내고 입대하는 아들을 배웅하고 왔다. 그 아이는 강원도 최전선에 배치되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군 복무기간’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어서 “이거, 시기를 잘못 탄 거 아닌가” 했더니 동료들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확정 이전 입대자는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정정해 주었다. ‘군 복무기간’ 관련 논란의 핵심은 역시 ‘사병 복무기간 24개월 환원’ 방침과 2014년으로 예정된 ‘18개월 단축 방안’ 사이의 충돌이다. 참여정부 때 확정된 18개월 단축 방안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으로 재검토하겠다며 국방부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의장 이상우)는 ‘군 전력 강화를 위해 사병 복무기간 24개월 환원’ 방침을 밝힌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우연히 버스.. 2021. 9. 7.
숲 산책, ‘가지 않은 길’ 학교 뒷산의 숲을 걸으면서 얼마 만인가. 어저께는 빈 시간에 학교 뒷산을 올랐다. 9월이지만 여전히 산은 푸르고 그늘은 두터웠다. 사람들의 자취로 익숙한 옛길을 걷다가 문득 왼쪽으로 벗어난 작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오종종한 하얀 꽃의 물결이 수줍은 듯이 이어지고 있는 메밀밭이었다. 물론 이효석이 소설에서 묘사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은 아니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 풍경이 주는 ‘2% 부족한 느낌’ 때문이다. 메밀꽃은 화려하지도, 꽃송이가 크지도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꽃들이 어우러져 지어내는 수더분함이 바로 메밀꽃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내겐 ‘낯선 길’이었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숱하게.. 2021. 9. 7.
초가을 풍경, 릴케의 ‘가을날’ 릴케의 시 ‘가을날’의 초가을 풍경 서둘러 계절이 바뀌고 있는데도 우리는 무심하게 그걸 바라보고만 있다. 가을이 오고 있다. 일주일 후면 한가위인데도 고단한 삶이 서툰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일교차가 크다고는 하나 한낮의 수업도 그리 힘들지 않다. 열어놓은 출입문과 창문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의 손길은 부드럽고 살갑다. 그러나 여전히 창밖의 햇볕은 따갑다. 여름내 타오르던 정염(情炎)은 시방 마지막 갈무리를 위하여 자신을 태우고 있는가. 익어가는 것들을 위한 ‘남국의 햇볕’을 노래한 릴케의 시구를 떠올리면서 아이들에게 이 뜨거운 햇살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늦여름, 초가을의 햇볕은 모든 작물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높은 기온과 풍부한 일조량이 풍작을 예비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햇볕은.. 2021. 9. 7.
나눔의 한가위,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사할린 한인 달력 2015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연초에 를 통해서다. 사할린, 그 잘 상상하기 어려운 낯설고 물선 나라에 사는 한인들에게 세대와 고향을 이어지는 ‘음력 달력’이 필요하다는 먹먹한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사할린 한인 달력’을 만들기 위한 ‘희망 모금’을 만났다. 바빠서 다음에 들러야지 하고 생각하고선 그걸 까맣게 잊고 지냈다.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는 9월의 첫 주말,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읽다가 퍼뜩 그게 생각이 났다. ‘희망해’의 희망 모금, 사할린 한인 달력 2015 ‘사할린 달력’으로 검색해서 확인해 보니 ‘다음’의 ‘희망해’에서 진행 중인 모금(2014.8.1~9.30)은 마감 25일을 남긴 현재 목표의 95%를 달성.. 2021. 9. 6.
구미는 민주당 시장 택했는데… ‘박정희 우상화 사업’ 중단 안 하나 참여연대도 ‘박정희 기념사업 중단’ 요구… 구미시가 명확한 입장 밝혀야 구미참여연대(공동대표 이봉도·전대환, 아래 참여연대)가 석 달 만에 보도자료를 냈다. “박정희 기념사업의 즉각적인 중단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이다. 참여연대가 보도자료를 내지 않은 지난 석 달간 구미 지역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6·13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선거 결과 24년 만에 구미시의 지방 권력이 바뀌는 반전이 있었다. ‘보수의 심장’으로, ‘영남 성골’로도 비유되는 이 구여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아성에서 민주당 소속의 장세용 시장이 당선됐다. 민주당은 6개의 도의원 선거구 중 3곳에서 승리했고, 시의원도 선거에 출마한 7명 전원이 당선하는 기염을 토했다. (관련 기사 : ‘박정희 고향’ 구.. 2021. 9. 5.
공광규 시인 <담장을 허물다>로 신석정문학상 수상 공광규 시인 신석정문학상 수상 미처 읽지 못한 구문(9월 1일 자) 를 보고 제4회 신석정문학상에 공광규 시인의 시집 (창비, 2013)가 선정되었다는 걸 알았다.(촛불문학상은 심옥남 시인)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한겨레신문사가 후원하는 이 문학상의 첫 수상자는 새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입각한 국회의원 도종환 시인이었다. [관련 글 : 신석정과 신석정문학상, 그리고 도종환 / 복효근 시인 수상] 이런저런 이름의 문학상이 적지 않은데도 여느 문학상과 다르게 신석정문학상 소식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까닭은 따로 있다. 탄핵 정국 이후 사회 전반에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높은 가운데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문제에 대한 여론도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2021. 9. 4.
집·부동산, 그리고 삶 ‘지상의 방 한 칸’… 얼마 전 어떤 후배 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의례적 안부를 나누던 이 친구,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내지른다. “선생님, 강남(이 도시에도 한가운데 강이 흐르는데 강 남쪽의 시가지를 서울처럼 ‘강남’이라 부른다.)에 있는, 선생님 소유 땅 말입니다.” “땅? 땅이라니, 무슨 말이야?” “아니 강남에 있는 두 필지 땅이 선생님 소유로 등기되어 있던데요?” “?……, 이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는 지상에 한 뼘의 땅도 가져 본 적이 없어. 굳이 말하면 15명이 공동소유한 아파트가 서 있는 땅이 있긴 하지만.” 짐작했겠지만, 강남에 나와 동명이인이 소유한 땅이 있었던 모양이다. 웃고 말았지만, 그가 그런 오해를 별 고민 없이 했다는 게 좀 씁쓸했다. 내 나이나 경력이라면 얼마간의.. 2021. 9. 3.
메밀꽃의 발견 다시 바라보는 메밀꽃, ‘이미지’와 ‘현실’ 사이 사물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매우 선택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 기억 속에서 접시꽃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나온 이후 어느 날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본래 접시꽃이 그렇듯 지천으로 피어 있었던 것인지, 시인의 시가 세상에 나온 이래, 집중적으로 접시꽃이 심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후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새로운 ‘접시꽃의 발견’의 책임은 마땅히 내 기억에 있는 것이다. 일상에는 존재하되, 기억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사물도 새롭게 부여된 어떤 동기로 말미암아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관련 글 : 접시꽃, 기억과 선택 사이] 어느 해 봄은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이 유난히 자주 눈에 밟혔는데, 올.. 2021.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