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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숲 산책, ‘가지 않은 길’

by 낮달2018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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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뒷산의 숲을 걸으면서

▲ 학교 뒷산은 안동의 진산이라는 영남산이다.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숲길이 잘 나 있다.

얼마 만인가. 어저께는 빈 시간에 학교 뒷산을 올랐다. 9월이지만 여전히 산은 푸르고 그늘은 두터웠다. 사람들의 자취로 익숙한 옛길을 걷다가 문득 왼쪽으로 벗어난 작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 오종종한 하얀 꽃의 물결이 수줍은 듯이 이어지고 있는 메밀밭이었다.

 

물론 이효석이 소설에서 묘사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은 아니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없어서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 풍경이 주는 ‘2% 부족한 느낌’ 때문이다. 메밀꽃은 화려하지도, 꽃송이가 크지도 않다. 작고 보잘것없는 꽃들이 어우러져 지어내는 수더분함이 바로 메밀꽃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내겐 ‘낯선 길’이었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숱하게 드나드는 등산로 가운데 하나다.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우회하다가 마침내 작은 봉우리에 닿는다. 그만그만한 봉우리마다 시에서 만들어 놓은 각종 체력단련 시설이 거기에도 있었다.

 

이제 레저는 시골 사람에게도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도심에 야트막하게 서 있는 영남산(252m)에 얽히고설킨 숱한 등산로를 낸 이는 시민들이다. 제대로 등산복을 차려입지는 않았지만, 운동복이나 면바지를 입고 이 산에 오른 시민들로 하루 내내 이 산은 깨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방자치단체는 편의 시설로 화답한다. 이런 형식의 생활 복지는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주민들이 오롯이 받게 된 혜택의 하나다. 지자체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야산마다 등산로를 정비하고 벤치나 운동시설 등을 설치하고 안내 팻말을 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에서 마련해 준 체육시설에다 자신들의 편의용품을 추가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산등성이의 체육시설에서 참나무에 걸린 거울을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시계까지 갖추어 놓았다. 지붕까지 씌운 벽걸이 시계가 걸린 나무 이쪽으론 커다란 거울이 나무에 고정되어 있다. 끈으로 고정하는 것으론 약했던가. 아뿔싸, 굵은 못도 박혀 있다.

 

아침저녁으로 이 봉우리에 올라 운동으로 하루를 여닫는 사람들은 이곳을 자신의 생활 공간의 일부로 여겼던 게 틀림없다. 운동을 하고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거울을 보면서 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여미는 것일까.

 

산봉우리 나무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친 주변 풍경은 정갈하고 아름답다. 나무와 숲, 하늘과 바람은 아무 욕심 없이 자기 모습을 산상의 거울에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산상의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하산하는 길도 낯선 길을 잡았다. 어디든 길은 통할 거였고, 시간은 넉넉했다. 매미 울음소리가 자욱한 산길 주변에서 철사로 얽어매어 놓은 아크릴 홍보판 하나를 만났다. 철사는 녹슬었고, 아크릴의 한쪽 모서리도 떨어지고 없다.

 

정직한個人, 더불어 사는社會,

우리모두 건강한 國家를 만듭시다.

 

띄어쓰기가 생략된 아크릴판 속의 구호는 1980년대식처럼 보인다. 이 표어의 주체는 이른바 ‘정의 사회 구현’을 모토로 공포정치를 펴던 신군부시대에 만들어진 단체다. 시골길을 가다 보면 ‘바르게 살자’라는 구호가 새겨진 돌비석을 만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민간운동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늘 이런 구호를 볼 때마다 기분이 씁쓸해진다.

 

‘정직한 개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야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목표고 이상이다. 그런데 왜 저 ‘건강한 국가’를 만들자는 권유가 이리 불편한가. 도덕과 윤리는 그것이 구호가 되는 순간, 사람들을 재단하기 시작한다. 구호는 성실하고 선량한 시민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다수의 시민을 윽박지른다. 너 정직한 거 맞아? 하고 말이다.

 

내리막으로 들어서자 무성한 수풀 너머로 도시의 거리와 빌딩들이 보였다. 낯선 길을 무심히 걸으면서 잠깐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린 것은 그때쯤이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다. ‘노란 숲 속’,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 따위의 구절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글쎄, 삶의 무게 때문에 쉬 ‘다른 길’ 따위를 선택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지거나 스스로 선택한 작고 평탄한 길을 걸어간다. 다른 길은 가보지 못했으므로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 채 늙어가고 스러져 간다. 내 삶의 길목에서 명멸하다 스러졌던 ‘다른 길’을 나는 떠올리면서 그 ‘부작위’의 선택을 잠깐 생각해 보았다.

 

 

2011. 9.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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