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광규 시인 신석정문학상 수상
미처 읽지 못한 구문(9월 1일 자) <한겨레>를 보고 제4회 신석정문학상에 공광규 시인의 시집 <담장을 허물다>(창비, 2013)가 선정되었다는 걸 알았다.(촛불문학상은 심옥남 시인)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한겨레신문사가 후원하는 이 문학상의 첫 수상자는 새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입각한 국회의원 도종환 시인이었다. [관련 글 : 신석정과 신석정문학상, 그리고 도종환 / 복효근 시인 <신석정문학상> 수상]
이런저런 이름의 문학상이 적지 않은데도 여느 문학상과 다르게 신석정문학상 소식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까닭은 따로 있다. 탄핵 정국 이후 사회 전반에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드높은 가운데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문제에 대한 여론도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도 ‘기억 투쟁’이 필요하다]
올 신석정문학상은 공광규 시인에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문제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광복 72주년을 맞으며 한국작가회의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친일문학상 반대 특별전시를 열고 작가들에게 수상자로 선정되어도 친일문학상을 거부하자는 촉구를 담은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신석정(辛夕汀.1907∼1974) 시인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나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와 같은 목가적 시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로 예사롭지 않은 현실 인식을 가졌던 이였다. 뒤늦게 발견된 그의 작품 들을 통해서 그의 시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면서 그가 일제 시기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친일 시를 쓰지도,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던 점도 밝혀졌다.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라 문학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자 외에 나는 아직 공광규 시인의 시를 읽지 못했다. 젊은 시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충남 청양 출신의 시인은 1960년생, 우리 나이로 쉰여덟이다. 1986년 등단하여 이듬해 첫 시집 <대학일기>(실천문학사)를 냈다.
<실천문학>에 ‘현장 시’들을 발표했다는 이력에 머리를 갸웃했는데 그는 25년째 금융노조 상근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철강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대학을 나와 등단한 그가 ‘자본과 권력의 불륜을 은유한’ 시집 <지독한 불륜>(실천문학사, 1996)을 펴낸 까닭이 짚여지는 부분이다.
인터넷에서 그의 시 몇 편을 찾아 읽었다. 일단 그의 시는 편안하고 쉬웠다. 만만찮은 비유가 상징이 깔려 있는데도 전체 얼개를 파악하고 그 시상의 전개를 좇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말이다. 쉬운 시가 반드시 좋은 시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범한 독자를 위해서 시가 난해하지 않다는 것은 적지 않은 미덕이다.
수상 시 ‘담장을 허물다’
수상 시집의 표제작인 ‘담장을 허물다’는 ‘비워냄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정희성 시인)를 담담하게, 그러나 대담하게 전한다.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더니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백 살 된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고 시인은 조곤조곤 왼다.
또 시인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오면서 거기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해한다.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그 주변의 ‘논 수십만 마지기와’ ‘국도’와 ‘월산과 성태산까지’ 자신의 ‘소유가 되었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저 멀리 ‘보령’ ‘오서산 봉우리’를 보면서 보령의 영주와 소유권을 다투어 보겠다고,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그게 시인이 ‘스스로 비움으로써 채우는 방법’이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큰 고을의 영주가 되’는 법 말이다. 손바닥만 한 제 땅, 제집을 건사하는 것도 고단한 서민들에게 저 ‘비움’의 철학은 얼마쯤의 위안이 될 수 있을까.
2009년엔 ‘놀랜 강’으로 윤동주상도 수상
시인은 2009년에 시 ‘놀랜 강’ 외 9편으로 윤동주상 문학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는 강을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을 담아내는 ‘탁본, 낙관, 화선지, 비단, 거울, 원고지’로 바라본다. 강을 파헤치던 ‘쇠붙이와 기계 소리’에 놀라 파랗게 질렸다고 노래함으로써 전 정권에서 저지른 4대강 개발을 겨냥했다.
그에게 미당문학상이 아니라 윤동주상과 신석정문학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당연해 보이는 건 그의 시가 주는 울림 때문일까.
그의 시 가운데 ‘소주병’이라는 시도 편안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읽을 수 있는 짧은 시다. 늘 소주병을 가까이 두고 홀짝이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시는 부친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될지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 쓰는 일이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시인이 더 좋은 시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만간 책방에 들러 그의 시집 한 권을 사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시편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2017. 9.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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