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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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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단무지, 혹은 선린 교류 일본 우익들의 김치 관련 망언에 부쳐 때아닌 때에 ‘김치’가 화제로 떠올랐다. 일본 우익 케이블 방송 가 김치에 대한 비하 망언을 쏟아냈고 이 소식을 들은 소설가 이외수 씨가 일침을 가했다는 이야기다. 우익(사실은 극우다)이란 이 나라나 그 나라나 수준이 거기가 거기다. 일본 의 ‘김치’ 비하 내용인즉, 가 일본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냄비 요리가 김치찌개라는 조사결과를 보도하자 이를 의심한 가 직접 거리 설문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같았다. 이런 내용을 방송하면서 의 진행자들은 ‘승복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런저런 토를 달면서 ‘김치’를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코리아타운 외에도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많다니 정말 의외다.” “일본인들의 미각이 얼마나 질 나쁘게 떨어졌나를 반영하는 결과.. 2019. 9. 20.
‘가지’, 맛있고 몸에 좋다! 나는 가지로 만든 반찬은 모두 즐겨 먹는다 나는 가지로 만든 반찬을 즐겨 먹는다. 삶아서 무친 가지나물은 물론이려니와 가지 챗국도 훌륭한 반찬이다. 가지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볶아도 좋고, 길쭉하게 잘라서 말려두었다가 비빔밥의 재료로 써도 요긴하다. 밀가루를 입혀 지져낸 가지전의 풍미도 훌륭하다. 요즘처럼 시장에 가지가 나오기 시작하면 아내는 즐겨 이런 반찬을 상에 올린다. 밥상에 오르는 보랏빛 채소 ‘가지’ 돌아가신 내 할머니께서도 가지나물을 즐기셨다. 연세 드시면서 무른 음식을 좋아하실 수밖에 없었던 탓이었을까. 할머니 상에는 유독 가지나물이 자주 올랐는데, 나는 익혀져 변색한 보랏빛, 그 거무죽죽한 빛깔에다 뭉크러져 흐물흐물한 열매 살[과육(果肉)] 때문에 가지를 먹기를 한참 동안 꺼렸다. 그러나 .. 2019. 9. 20.
보길도, 잃어버린 젊음과의 조우(遭遇) 18년 만에 다시 찾은 섬, 보길도 대저 여행의 묘미는 ‘떠남’에 있다. 그것은 일상과 그 책임으로부터, 삶과 일터의 갖가지 곡절과 그 완고한 도덕률로부터의 ‘이탈’이고 ‘격리’이다. 실명의 드러난 삶에서 익명의 숨겨진 삶으로의, 아주 자연스러운 자리바꿈이다. 차표를 사거나, 가방을 챙기고 승용차의 시동을 거는 순간, 낯익은 거리와 골목, 오래 알아 온 사람과 사람, 익숙한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일탈이 시작되는 것이다. 열여덟 해 전에 그랬듯, 아내와 함께 나는 보길도를 향해 길을 떠났다. 낡은 승용차에 내비게이션을 달고 딸애의 배웅을 받으며 익숙한 도시를 빠져나오면서 아내는 얼마나 설레었을까. 보리암, 향일암, 선암사, 보성 차밭 같은 목적지들과는 달리 보길도는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내게 각별한 추억의 섬.. 2019. 9. 20.
택호(宅號)…, 그 아낙들에겐 이름이 없다 부인 이름 대신 쓰이는 ‘택호’ 지난 주말에 벌초를 다녀왔다. 내 본관인 인동(仁同)은 칠곡군 인동면이었으나 구미시가 커지면서 거기로 편입되어 구미시 인동동이 되었다. 인동 인근에 우리 집안의 선영이 꽤 많다. 구포동의 솔뫼 부근에 6기를 비롯하여 구평동에도 9대조 내외분을 합장한 산소가 있다. 구평동 산소는 뒷산에 벼락 맞은 큰 바위가 있어 ‘불바우’[화암(火巖)]라고 불리는 동네에 있다. 그 동네는 지금은 코앞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도시 변두리로 편입되었지만, 예전에는 불바우라는 이름이 친근한 촌 동네였었다. 마을 입구에 예전에 없던 ‘불바위’와 ‘火巖’이라 새긴 커다란 자연석이 서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이 마을 이름을 택호로 쓰는 어른이 두 분 계셨다. 내게 삼종조부가 되는 ‘화암 할배’.. 2019. 9. 19.
‘지속 가능한 사회’, 그리고 ‘인간의 걸음’ [서평] 유재현의 『느린 희망』 세상에 선 뵌 책은 모두 읽어야 하는 것 같은 강박감에 시달렸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열심히 책을 읽게 되지는 않는다. 책 몇 권을 사면 이 책 저 책 옮겨가면서 읽는 데 좋이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눈치챘겠지만 모처럼 예전의 속도감을 되찾아 읽을라치면 아뿔싸, 이젠 읽었던 앞부분이 가물가물한 상태가 되기 일쑤다. 얼마 전, 그간 거래해 왔던 한 온라인 서점으로부터 “고객님의 실버회원 유효기간이 7일 남았다.”는 전자우편을 받았다. 그 편지는 말하자면, 유효기간 안에 책을 좀 사라는 신종 마케팅이었던 셈이어서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유효기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세 권의 책을 샀다. (방금 확인해 보니 이번 구매금액으로는 유효기간 연장에 조금 모자란다... 2019. 9. 19.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 화려 ·열정의 장미와 소박한 야생화 찔레 5월은 흔히들 ‘장미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겐 5월이 ‘찔레의 시절’로 더 정겹게 다가오는 때다. 장미가 주택가 담장 위와 길가의 펜스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건 5월로 들면서다. 그러나 숲길을 다니면서 눈여겨보아 두었던 찔레가 벙글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부터인 듯하다. 도시의 5월은 ‘장미가 대세’ 장미는 도시 곳곳에서 이미 대세다. 그 선명하고 도발적인 빛깔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기 때문일까. 주택가 골목에도 아파트나 공공건물의 울타리에도 장미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흰 페인트를 칠한 울타리 사이로 빨간 장미는 그 빛깔만으로 튀어 보인다. 그러나 도시의 거리에서 찔레를 보기는 쉽지 않다. 찔레가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서 피어나는 꽃이어.. 2019. 9. 18.
주례사 비평, 끼리끼리 나누는 ‘우의의 연대’? [서평]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뒤늦게 (2002,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읽었다. 책이야 지난해 12월 30일에 샀지만 정작 이 책이 나온 때는 2002년이니 구간(舊刊)도 한참 구간인 셈이다. 그러나 거기서 비평가들이 제기한 2000년대 초반의 이 나라 비평에 대한 문제의식은 모르긴 몰라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비평집이어서 꽤 시간을 잡아먹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지레짐작이었다. 나는 ‘단숨에’는 아니지만 집중적으로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비평’이란 게 참 멀리도 있는 거라는 걸 절감했다. 명색이 문학 전공자고, 이십 년이 넘도록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나는 아직 한 권의 비평집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내가 그러니 독자에만 머무는 여느 사람들이야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여느 독자들이 .. 2019. 9. 18.
<뮤직 박스(Music Box)>, 세상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제시카 랭의 (1989) 시절이 하 수상해서일까. 도처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뉴스 속의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무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천륜조차 저버리는, 비정한 짐승의 얼굴이기도 하다. 어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의 ‘스승’이고 또 어떤 아비는 세상의 모든 자식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몇 년이 지난 후, 알코올 중독이 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에서 이 두 청년을 만나 질문하게 되었다.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2019. 9. 18.
‘황석영’을 다시 읽으며 작가 ‘황석영’과 그의 소설들 올해 고등학교로 돌아와 작문 시간을 맡았다. 내게 주어진 시수는 주 1시간. 이 시간은 아이들의 ‘소설 발표 수업’으로 진행한다. 아이들이 주어진 소설을 공부해 와서 두세 명씩 발표하는 형식이다. 한 학기에 한 차례씩 돌아가니 지난 1년간 아이들은 모두 두 편씩의 소설을 발표한 셈이다. 소설 선정은 우리 현대소설을 망라한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고등학교 필독 소설, 단편 소설이 중심이다. 우리는 학기당 서른 편씩, 모두 60여 편의 소설을 공부했다. 아이들은 주로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수집·가공하여 유인물을 만들어 발표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적지 않은 아이들은 만만찮은 이해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루는 작품들은 대체로 내가 이미 읽은 것들이지만, 때에 따라 기억이 가물가.. 2019. 9. 17.
펜화, 마음 끝에 스치는 사경(寫經)의 철필 소리 [서평]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사진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듯하다. 더러 풍경이나 사물을 담기도 했지만 전 시대의 필름 카메라는 주로 사람을 찍는 데 한정되었으니 그것은 만만찮은 비용 때문이다. 필름 구매에서부터 현상과 인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큰돈은 아니지만, 줄곧 드는 비용은 적지 않은 부담인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디카’의 등장은 그런 여가 문화를 일거에 바꾸어 놓았다. 이름난 유적지나 명승지에선 디카를 들고 풍경이나 유적을 담는 사람들로 붐빈다. 필름 걱정도 인화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파일로 보관하거나 필요한 것만 인화할 수 있으니 그 비용은 최소한에 그친다. 바야흐로 디카는 이 디지털 시대의 총아가 된 것이다. 유적이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우리는 무심결에 거기 의.. 2019. 9. 16.
나는 ‘즐거운 주말’이 되고 싶지 않다 ‘말글 살이 이야기 - 가겨찻집’를 시작하면서 새로 방 한 칸을 들인다. 내 블로그는 네 칸짜리 ‘띠집’인데 여기 또 한 칸을 들이면 ‘누옥(陋屋)’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세 칸을 넘으면 이미 ‘수간 모옥(數間茅屋)’에 넘치니 꼼짝없이 ‘띠집’[모옥(茅屋)]을 졸업해야 할 듯도 하다. 새로 들이는 칸의 이름은 ‘가겨 찻집’이다. 한겨레 18°의 고정 꼭지였던 ‘말글 찻집’을 본뜬 이름이다. 워낙 그 꼭지 이름이 가진 울림이 좋아서 뒤통수가 뻐근해지는 걸 감수하고 본떠서 쓴다. ‘가겨’는 물론 ‘가갸거겨’를 줄인 것. 나는 여기다 우리 말글살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으려 한다. 오랜 망설임과 주저가 있었다. 물론 망설임의 까닭도 여럿이다. 아이들에게 겨레말을 가르쳐 온 지 스무 해가 넘었.. 2019. 9. 15.
일본인 교장 패대기친 소년, 정말 불온했을까 [서평] 부안 역사문화연구소 총서1 정재철의 처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사진관에서 찍은 인물사진인데도 흔히 보는 근엄하고 경직된 표정이 아니다. 조리개 개방으로 뭉개진 배경을 등지고 처녀는 오른쪽으로 15도쯤 몸을 틀고 있다.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여인의 손은 얌전히 무릎 위에 포개져 있다. 때는 1942년, 해방을 3년 앞두고 처녀는 돈화문 근처 어떤 사진관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감옥에 있는 독립운동가 부친 옥바라지를 위해서 취직해야 했던 여자는 이력서에 붙일 사진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지운 김철수. 처녀는 지금 아흔여덟 노인이 되었다.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내력들은 칠십몇 년의 시간을 거슬러가 우리를 해방 공간으로 데려다준다. 누구나 한번 미소로 스쳐 갈 사진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 2019.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