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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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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오산 벚꽃 길과 금오천 인공 물길 금오천 인공 물길 주변에 피어난 금오산 벚꽃 길 요즘은 어딜 가나 벚꽃이 흔하다. 한창 꽃이 피는 때라 시내 곳곳에 벚꽃이 넘실대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벚꽃 축제가 한창인 금오산 자락을 찾았다. 오후에 봄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를 듣고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지지 않으면 벚꽃 길의 장관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구미로 옮겨온 이듬해인 2013년에 다녀간 뒤 3년 만에 찾은 벚꽃 길의 벚꽃은 바야흐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금오산으로 오르는 길가의 시내(금오천) 좌우에 이어진 벚꽃 길은 예전의 명성 그대로였으나 내의 모습은 무척 달라졌다. 청계천 같은 ‘물 순환형 하천’ 처음엔 하천의 폭이 넓어지고 시원해졌다고만 생각했다. 시내 한복판의 물길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양옆에는 산책길이 조성되.. 2019. 9. 29.
춘향의 선택, ‘정렬부인’인가 ‘인간 해방’인가 [남원의 사랑 ①] 춘향과 몽룡, 고전 과 최인훈의 현대소설 사이 [남원의 사랑 ②] 신과 인간의 대결, 혹은 인간과 영혼의 만남 지난 1월 초순에, 남원을 다녀왔다. 서른몇 번째 혼인기념일이라 집을 나섰지만, 목적지가 굳이 남원일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지난해 말에 확장 개통했다는 ‘광주-대구 고속도로’를 타는 여정을 떠올렸고 여러 번 스쳐 지나가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들르지 못한 도시 남원을 기억해 낸 것뿐이었다. 88올림픽고속도로는 광주 학살로 집권한 신군부가 광주와 대구 간 화합을 명분으로 1981년에 착공하여 1984년에 개통한 도로다. 그러나 중앙 분리대도 없는 편도 1차로에 불과한 88올림픽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은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다. 길만 좁은 게 아니라 길의 물매.. 2019. 9. 29.
두벌식 오타, 한글 이야기(3) 두벌식 자판은 오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요즘이야 모두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지만, 한때는 타자기가 가장 첨단의 문서작성기인 때가 있었다. 나는 1977년 군 복무 중에 타자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쇠만 한글 자모로 바꾼 미제 레밍턴 타자기였다. 당시의 자판은 자음과 모음 모두가 두 벌인 네벌식이었다. 나는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능숙하게 서류를 만들곤 했다. 초성과 받침으로 쓰는 자음이 두 벌이지만, 모음은 어떻게 두 벌인가. 받침이 없을 때 쓰는 모음과 받침이 있을 때 붙이는 모음은 달라야 한다. 그건 말하자면 기계식 타자기의 한계였던 셈이다.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국산 클로버 타자기를 샀다. 마라톤 타자기도 있었는데 어쩐지 클로버가 끌렸던 탓이다. 네벌식 자판에 능숙해지자 전동타자기와 전자타자기가 .. 2019. 9. 29.
군자정은 ‘그의 삶’과 함께 기억된다 [안동의 정자 기행 ②]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 군자정 군자정(君子亭)은 임청각(臨淸閣)의 정침(正寢, 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일을 보는 곳, 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이다. 임청각은 상해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규모가 큰 살림집이다. 군자정을 세운 이는 석주의 17대조인 이명(李洺)이다. 그러나 안동에서 임청각은 석주의 생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에서 석주의 무게가 그만큼 큰 탓이다. 이 고택에서 석주를 비롯해 무려 아홉 분의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것이다. [관련 기사 : “공맹은 나라 되찾은 뒤 읽어도 늦지 않다”] 임청각은 안동시 법흥동에 있다. 원래는 모두 99칸 집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집 앞으로 중앙선 철길이 나면서 5.. 2019. 9. 28.
그 정자에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보인다 [안동 정자 기행 ①]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晩休亭) 아이들에게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시가(詩歌)를 가르치다 보면 그들은 어쩌면 스스로 엮고 세운 ‘띠집’ 안에 갇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치적 부침에 따라 출사와 퇴사, 유배를 거듭하다 말년에 귀향한 이들 사대부가 하나같이 노래하는 것은 ‘안빈낙도(安貧樂道)’인데, 이는 그 띠집의 중요한 들보인 듯하다. 선비들이 지향한 청빈의 삶 ‘가난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이 명제는 다분히 관습화된 이데올로기의 냄새를 풍긴다. 유배지의 문신들이 눈물겹게 노래하는 ‘님’에 대한 ‘단심(丹心)’이 분홍빛 연정이 아니라 저를 버린 임금에게 보내는 정치적 구애인 것처럼, 그것은 향촌에서 보내는 만년의 삶에 대한 일종의 강박으로 느껴.. 2019. 9. 28.
문정희 시인, 여자의 ‘몸속 강물’을 노래하다 문정희 시 ‘물을 만드는 여자’ 여성주의 시를 검색하다가 문정희의 시 ‘물을 만드는 여자’를 발견했다. 읽고 나서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이건 정말 압권이야. 나는 교내 메신저로 11명의 동료 국어 교사들에게 이 시를 전송했다. 문정희의 시를 즐겨 읽었지만 처음 만나는 시, 그런데 최고네요! 여자, ‘대지의 어머니’가 되다 이 시는 여성의 배뇨를 소재로 한 시다. 시인은 딸들에게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고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네 몸속의 강물’이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권한다. 그 소리는 ‘세상을 풀들’을 ‘무성히 자라’게 하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다. [시 전문 텍스트로 보기] 시인은 ‘때때로 편.. 2019. 9. 27.
‘풀과 물의 원림(園林)’ 20권 20책의 ‘백과 전서’를 낳았다 [정자를 찾아서] ③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초간정(草澗亭) 돌아보면 쌔고 쌘 게 ‘정자’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풍경을 담아내고, 거기 깃든 역사와 삶을 맞춤한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하면 정자를 찾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글 한 편을 마무리할 때마다 다음 목적지를 가늠하며 궁싯거리는 까닭이 여기 있다. 안동과 봉화를 거친 발길은 이번에는 예천으로 향한다. 예천군 용문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지은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세운 초간정이 있는 것이다. 용문사 가는 길에 보일 듯 말 듯 서 있는 그 오래된 정자는 내게 예천에서 산 몇 년간의 시간을 환기해 준다. 1994년도부터 나는 예천역 부근의 철길 옆 한 낡은 국민주택에서 3년 반을 살았다. 다섯.. 2019. 9. 27.
부톤섬으로 간 한글 ② ‘따리마까시(고마워요), 한글’ (MBC ‘뉴스 후’) 시청기 벌써 한글을 읽어내는 아이들 인도네시아의 한 소수민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선택했다는 소식을 전한 게 8월 7일이다. (한글,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가다) 어차피 매스컴에 의존한 기사였으니 우리 한글이 문자가 없는 한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 기록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는 내용이 고작이었다. 문화방송(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뉴스 후’가 ‘따리마까시(고마워요), 한글’이라는 방송을 내보낸 것은 지난 20일이다. 나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이 프로그램의 후반부를 시청했고, 나중에 토막 시간을 내어 ‘다시 보기’로 그 전편을 시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찌아찌아족이 사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를 현장 취재했다. 그리고 한글의 ‘경쟁력’을 짚어보고 .. 2019. 9. 26.
다시 팔공산 ‘단풍길’ 2013년 11월, 팔공산 ‘단풍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팔공산 단풍길’ 순례에 나섰다. [관련 글 : 그 숲길, ‘순정(純精)’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역시 수능 시험일인 7일, 동명을 거쳐 순환도로로 들어서면서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퍼뜩 받았다. 역시 그랬다. 시간이 좀 늦은 것이다.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단풍은 조금씩 생기를 잃고 있는 듯해 허전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팔공산 단풍축제는 이미 지난 10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베풀어졌단다. 파계사부터 수태골을 지나 동화사에 이르는 16.3㎞에 걸친 팔공산 순환도로는 이미 수십만 명이 단풍을 즐기며 지나갔다는 뜻이겠다. 한발 늦은 탐방객들은 그래도 순환도로 곳곳에 차를 세우고 연도의 단풍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빴.. 2019. 9. 26.
‘푸른 바위 정자’에서 산수유 벙그는 봄을 만나다 [정자를 찾아서] ②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청암정(靑巖亭)’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연일 계속되는 영하의 날씨, 내복은 물론이거니와 양말도 두 켤레나 껴 신고 나는 지난 1월을 넘겼다. 해마다 겪는 겨울이건만 여전히 멀기만 한 봄을 아련하게 기다린 것은 처음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한 셸리(P. B. Shelly)의 시구가 싸아하게 다가왔다. ‘마음의 여정’, 혹은 ‘기억의 복기’ 청암정을 찾아 봉화로 가는 길은 ‘마음의 여정’이다. 새로 길을 떠나는 대신 나는 컴퓨터에 갈무리된 2010년의 봄을 불러냈다. 거기, 지난해 3월에 아내와 함께 서둘러 다녀온 닭실마을이 막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산수유 꽃눈에 내리던 이른 봄의 햇살과 석천계곡에 피어나던 버들개지……. 나는 그저 사.. 2019. 9. 26.
삼식(三食)이의 ‘가사노동’ 연금생활자의 일상 퇴임한 지 얼추 1년 반이 지나며 연금생활자로의 일상은 얼마간 길이 났다. 퇴임 직후에만 해도 이런저런 생활의 변화를 몸과 마음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부조화가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제 몫을 하는 게 인간의 적응 능력인 것이다. 퇴직자 가운데서는 직장사회와 동료들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게 괴롭지는 않다. 마지막 학교에서 근무하던 네 해 가까이 나는 스스로 고립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떠나는 연습을 거듭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고 하기보다는 곤혹스러웠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10여 시간을 보냈던 학교를 떠나면서 이전에는 사적으로 쓰기 쉽지 않았던 낮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더는 .. 2019. 9. 25.
고산정, 푸른 절벽을 끼고 깊은 못을 굽어보다 [정자를 찾아서 ] ①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고산정(孤山亭)’ 안동의 정자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물론 풍광 좋은 산기슭과 호젓한 내 곁에 세워진 정자들은 양반들의 ‘부르주아(bourgeois)’로서의 삶의 한 표지다. 고단한 삶을 부지하기에 힘겨워 자신들의 삶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못했던 피지배 민중들에 비기면 그들은 자취는 도처에 흩어져 있다. 그게 어찌 안동 지방에 그치겠는가. 그러나 유독 안동 지역에는 그런 누정(樓亭)이 많다. 지역의 명승과 유적을 더듬다 만났던 를 다시 찾아본다. 어차피 거기 고인 것은 박제된 시간의 흔적일 뿐이다. 누정은 남았지만, 이른바 ‘누정 문화’는 이미 사라졌으니 말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한갓진 회고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한때는 지역 문벌의 위세와 시인묵객들의 음.. 2019.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