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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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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가다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에서 자신들의 언어 표기 문자로 한글 공식 채택 한글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문자’라는 사실은 더는 새롭지 않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헌사와 찬사도 차고 넘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글과 관련된 논의는 그런 최고의 찬사 속에 화석처럼 갇혀 있었던 듯하다. 그것은 정작 한글이 ‘민족문자’로서의 한계를 넘지 못했으며, 제 나라 제 국민에게서도 여전히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한 까닭이다. 한글이 유네스코의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1997년이다.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진행된, ‘문자 없이 말만 있는 언어’ 2900여 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유네스코의 연구에서 한글은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비록 한국 정부의 후원을 받기는 하지만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도.. 2019. 9. 25.
가을, 코스모스, 들판 지난주에 안동댐 부근에 코스모스밭이 있다 해 찾아갔다가 허탕을 쳤다. 어제 오전에 잠깐 교외로 나갔다. 봉정사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코스모스가 성기게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심한 사이 어느새 가을이 성큼 깊었나 보다. 들판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줌과 망원, 단렌즈를 바꿔 가면서 코스모스를 사진기에 담았다. 사진을 찍게 된 지도 꽤 되었건만 나는 여전히 조리개를 많이 열어서 배경을 뭉개는 사진을 선호하는 편이다. 애당초 촬영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서겠지만 사진에 관한 생각은 여전히 초보의 그것을 벗지 못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접사로 찍으니 조리개를 죄어도 배경이 흐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진은 ‘뻥’이다. 인간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렌즈 따위는 없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풍경.. 2019. 9. 25.
두 교사는 어떻게 국가보안법 ‘피고인’이 됐나 2심 무죄 선고까지 5년 8개월…… 이 교사들의 빼앗긴 시간 현실 정치 상황과는 무관하게 소시민들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고 여기기 쉽다. 여기서 자유란 ‘남에게 구속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뜻으로의 자유다. 가끔 ‘표현과 사상의 자유’ 문제가 정치적 현안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게 내 삶의 어떤 부분과 겹쳐지리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경북의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배용한(65·수학), 박무식(54·영어)도 그런 소시민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이었고, 시민단체인 6·15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배용한)와 안동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정책실장(박무식)이었다는 점이 여느 소시민과 달랐을 뿐이었다. 2011년 6월 1.. 2019. 9. 24.
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나팔꽃의 계절과 동요 ‘꽃밭에서’ 바야흐로 ‘나팔꽃의 계절’이다. 주변에서 나팔꽃을 일상으로 만나게 된 건 요 몇 해 사이다. 걸어서 출근하다 보면 두 군데쯤에서 새치름하게 피어 있는 나팔꽃을 만난다. 한 군데는 찻길에 바투 붙은 커다란 바위 언덕이고 다른 한 군데는 주택가의 축대 위다. 굳이 ‘새치름하다’고 쓴 까닭은 굳이 설명할 일은 없을 듯하다. 때를 맞춰 활짝 무리 지어 피어난 꽃은 ‘흐드러지다’고 표현하지만 이른 아침, 산뜻한 햇살을 받으며 꽃송이를 여는 나팔꽃을 ‘흐드러지다’고 묘사하는 것은 아이들 말마따나 ‘에러’기 때문이다. 나팔꽃은 말 그대로 꽃잎에 나팔 모양으로 생겼다. 짙은 남색이나 연보라, 연파랑 등의 산뜻한 색상으로 피어나는 나팔꽃은 수더분하거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뭐라 할까.. 2019. 9. 23.
세월 벗이 떠난 뒤 20년 …, 이제 그리움조차도 바래었다 갑자기 그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간 지 벌써 20년이 넘은 친구다. 그는 자기 고향 앞산에 묻혀 있다. 그의 무덤을 찾아가 본 게 까마득하다. 글쎄, 무덤을 찾은들 무엇하랴, 허망해서였다. 고단한 삶은 때로 사람을 추억 속에 머물게 해 주지 않는다. 압도적인 시간의 중력 앞에 인간은 무력한 존재 그는 죽었고 세상과 세월은 그것과 무관하게 흘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때로 그런 세월 앞에 마치 무시당한 것 같아 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시간이고 세월이다. 우리는 이 압도적 시간의 중력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1988년 1월,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는 물론, 그를 산에 묻고 돌아와서도 나는 오랫동안 그의 죽음을 믿을 수.. 2019. 9. 23.
‘형’을 찾아서 20년 전에 떠난 벗의 아우, 그의 ‘형’ 찾기 친구·애인만큼 가족을 ‘진짜’ 알고 있나요? 설날 처가에서 처조카 녀석의 컴퓨터를 뒤적이다가(이젠 이 정보통신기기가 책을 대신하고 있으니 이렇게 표현해도 무방하지 싶어서 쓴 표현이다.) 의 “샐 위 패밀리 인터뷰?”라는 기사를 읽었다. “친구·애인만큼 가족을 ‘진짜’ 알고 있나요? 제삼자가 돼 가족을 바라보고 질문해 보실래요?”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글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동화 속 얘기다. 대부분의 가족은 오해와 무지와 무관심이 8할이다. 친구, 애인, 직장 동료를 아는 것의 절반만큼이나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동생, 내 누나, 내 언니를 알까.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족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묻지 못하고 .. 2019. 9. 23.
시인, 60대 중반에 생애 ‘첫 시집’을 내다 [서평] 이무열 시집 와 1970년대 대구의 문청(文靑) 시대 이무열이 시집을 냈다. 내게 이 사실은 '유명 시인 아무개가 새 시집을 냈다'는 여느 '팩트'와는 다른 결과 무게로 다가온다. 시집 는 1990년대 후반 신춘문예에 동화로 당선한 뒤, 2010년에 계간 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무열 시인의 생애 '첫 책'이기 때문이다. 20대의 막바지까지 이무열은 소설을 썼지만, 등단은 동화로 했다. 동화집 한 권 못 내고 시로 옮겨와 마침내 환갑·진갑을 넘긴 60대 중반에야 그가 첫 시집을 낸 것이다. 소설을 쓰며 젊음의 한때를 지나올 때, 나는 그와 함께하고 있었다. 심야의 대구 시내버스 뒷좌석에 함께 앉아서 도저한 객기로 거품을 물던 젊은 시절을 나는 부끄러움과 함께 그리움으로 떠올린다. 1970년대.. 2019. 9. 23.
‘삼식이’의 ‘혼밥’ 연금 생활자의 혼자 밥 먹기 한때 ‘남편과 아내에게 필요한 것 5가지’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돈, 건강, 자녀, 일, 친구’(또는 돈, 건강, 딸, 강아지, 찜질방) 등 실제 노후 생활을 유지하는 데 긴요한 것인데 반해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부인, 마누라, 애 엄마, 집사람, 아내’ 등 호칭만 다르지 아내 하나뿐이라는 얘기다. ‘남편에게 필요한 5가지’ 노후를 맞이하면서 인간관계의 변화는 남녀 간에 차이가 크다. 남성의 인간관계는 소득 활동을 하는 시기에는 다양하고 깊지만, 은퇴를 기점으로 서서히 그 폭이 좁아지면서 약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배우자의 은퇴를 기점으로 관계 유지를 위한 활동이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배우자의 은퇴.. 2019. 9. 22.
아내들에게 바침, 문정희 ‘작은 부엌 노래’ 한가위 전날이다. 따로 차례를 모시지 않는 우리 집 풍경은 조금 쓸쓸하다. 귀향한 아들 녀석과 제 누이는 어젯밤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더니 아직도 늦잠이다. 아내는 ‘그래도 섭섭할까 봐’ 부침개 몇 종류를 준비한다. 대형 전기 팬을 거실 바닥에 놓고 갖가지 준비를 해 놓으면 아이들이 달려들어 거들 것이다. 한가위 전날 풍경 마련할 음식이래야 단출하기만 하다. 쇠고기 산적과 두부전, 명태전을 조금 부치고 나면 명절 준비는 끝이다. 떡을 잘 먹지 않으니 우리 집에선 송편도 준비하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식솔들을 이끌고 가야 할 본가도 큰집도 없으니 내일 성묘를 마치고 아이들 외가를 들러 오면 그뿐이다. 여든이 내일모레인 장모님이 손자와 함께 지키고 있는 처가의 고적(孤寂)을 우리 식구가 흩트려 놓을 것.. 2019. 9. 22.
의성 조문국(召文國) - 잃어버린 고대 왕국을 찾아서 [가을 나들이 ③] 금성면 대리리 조문국 사적지 그날, 나들이는 벗과 만나고자 한 탑리(塔里)에서 끝났다. 탑리리는 의성군 금성(金城)면의 행정구역이지만 외지 사람들에게는 ‘금성’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인근 ‘도리원(桃李院)’은 알아도 ‘봉양(면)’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지인들은 탑리는 알아도 금성은 잘 모른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이다. 각부의 석탑재가 거의 완전하며, 전탑(塼塔)의 수법을 모방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보여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발달을 고찰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국보 제30호) 다음으로 오래된 석탑이다. 국보 제77호. 그간 탑리를 지날 때마다 비계로 가려진 탑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곤 했는데 탑은 2012년 전.. 2019. 9. 21.
독립운동가의 아흔셋 친손자는 왜 1인시위에 나섰나 왕산 허위 선생 손자 허경성 부부, 왜 “신임 구미시장이 독립운동가 기리는 걸 방해하나” 20일 오전 11시 30분부터 구미시청 현관 앞에서 90대 노부부가 펼침막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손수 마련해 온 펼침막에는 국한문을 섞어 쓴 "장세용 시장은 주민공청회로 확정한 왕산공원 명의를 일부 주민들의 진정을 핑계로 시장 임의로 변경한 만부당한 처사를 즉시 철회하시요 – 유손 허경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허위 친손자의 구미시청 1인 시위 이들 노부부는 구미가 낳은 독립운동가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의 친손자인 허경성(93, 대구시 북구 산격동) 옹 부부다. 이들은 구미시가 전임 시장 때 주민공청회를 거쳐 결정한 국가산단 4단지 확장단지 10호(구미시 산동면 신당로) 내 근린공원에 조.. 2019. 9. 21.
[사진] 구미시 ‘장천 코스모스 축제’ 구미시 장천면에서 베풀어진 2013 코스모스 축제 멕시코 원산인 코스모스 속 한해살이풀 코스모스(Cosmos bipinnatus)는 이미 가을꽃의 대표 주자로 뿌리를 내렸다. 우리 고유어로는 ‘살사리꽃’.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가을철 길가에 핀 꽃은 대부분이 코스모스였다. 하늘거리는 연약한 줄기에 핀 꽃은 화사하면서도 청초했다. 코스모스에 바치는 '헌사'들 그 연련한 빛깔, 그 청초함에 바치는 헌사도 착하다. 시인 윤동주는 “청초한 코스모스는/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시 )라 노래했고 “몸달아/기다리다/피어오른 숨결”이라 노래한 이는 이해인 수녀다. 시인 조정권은 “십삼 촉보다 어두운 가슴을 안고 사는 이 꽃을/고사모사(高士慕師) 꽃”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제 스승을 홀로 사모한다는 뜻’으로 부르는.. 2019.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