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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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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호르몬 변화는 ‘신의 한 수’다 이제 ‘자리끼’ 마련도 내 몫이다 밤에 자다가 여러 차례 물을 마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죽 그래왔다. 잠자다가도 갈증 때문에 깨기 때문인데 흔히 이를 ‘조갈(燥渴)’이라 하여 당뇨의 증상으로 치지만 내 혈당은 정상이니 해당하지 않는다. 아마 자면서 저도 몰래 입을 살짝 벌리고 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자다가 갈증 때문에 깨어나 물 마시러 일어나야 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선 머리맡에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물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철든 이래 나는 언제 어디서나 머리맡에 물을 마련해 놓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경상도에는 이 ‘물’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없는데 표준말로는 ‘자리끼’라 한다. 사전 풀이로 “밤에 자다가 깨었을 때 마시기 위해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 2019. 10. 27.
잃어버린 시절, 그 삶과 세월 되돌아보기 [서평] 최규석 만화 전적으로 실수로 산 책 어릴 적엔 누구나 만화에 흠뻑 빠져서 지낸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만화를 읽는 사람은 흔치 않다. 어른이 되면서 만화가 지어놓은 허구의 세계를 졸업한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도서 대여점에서 만화를 빌려다 보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당연히 만화책을 사는 일도 없다. 그건 오래된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굳이 읽어야 하는 만화라면 도서관에서 빌려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연히 만화책을 한 권 샀다. 전적으로 실수다. 의 서평을 건성으로 읽었던가. 온라인 서점으로 주문한 몇 권의 책 속에 최규석 만화 (이하 )이 끼어 있었다. 나는 이 책이 만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내용은 괜찮으리라고.. 2019. 10. 27.
‘양심적 병역거부’, 이해 못 해도 대체복무제는 찬성 앰네스티,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오늘 5월 15일은 보통 ‘스승의 날’로 알려지지만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하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은 국제 평화 단체인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이 전쟁을 거부하고 총을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연대하기 위해 정한 날이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평화의 페달을 밟자’ 행사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기념하여 어제 오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전쟁 없는 세상’ 등 시민단체는 ‘평화의 페달을 밟자’ 행사를 베풀었다. 참석자들은 자전거로 헌법재판소에서부터 국회까지 약 10km를 달렸다. 자전거 행진에 앞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행사에는 20.. 2019. 10. 26.
열혈 여성 독자들, 조선 후기사회를 흔들다 [서평] 이민희 지음 ‘소설’은 무엇인가, 아니 좀 더 쉽게 얘기해 보자. 대체 ‘이야기’란 무엇인가. 처음으로 소설이 유통되던 조선조 후기사회에서 그것은 어떤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을까. 그들에게 소설은 어쩌면 극적으로 구성된, 그리고 남몰래 들여다보는 ‘타인의 삶’ 같은 건 아니었을까. 완고한 성리학의 세계관과 규범 아래서 억압적 일상에 묻혀 있던 18세기의 조선 사람들, 특히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에게 소설은 마치 ‘상상으로만 저지르는 염문’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를 달구었던 소설 열풍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소설을 만나 그 낯선 세계에 코를 박았던 초등학교 적의 어느 날, 그 조바심의 시간을 기억하며 이민희(아주대 교양학부 .. 2019. 10. 2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20년 신영복 선생의 그리고 20년 글쎄, 쇠귀 선생의 글은 모두 짙은 사색의 향기를 어우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쓴 글의 으뜸은 역시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 실린 글 ‘비극에 대하여’를 읽고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20일쯤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이런 깨달음, 이런 인식의 지평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신영복 선생을 만난 게 1988년이다. 87년 6월항쟁의 과실을 어부지리로 챙긴 노태우가 올림픽에 명운을 걸고 있던 때였다. 3월에 4년간 근무한 여학교를 떠나 고향 인근의 남학교로 옮겼다. 전세 500만 원, 재래식 화장실에다 부엌이 깊은 집(가족들은 지금도 그 집을 ‘부엌 깊은 집’으로 부르곤 한다.)에 들었다. 그 당시 창간된 을 받아보았는데 그 지면에서 쇠귀의 글을 만났다. 서른셋, 이른바 학.. 2019. 10. 26.
‘은빛 억새 물결?’ 아직은 철이 이르다 [여행] 경주 무장봉 억새군락지 등정기 바야흐로 ‘억새’의 계절이다. 정선의 민둥산을 비롯해 창녕의 화왕산, 이른바 영남 알프스라는 간월재 등 드넓은 억새군락지를 자랑하는 산이 사람들로 붐비는 시절이 된 것이다. 화왕산은 20여 년 전에, 간월재는 지난해에 다녀왔지만, 정선 민둥산은 겨누어 보기만 하다 넘긴 게 몇 해째다. 억새평원은 경주 무장산에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민둥산은 너무 멀다. 포털에서 승용차 길 찾기를 해보면 무려 4시간이 좋이 걸린다고 나오니 겨누기만 하다가 말 수밖에.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앞자리의 동료가 ‘경주 무장산 억새도 괜찮다’고 거들었다. 무장산? 웬 ‘무장(武裝)’? 30여 년 전에 경주 근처에서 몇 해 산 적이 있는데도 낯선 이름이다. 하필 이름이 무장이람, 하고 생각했는데.. 2019. 10. 26.
역사의 그늘을 더듬은 인문학자의 박람강기(博覽强記) [서평] 강명관의 일찌감치 나는 강명관을 읽고 싶었다. 물론 그의 저작들이 신문 지상에 소개될 때부터다. 그가 매주 한 차례씩 에 연재하던 ‘고금변증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굳어졌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차일피일하다 을 산 게 지난달 말께다. 최근 3년간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책 열흘 전쯤부터 학교에 가져다 놓고 틈틈이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몇 장이 남았을 때 나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최근 한 삼 년 동안 가장 즐겁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두고두고 읽었다. 아까워 한꺼번에 먹어 치울 수 없었던 박하사탕처럼. 강명관은 한문학자다. 그는 한문학 연구를 위해 선인들의 문헌을 읽어야 하는 과정에서 ‘문학과 관련 없는 이런.. 2019. 10. 25.
22살 청년 전교조와 ‘한심한 동지’ 김용택 시인 유명 시인은 정말 전교조의 한심한 동지였나 어저께 택배를 하나 받았다. 전교조 경북지부에서 보낸 것이다. 열어보니 전교조 운동사 1권(법외노조 편) 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결성 22주년을 맞아 펴낸 자료집이다. 자료수집과 집필과정에만 3년이 소요된 이 책은 전교조가 태동하던 1980년대 하반기부터 1989년 전교조 결성, 1999년 전교조 합법화에 이르는 과정을 신국판 1400여 쪽에 담고 있다. 전교조 22년, 의 발간 거기 10년도 넘는 간난(艱難)의 세월이 담겨 있다고, 그러고도 12년이 더 지나 이제 전교조가 스물둘, 성년이 되었다는 사실은 정작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심히 책을 뒤적이는데 권말 자료로 1989년 해직 교사를 비롯한 법외노조 시기 희생자와 지회장 명부가 실려 있다. 무슨 오래.. 2019. 10. 23.
아흔 살 사내, 거부해 왔던 사랑에 빠지다 [서평] 마르케스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에서 ‘고독’은 ‘사랑의 부재’로 읽힌다. 의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그의 형 호세 아르카디오, 그리고 아마란타에 이르는 주인공들은 모두가 사랑의 부재, 즉 고독을 운명처럼 타고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그의 소설 속 인물의 특징은 대부분 작품에서 변주(變奏)되는 듯하다. 아흔 살 생일을 앞둔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서글픈 언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익명의 존재인데, 돈을 주지 않고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 여인들 때문에 결혼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마르케스의 뭇 주인공들처럼 ‘결핍된 사랑’의 소유자다. ‘섹스란 사랑을 얻지 못할 때 가지는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으나, 정작 사랑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 2019. 10. 23.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쇠고기의 ‘위대한 모순’ [서평] 제레미 리프킨 , 시공사 간행된 지 6년이나 지난 구간(舊刊) 1권을 이른바 ‘쇠고기 정국’이 불러냈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1993년에 쓴 (시공사, 2002)이 그것이다. 내 서가에 있는 리프킨의 이 책은 2002년 1월에 발행된 초판 1쇄다. 인류의 육식 문화를 광범위한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으로 천착했던 이 책은 그동안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혀 왔다. 광우병 정국이 이 구간을 불러냈다고 했지만 정작 리프킨은 이 책에서 광우병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육식을 위해 소비되는 곡물에 주목했고, 그것이 수많은 사람을 기아와 영양실조로 몰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육식의 종말’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책.. 2019. 10. 22.
‘자기소개’의 두 가지 방식, 혹은 태도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 두 가지와 태도 # 1. 가끔 듣는 지역 기독교 방송(CBS)에서는 지역 유명 인사들이 실명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서두에 자신을 소개한 다음 의견을 밝히는데, 그 자기소개의 방식이 다소 부담스럽다. “○○대학교 ○○○ 총장입니다.” # 2. 몇 해 전, 한국방송(KBS)의 ‘○○○ PD의 소비자 고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다. 이 프로그램의 간판 진행자는 한동안은 ‘○○○ PD’로 자신을 소개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피디 ○○○’으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바르다는 시청자의 지적에 따랐다면서. 보통 우리는 직위를 먼저 대고 이름을 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앞의 예에서는 이름 뒤에 자신의 직위를 붙였다. 단지 .. 2019. 10. 20.
공개 글꼴과 ‘한글’, 그리고 ‘탁상출판’ 공개글꼴과 ‘한글’을 이용한 탁상출판 대대 행정서기병으로 현역 복무 중이었던 나는 1970년대 후반의 마지막 2년여를 중고 레밍턴 타자기를 쓰며 보냈다. 그러나 복사기가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늘 먹지를 썼고 주번 명령 문서를 흔히 ‘가리방’이라 불리던 등사기로 밀어야 했다. 철필로 써서 만든 등사원지를 등사기 판에 붙이고 잉크를 골고루 묻힌 롤러를 밀어서 한 장 한 장 수동으로 인쇄를 하던 시절도 이미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타자기가 나오면서 손이 해방되었고, 곧 복사기와 컴퓨터가 나오면서 이른바 ‘인쇄 혁명’이라 부를 만한 ‘혁신’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1980년에 전역해 대학으로 돌아온 나는 그해 연말께 국산 타자기를 사서 이 혁신의 대열에 동참했다. 나는 수동 타자기에 이어 일제 전자 타자기를 .. 2019.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