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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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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시간, 세월 늘 시계를 몸에 지니며 살아온 시간 나는 늘 시계를 몸에 지닌다. 휴대전화가 나온 뒤에 그걸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시계는 시계고, 휴대전화는 휴대전화라고 생각한다. 무슨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시계를 항상 왼쪽 손목에 찬다. 시간을 보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는 수업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자주 시계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무심한 습관일 수도 또는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확인 행위일 수도 있다. 시계를 보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텔레비전 옆 문갑 위에다 시계를 끌러놓는다. 그것은 내가 일상과 삶의 공식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는 손목.. 2019. 11. 17.
여섯 해, 직지사도 세상도 변했다 2012년에 다시 찾은 직지사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를 다시 찾았다. 2006년 9월 초순에 다녀간 이후 꼭 6년 만이다. 그때 나는 김천에 사는 한 동료 교사의 부친상 문상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9월이라 아직 나무와 숲은 푸르렀고 하오 다섯 시였는데도 해는 한 뼘이나 남아 있었다. [관련 글 : 절집 안으로 들어온 숲, 직지사] 모시고 간 선배 교사와 함께 두서없이 경내를 돌아다니다 우리는 이 절집이 만만찮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데 합의했다. 오래된 산사는 널찍했고, 띄엄띄엄 들어선 전각과 어우러진 숲이 아름다웠다. 그때 쓴 글의 이름이 ‘절집 안으로 들어온 숲, 직지사’가 된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때인 418년, 아도 화상이 인근 태조산 도리사와 함께 세운 절이다.. 2019. 11. 15.
의성 골짜기 ‘비밀의 정원’을 아시나요 경북 의성 금성면 산운마을의 소우당 별서 정원 의성으로 귀촌한 벗에게서 산운(山雲)마을 소우당(素于堂) 정원에서 전통 혼례 시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보름쯤 전이었다. 그가 "소우당 알지?" 하고 물었는데, 물론 나는 단박에 어느 겨울날에 그와 함께 들렀던 산운마을과 소우당을 떠올렸다. 그려, 그런데 정원은 잠겨 있어서 담 너머로 곁눈질만 했지.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의 전통가옥 소우당 400년 이상을 이어온 영천 이씨 집성촌 산운마을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 1리에 있다. 2016년 2월, 근처 초전리에 사는 벗과 함께 마을의 고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소우당에 들렀을 때 정원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담 위로 사진기를 들이밀고 사진 몇 장을 찍는 거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9일 오후에 .. 2019. 11. 15.
시나브로 ‘아비의 시대’는 가고 장성녕의 맏이, 결혼식에 다녀와서 미라가 시집을 갔다. 2008년 아버지를 잃고 올 4월에는 어머니까지 잃고 두 동생을 거두어야 했던 고 장성녕 선생의 맏이 미라가 결혼했다. 아랫도리를 벗고 지내던 시절부터 보아온 아이고 자라는 과정에서 아이의 심덕을 잘 알고 있는 터여서 혼인 소식에 반색을 아니 할 수 없었다. [관련 글 : 잘 가게, 친구(2008. 2. 14.) 지아비와 함께 편히 쉬시라(2012. 5. 1.)] 지난 4월, 제 어머니 장례를 치를 때 아이의 곁을 지켰던 건실한 청년이 있었다. 그냥 마지못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제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여러 가지 궂은일 마다치 않던 친구였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그 친구에게 덕담을 건넸었다. 어쨌든 이른 시일 안에 국수를 먹게 해 주.. 2019. 11. 14.
그 여자, 황진이 중세의 자유인, 설화적 인물 같은 실존 인물 아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녀는 단연코 황진이(黃眞伊)일 것이다. 출중한 미모와 뛰어난 시적 재능, 자유분방한 성격이 전설처럼 전해져 오면서 그녀에게는 일종의 문학적 아우라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소설과 영화 등의 갈래를 통해 황진이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황진이의 문학적 아우라 황진이가 오랫동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완고한 시대적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천민이었지만, 그녀는 한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지배계층인 사대부의 향락적 파트너로서 그들과 대등한 문학적 지위를 유지했던 여인이었다. 임병 양난 이후에 향유 계층이 확대되기까지 조선조에서 문학.. 2019. 11. 14.
신화, ‘집단 정체성’의 기억들 [서평] 신동흔, (2005, 한겨레신문사) 우리에게 낯익은 신, ‘옥황상제’나 ‘용왕’의 계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옥황상제’는 하늘을, ‘용왕’은 바다와 하천 등, 모든 물의 나라를 통치하는 신격(神格)임을 알고 있지만, 그런 계보의 근원이 우리의 민간 신화(무속 신화)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그 낯익은 이름을 통해 도교나 불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국문학자 신동흔이 쓴 ‘살아 있는 우리 신화’(한겨레신문사)는 그 같은 신들의 계보를 밝히면서, 방 안에 모신 ‘삼신’이나, 부엌의 신 ‘조왕 할아버지’, ‘조왕 할머니’ 같은 ‘가정(家庭) 신’도 그 계통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고 일러 준다. 물론 그들의 계보는 올림포스의 제신(諸神)들처럼 일목요연한 체.. 2019. 11. 13.
맑은 빛깔로 물든 대구 팔공산 ‘단풍 터널’ [사진] 대구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 팔공산 단풍길을 처음 들른 것은 2012년이다. 그때 나는 순정(純精)의 단풍을 만난 감격을 기사로 썼다. (관련 기사 : 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이듬해에도 나는 거길 들렀다. 전년의 감격에 못지않은 감동으로 나는 부지런히 그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두 번 다 거길 찾은 날은 감독관을 면하게 된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일이었다. 단풍길의 주말은 차 댈 데가 없다고 했고, 평일에 시간을 내기로는 수능시험일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아마 두 날 다 기온이 꽤 내려간 날이었던 것 같다. 가을의 관습적 표지로서의 단풍을 제대로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들른다 해도 나무와 숲은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떤 때는 이르고 어떤 때.. 2019. 11. 12.
“촛불 내리는 순간 김천은 전쟁도화선 된다” 사드 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 1년의 기록 펴내다 사드 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아래 김천대책위)가 촛불 1년을 넘기면서 지난 365일을 돌아본 기록집 를 펴냈다. ‘김천 촛불 365일 너머’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지난 1년여의 투쟁과 그 갈피에 담긴 분노와 눈물과 기쁨의 기록이다. 김천대책위, 펴내다 김천대책위가 사드 반대를 표명하며 첫 촛불을 밝힌 것은 2016년 8월 20일이었다. 부곡동 강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첫 번째 촛불집회를 마치면서도 시민들은 이 촛불이 해를 넘기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은 해를 간단히 넘겼고 첫돌을 맞았다. 그 365일 동안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지 못한 날은 단 하루였다. 그리고 지난 13일, 마침내 450일째 촛불이 지펴졌다. 천막을 치.. 2019. 11. 12.
아이라쿵께요, 키가 커삐가 치마가 짧아진 거라예 [서평] 윤명희 외 2006년 5월 일단의 시민들이 헌법재판소에 “현행 표준어 일변도의 어문정책을 폐지하고, 지역의 학생들에게 사투리를 교육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이 바로 네티즌들이 결성한 지역어 연구 모임인 ‘탯말두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제출한 심판청구서에서는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 현행 어문규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비표준어 사용자를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현 어문정책은 국민의 기본권과 평등권, 교육권, 행복추구권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보는 이들의 논거는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사투리는 더는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자산이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포함된 지금은 굳이 지역어(사투리)를 차별해야 할 이유가 없다.. 2019. 11. 11.
‘베품’이 아니라 ‘베풂’이다 어간이 ‘ㄹ’로 끝나는 용언의 명사형은 반드시 ‘ㄻ’으로 써야 한다 학교 테니스장 철망에 펼침막 하나가 걸렸다. “베품, 나눔, 보살핌이 있는 아름다운 우리 학교”다. 학교 폭력 예방 관련 펼침막인데, 관제(官製) 물건치고는 쓰인 글귀가 썩 훌륭하다. 그러나 옥에는 늘 티가 있다. 첫 단어는 잘못 쓰였다. ‘베품’이 아니라 ‘베풂’이라야 한다. 우리말에 ‘명사형’이라는 게 있다.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처럼 쓰기 위해 어간에다 일정한 어미를 붙인 형태다. 이 명사형은 품사가 바뀌지 않으면서 임시로 명사 노릇을 하는 낱말이다. 이처럼 용언을 명사형으로 바꾸어 주는 어미를 ‘명사형 어미’라고 하는데 이 명사형 어미로 ‘-(으)ᅟᅠᆷ, -기’가 있다. 다음은 명사형 어미가 붙어서 만들어진 명사형의 예다. ⑴ 시민.. 2019. 11. 10.
독립운동가들의 최후, 글로만 봐도 눈물이 난다 [서평] 김태빈의 항일답사 프로젝트 108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고, 이듬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내준 하얀 수의를 ‘살아서’ 입고 형장에 나타났을 때 ‘줄 이은 집행관도 그의 거룩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훌쩍였다.’ 안 의사의 거부로 변호에 실패한 일본인 변호사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는 말년에 그를 회고하는 글 를 썼다. 그 글은 ‘나는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로 시작된다. 연암 박지원의 의 여정을 따라가는 (레드우드, 2016)에 이어 김태빈이 펴낸 ‘항일답사 프로젝트’의 제목은 다. 이 명명은 아마 의연하게 죽어간 안 의사에 대한 국적을 넘는 ‘외경과 공감’의 표현일 터이다.(.. 2019. 11. 10.
[오늘] 베를린 장벽 붕괴 [역사 공부 ‘오늘’]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무너지다 28년 만에 베를린 장벽 붕괴-‘육지의 섬’ 혹은 ‘반파시스트 보호벽’ 1989년 11월 9일은 목요일이었다. 오후 7시, 동독 경찰과 군 당국이 여행 자유화 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마침내 동서 베를린을 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61년,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서방측 선동을 차단한다는 구실로 장벽이 구축된 지 28년 만이었다. 1961년 8월 12일 밤 동독은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한 장벽을 설치했다. 철조망과 블록으로 이루어진 장벽은 기관총 초소와 지뢰 지역이 설치된 5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대체되었다. 1980년대에는 고압선과 방어 진지들이 45㎞에 걸쳐 구축되어 베를린시를 양분하고 서베를린 주.. 2019.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