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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노년의 호르몬 변화는 ‘신의 한 수’다

by 낮달2018 2019.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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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리끼’ 마련도 내 몫이다

▲ 자기 전에 머리맡에 준비해 두는 내 자리끼. 이 준비도 내 몫이 되었다.

밤에 자다가 여러 차례 물을 마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죽 그래왔다. 잠자다가도 갈증 때문에 깨기 때문인데 흔히 이를 ‘조갈(燥渴)’이라 하여 당뇨의 증상으로 치지만 내 혈당은 정상이니 해당하지 않는다. 아마 자면서 저도 몰래 입을 살짝 벌리고 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다.

 

자다가 갈증 때문에 깨어나 물 마시러 일어나야 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선 머리맡에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물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철든 이래 나는 언제 어디서나 머리맡에 물을 마련해 놓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경상도에는 이 ‘물’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없는데 표준말로는 ‘자리끼’라 한다. 사전 풀이로 “밤에 자다가 깨었을 때 마시기 위해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하여 두는 물”이다. 나는 술에 취해서 돌아와도 반드시 한 그릇의 냉수를 준비하고 자리에 들곤 하였다.

 

그렇다! 내게 아내는 ‘한평생 봉사’했다

 

결혼 이후엔 아내가 매일 밤 이 물그릇을 마련해 주었다. 잠자리에 드는 남편을 위해서 물 한 그릇을 떠서, 또는 주전자에 담아서 머리맡에 가져다주는 일을 아내가 도맡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세월이 무려 서른몇 해, 아내 말마따나 남편 시중들면서 아내는 시나브로 늙어버렸다.

 

젊어서는 ‘그 시절이 그래서’, 나이 들어서는 일하고 돌아온 가장을 챙기느라 아내는 수십 년 세월을 한결같이 물을 떠 나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나는 마흔이 넘을 때까지 우리 세대가 그랬듯 무심한 마초 가부장이었다.

 

방안에 누워서 밖에 있는 아내를 부렸고, 집 안 청소는커녕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집에서 나는 아내의 시중으로 완벽한 휴식을 취하며 살았다. 먹고 싶은 별식도 청하면 나왔으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반찬 투정은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나는 늘 일해 가용을 벌어왔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그것은 아무런 합의 없이도 명확하게 역할분담을 해 주는 조건이었다. 내가 당연히 돈을 벌어오는 것처럼 아내도 당연히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었을 것이다.

 

남자 손이 필요한 작업, 전기나 수도, 보일러, 가구나 시설 따위를 손보는 일은 내 몫이었다. 그런 건 아무리 부담스러운 일이라도 나는 두말없이 맡아서 해냈다. 그런 일 정도가 내가 집에서 하는 노동의 전부였지만, 아내는 이를 기꺼워했다.

 

눈곱만큼이나마 가사노동을 거들게 된 것은 40대 중반 이후였을 것이다. 그 무렵부터 가끔 이불을 개기 시작했고 어쩌다 내키면 청소기를 돌리기도 했다. 음식 재료를 다듬거나 하는 일도 흉내를 냈는데 그 기록이 10년도 전의 글로 남아 있다. 난생처음 ‘가사노동’을 의식하게 되었던 때 나는 쉰을 넘기고 있었다. [관련 글 : 주말 노동]

 

퇴직 이후, ‘가사노동’에 발을 들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철이 나는 법이다. 이후 나는 젊은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집일을 나는 지금 척척 해낸다. 가히 경천동지할 일이다. 아직도 부인이 바깥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남편 끼니를 챙겨주러 들어온다는 배짱 좋은(?) 내 친구와 비기면 나는 거의 열부(?)에 가깝다. [관련 글 : ‘삼식이’의 ‘혼밥’]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나는 좀 느긋해졌고 집일을 거드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기특하게도 아내의 부담을 좀 덜어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심하게 살아온 눈에 생활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질러진 집 구석구석을 치우기도 하고 빨랫감이 모이면 알아서 세탁기를 돌릴 정도가 되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내가 자리끼를 떠오는 일에서 해방된 것은 내가 퇴직하면서였을 것이다. 먼저 자리에 든 아내더러 ‘물은?’ 하고 물었을 게고 아내는 ‘당신이 떠 오구려’ 정도로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럴까’ 하고 나가서 자리끼를 챙긴 어느 날 밤부터였을 것이다.

 

자리끼 챙기는 게 내 몫의 일이 된 지 어느새 몇 해가 지났다. 이제 아내는 ‘자리끼’ 따위엔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다. 나는 늘 물 한 그릇을 떠서 머리맡에 두고 난 뒤 씻고 자리에 드는데 아내는 무심하기만 하다.

 

한번은 내가 당신은 이제 자리끼 떠 주던 건 생각도 안 나지, 했더니 그럼, 평생을 당신에게 봉사했으니 이제 됐잖아? 하고 심드렁하게 받았다. 아내는 무심하게 내뱉었지만 나는 그 말마디에 든 어떤 결기가 느껴져 등이 서늘해졌었다.

 

그렇다. 평생을 내게 봉사했다는 아내의 말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 나는 이에 대해 어떤 유감도 없다. 더는 기력이 없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까진 나는 자리끼를 몸소 떠 나를 것이다.

 

만약 아내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감당해야 할 부담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진실로 아내가 건강을 잃는 일은 없기를 나는 빌고 또 빈다.

 

청소나 빨래, 출타 중인 아내 대신 집을 건사하는 일에 나는 재미를 붙였다. 오늘도 아내가 요가를 하러 간 사이에 나는 집을 청소했다. 아내 편하게 청소하라고 퇴직 전에 사 준 물걸레 청소기는 요즘 내가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유선 진공청소기를 끌고 다니며 청소를 하다 보니 성능 좋은 무선 청소기가 그립다. [관련 글 : 삼식(三食)이의 ‘가사노동’]

 

노년의 남녀 호르몬 변화는 ‘신의 한 수’다

 

저녁에는 아내가 돌려놓은 빨래를 꺼내어 베란다 건조대에 널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계속되자 북쪽 베란다에 결로 현상이 생기면서 그 부분이 얼기까지 했다. 유념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는 불상사가 있을까 나는 통풍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사를, 집을 건사하는 일에 신경을 쓰면서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것도 눈에 띄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현관의 어지러운 신발들, 미처 끄지 않은 전원들을 보면서 그걸 거듭 입에 올리면 아내는 ‘잔소리 그만!’을 외치고 농반진반으로 ‘좁쌀영감’이라고 타박한다.

 

여자는 남자처럼, 남자는 여자처럼 변하는 노년의 호르몬 분비 감소 현상은 마치 ‘신의 한 수’ 같다. 그것은 한평생 누려왔던 남편의 전성시대가 스러지고 아내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조물주의 안배가 아니던가 말이다.

 

 

2018. 3.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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