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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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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등운산 고운사(孤雲寺)의 가을 본색 경북 의성 등운산 고운사에 당도한 진국의 가을 집을 나설 때의 생각은 소호헌을 둘러 서산서원을 둘러오는 것이었다. 시간이 나면 고운사에 들르든지 말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소호헌은 잠시 들렀고, 서산서원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 길인 고운사로 곧장 가 버린 것이다. 보물 제475호 소호헌(蘇湖軒)은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별당 건축물이다. 본래 안동 법흥동 임청각의 이명이 다섯째 아들 이고의 분가 때 지어준 것이나 이고가 외동딸과 혼인한 중종 때의 학자 서해에게 물려준 집이다. 망호리는 목은 이색의 후예인 한산 이씨 일족이 세거하고 있는 마을이다. ‘소퇴계(小退溪)’라고 불리는 영조 대의 대학자 대산 이상정(1711~1781)도 여기서 태어났다. 인근의 서산서원은 목은 이색을.. 2019. 11. 3.
밀양, 2017년 11월 경남 밀양의 ‘항일투쟁’ 기행 입대를 앞둔 청춘의 어느 날, 아내와 함께한 짧은 여행을 하기 전까지 밀양(密陽)은 이 나라의 나머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와 무관한 도시였다. 그 짧은 여행의 기억으로 밀양은 내 기억의 사진첩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밀양, 그 도시와의 인연과 기억 그리고 한때 젊음의 열망을 함께 지폈던 벗 하나가 거기 정착하게 되고 30년 전에 내 앞에서 국어 교과서를 펴고 있었던 여제자 하나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밀양은 내 삶의 어떤 부분으로 성큼 들어왔다. 벗 덕분에 우리는 매년 한 차례씩 그 도시에 들러 명승을 찾고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이나 친구의 시골집에서 자곤 했다. 거기 살고 있던 여제자와 연락이 닿으면서 부산에 살고 있던 그 동기들이 대거 몰려와 단란한 시간.. 2019. 11. 2.
슬프구나 유랑의 삶, 변강쇠와 옹녀 다시 읽기 변강쇠와 옹녀는 조선 후기에 연행되던 판소리 12마당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 횡부가橫負歌)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고전은 멀고 영화는 가깝다.’ 두 남녀는 1980년대를 풍미한 에로영화로 먼저 데뷔하는 바람에 판소리가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으로 ‘인구에 회자’한다. 에로영화에 절륜한 정력, 혹은 음란무비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에게서 무슨 우리 고전 서사문학의 냄새 따위를 맡을 겨를은 없다. 나도향의 사실주의 단편 ‘뽕’이 영화화된 이후, 그게 문예영화가 아니라 에로영화의 원조인 것처럼 이해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가루지기타령은 지금 전하지 않는 판소리 일곱 마당 가운데 유일하게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착된 작품이다. 신재효는 성적 표현이 지나치게 비속하였던 기왕의 이.. 2019. 11. 2.
부용대, 물돌이동[하회(河回)]의 가을 하회와 부용대에 닿은 가을 가을이라고 느끼는 순간, 가을이 이미 성큼 깊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나니 발밑까지 가을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때아닌 한파가 들이닥쳤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시월도 막바지다. 곧 수능시험이고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성큼 깊어진 가을, 부용대로 가다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공연히 어지러운 마음을 가누느라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고 잡다한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오후에 혼자서 집을 나선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을까. 사진기를 챙겨 들고 떠난 곳은 부용대였다. 며칠 동안 자꾸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 풍경과 발밑의 강을 오가는 나룻배가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룻배라고 했지만 기실 그 배는 이미 나룻배가 아.. 2019. 10. 31.
“아니 웬 알프스? 그래, 알프스 맞아!” 영남 알프스 간월재 ‘억새 하늘길’ 등정기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알프스(Alpes)’는 유럽 중부에 있는 산맥의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알프스’를 말할 때, 그 함의는 훨씬 새롭고 깊다. 실제로 알프스를 가보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나 같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형성된 이미지 때문일까. 알프스는 영세중립국 ‘스위스’와 ‘요들송’ 같은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산, 마지막 청정 지역’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니! 영남에 웬 알프스?” 일본 중부 지방의 산맥 몇을 일러 ‘일본 알프스’라고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에 안달하는 일본인들의 ‘유럽 지향’이 알프스까지 끌어들였.. 2019. 10. 31.
금도(襟度), 넘어서는 안 되는 선?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의 뜻 “선을 넘었다”고 하든지 ‘금도(禁度)’라는 새말을 만들어 쓰자 이 글은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원의 세비 반납 등 국회를 작심 비판한 것에 대해 “금도를 넘었다”고 규정하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을 때 썼다. ‘금도(襟度)’는 ‘행동의 경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금도’란 낱말이 ‘행동의 경계’ 내지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따위의 뜻으로 잘못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곁들여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옥석구분(玉石俱焚)’이나 ‘면장(面墻)’의 본 의미도 환기하였다. 그리고 5년.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 2019. 10. 30.
‘능지처참 반역자’ 아닌 시대 앞선 혁명가였던 허균 [2박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②] 허난설헌 생가터와 교산 시비를 찾아서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강릉 여행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허난설헌과 허균을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아이들에게 ‘홍길동전’과 허균(1569~1618)을, 난설헌(1563∼1589)과 ‘규원가(閨怨歌)’를 가르쳐 온 문학 교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들 남매의 파란 많은 삶에 끌려왔기 때문이었다. 남매의 시대, 파란의 삶 블로그에 이들 이야기를 쓴 것은 거의 10년 전이었다. 나는 고액 종이돈에 실릴 인물 선정과 관련하여 신사임당(1504∼1551)과 비겨지는 여성으로서 난설헌을 바라보았고 의 서평을 썼다. 허균과 난설헌 유적지로 향하는데 아내가 그들이 .. 2019. 10. 30.
배웅, 다시 한 세대의 순환 앞에서 장모 이상선 여사(1934~2015. 10. 17.)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지지난 토요일이다. 창졸간에 맞닥뜨린 당신의 죽음 앞에서 가족들은 당혹을 쉬 떨치지 못했다. 서럽게 통곡하는 아내를 달래면서 나는 뜻밖에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에 놀랐다. 나는 마치 미리 준비해 왔던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장례의 전 과정을 챙겼다. 장모상을 치르며 맏사위 노릇 이전에, 이미 나는 내 부모님과 맏형님, 그리고 장인어른까지 가족들의 임종을 잇달아 겪어온 바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진작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깨우쳐 버린 것이다. 여러 개의 장례식장이 경쟁하면서 예전처럼 바가지 상술로 욕을 보는 일은 없어졌다. 병원 부속 .. 2019. 10. 29.
하룻밤 숙소만 잡고 아내와 떠난 회갑 여행 [2박 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① 강릉의 솔향, 선교장과 경포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난 시월 중순에 나는 ‘회갑’을 맞았다. 올해는 병신(丙申)년, 60년 전 내가 태어난 잔나비 해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온 것이다. 한 40~50년 전만 해도 소나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겠지만, 우리 가족은 모여서 밥을 한번 같이 먹는 거로 이날을 기념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주초에 아내와 함께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를 생각하다가 비행기와 숙소 등 이것저것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게 성가셔 포기하고 선택한 데가 강원도였다. 나는 강릉을 거쳐 설악산을 다녀오는 일정을 짰다. 그러나 내가 준비한 것이라곤 한 달 전쯤에 호텔 어플을 통해 첫째 날 숙.. 2019. 10. 29.
숨은 여행지, 의성엔 잃어버린 고대 왕국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11월 추천 ‘토박이 추천 명소’ 의성 금성산 고분군 역사 관광지 경북 의성 ‘금성산 고분군 역사 관광지’가 한국관광공사가 11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한 ‘토박이 추천 명소’에 선정되었다. 함께 선정된 관광지는 △충남 서산 웅도 △대전 대동하늘공원 △충북 충주 오대호 아트팩토리 △광주 광주호 호수생태원 △울산 울산대교 전망대 등 모두 6곳이다. 토박이가 추천한 ‘숨은 여행지’라고 하지만 여전히 금성산 고분군은 경상북도 안에서도 낯선 곳이다. 한때 대읍(大邑)으로 알려진 의성은 오지는 아니지만, ‘태어나는 아이는 없고 노인만 늘어나’ ‘소멸 대상 지자체 1순위’로 꼽히면서 잊힌 고을이 된 까닭이다. 에 한 줄 기록으로 남은 ‘조문국’ 금성산 고분군(古墳群)은 금성면 대리리 일대에 흩어져 있.. 2019. 10. 29.
은행나무 이야기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올해는 유난히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예년에도 그랬던가 싶을 만큼 출퇴근길에 만나는 은행나무 가로수의 물결은 눈부시고 화사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바뀌어 간다. 보도에 수북이 쌓인 은행나무 낙엽을 밟으며 출근하는 기분은 그러나 스산하지는 않다.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데 연관 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 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한 중생대(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에 번성한 식물이어서 살아 있는 화석의 예로 널리 알려졌다. 영화 가 천년의 세월을 풀어낸 것도 은행나무 수명이 워낙 오래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2019. 10. 29.
하얼빈 의거 110주년, ‘안중근 글꼴’ 나왔다 GS칼텍스 ‘독립 서체 캠페인’, 지금까지 총 5종 글꼴 공개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올 3월부터 '독립 서체 캠페인'을 진행해 온 지에스(GS)칼텍스(아래 지에스)에서는 지난 8월 15일 '안중근 의사'의 서체를 추가 배포한 바 있었다. ‘독립 서체’ 캠페인은 파편적인 기록만 남은 일부 독립운동가분들의 글씨체를 모아서 전문 폰트 개발업체와 협업, 당시의 글씨체를 현대에 맞게 복원·제작하는 것이다. 지에스는 이를 무료 배포해 그 의미를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안중근체는 안 의사가 의거 거행 전 동지인 우덕순에게 준 한시와 한글 시 에 남아 있는 그의 육필을 기초로 제작한 글꼴이다. 안 의사는 적지 않은 한문 유묵을 남겼으나 한글로 쓴.. 2019.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