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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시계, 시간, 세월

by 낮달2018 2019.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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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계를 몸에 지니며 살아온 시간

▲ 나는 늘 시계를 몸이 지니며 지금껏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 상품으로 손목시계를 타서 그걸 팔뚝에 차기 시작하면서다.

나는 늘 시계를 몸에 지닌다. 휴대전화가 나온 뒤에 그걸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시계는 시계고, 휴대전화는 휴대전화라고 생각한다. 무슨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시계를 항상 왼쪽 손목에 찬다.

 

시간을 보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는 수업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자주 시계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무심한 습관일 수도 또는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확인 행위일 수도 있다. 시계를 보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텔레비전 옆 문갑 위에다 시계를 끌러놓는다. 그것은 내가 일상과 삶의 공식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는 손목시계 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다.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시간은 내게 절대적으로 허용된 사적 시간이다. 이튿날, 다시 시계를 손목에 차고 집을 나선다.

 

상품으로 받은 첫 시계

 

내가 처음 시계를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요즘이야 초등학생들도 저마다 하나씩은 기본이고 길거리 손수레에서 만 원만 주면 살 수 있는 게 시계다. 그러나 그 시절만 해도 시계는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반에 시계가 있는 아이들의 숫자가 2, 30%는 되었을까.

 

시골에서 도회로 유학 와 있던 처지니 시계를 사서 낄 형편은 물론 아니었다. 당시엔 탁상시계조차도 흔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취생들은 주인집 마루에 걸린 괘종시계의 타종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등굣길에 오르곤 하던 때였으니 말이다.

 

그해 가을에 문예 동아리를 지도하던 국어 선생님께서 기획한 ‘교내 현상문예’에 내가 난생처음 쓴 단편소설이 최우수상을 먹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어떻게 쓴 작품이냐고 꼬치꼬치 물으셔서 뭐가 잘못됐나 했더니 아닌 상 벼락(?)을 덮어쓴 것이었다.

 

나는 유려한 포마이카 처리까지 마친 상패에다 부상으로 손목시계 하나를 받았다. 상이 얼마나 사람을 고양하는가를 실감 나게 해 준 그 상을 받고 나는 한동안 들떠서 지냈다. 큼지막한 문자판에 야광도 선명한 스테인리스 줄의 그 시계는 국산 ‘오리엔트’ 시계였다.

 

당시 시가로 만 원을 넘는 것이었으니 ‘괜찮은’ 시계였다. 문예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려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고 나서 음식값이 없으면 그놈을 잡히면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그 음식점을 나올 수 있었다. 그뿐인가, 부득이할 때 전당포에 그걸 맡기면 주인이 3천 원을 수월하게 건네주게 하는 놈이었다.

 

그 시계를 나는 서너 해쯤 간직했던 것 같다. 나중에 줄이 떨어져서 문자판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 시계의 최후는 기억에 없다. 시계가 정확하게 알려주는 시간도 좋았지만, 왼쪽 손목에 차갑게 감기던 금속성의 느낌과 묵직한 양감을 나는 사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내가 자신의 힘으로 이룬 첫 보람이었다.

 

잃어버린 결혼 시계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시계는 결혼 예물시계다. 당시 대부분 신랑이 스위스제 ‘오메가(omega)’를 받던 시긴데, 아내와 나는 합의하여 그보다 좀 가격이 싼 시계를 주고받았다. 내가 선택한 시계는 텔레비전 모니터 모양의 문자판을 한 ‘블로바’였다.

 

명색이 결혼 예물시계였으니 그걸 어찌 내 첫 시계 오리엔트에 비길 수 있을 건가. 그러나 나는 그 시계를 그리 오래 지니지 못했다. 나는 그걸 어디서인지도, 어떤 연유인지도 모르게 잃어버렸다. 아마 예물시계를 그런 식으로 갖다버린 위인이 나 말고 또 있을까. 공교롭게도 아내 역시 시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에 나는 값싼 전자시계를 차는 거로 십수 년을 보냈다. 후배가 건네준 이른바 ‘김영삼’ 시계를 한동안 끼고 지내기도 했다. 좋은 시계에 대한 욕구는 없지 않았지만 돌아볼 여력도 없었거니와 전자시계의 실용성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시계를 끼고 사는 나와는 달리 시간에 무심하고 대범한 아내는 시계에는 무심한 편이다. 저가의 커플 시계를 함께 끼기도 했는데 아내는 시계를 잘 몸에 붙이지 않았다. 핸드폰이 필수가 되면서 시계의 필요성은 점점 더 떨어진 듯하기도 했다.

▲ 앞으로 겪고 견뎌야 할 시간의 중력을 나는 무겁게 느끼고 있다.

얼마 전까지 내가 끼었던 시계는 몇 해 전 딸애가 사 준 것이었다. 그 당시 유행이었던지 큼직한 문자판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엠포리오’ 무엇이라는 가죽 줄 시계였다. 여름이면 땀이 차니 자연스레 수업에 들어가서도 끌러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꽤 묵직한 양감의 시계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더니 그예 그 무게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것은 까닭 없이 팔이 아프기 시작하던 때였을 것이다.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작업 시간을 줄이고 스트레칭을 자주 하라는 충고를 나는 얼마간 따랐다. 자다가도 오던 통증이 잊을 만하다 싶어졌는데 왼쪽 손목에 감긴 시계의 무게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가벼운, 스포츠 시계 같은 걸 하나 샀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 전에 딸애가 다시 물었다. 시계 봐 둔 게 있느냐, 선물을 하겠다고. 말만 들어도 고마운 일인데 며칠 전에 딸애가 인터넷으로 산 시계를 내게 내밀었다.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값을 치렀단다. 마침 무슨 날이었던 게다.

 

이 시간의 중력 앞에서

 

새로 찬 시계는 아주 가볍다. 전의 거에 비기면 문자판도 조그맣고 검은 가죽끈도 얇고 가늘다. 시계를 찼는데도 팔에 이물감조차 없을 정도로 가볍고 부드럽다. 나는 이 선물이 썩 마음에 든다. 11월 말이면 아이도 생일을 맞는다. 그때 이 아이에게는 어떤 선물로 답례를 할까.

 

지난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뵈었다. 예전의 정정하시던 모습 그대로셨다. 잠에서 깨어나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왜 갑자기 어머니를 꿈에 뵙는가. 정작 어머니께 ‘선물 같은 선물’을 하지 못한 게 걸렸던가 하는 공연한 생각을 한다.

 

월요일은 괴롭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인데도 다시 시작하는 한 주를 앞두고 한참이나 망연해진다. 앞으로 겪고 견뎌야 할 시간의 중력을 나는 무겁게 느낀다. 대구의 내 친구는 이달에 명예퇴직 신청을 한다던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여며야 할 시간 앞에 한층 막막해질 뿐이다.

 

 

2010. 10.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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