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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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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과 함께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다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반 아이들과 영화를 보다 지난 금요일 오후, 시내 예술전용관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맞춤 영화’ 를 보았다. 이 영화가 ‘맞춤 영화’인 것은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특별히 청한 영화인 까닭이다. 학년 말이었고 피자나 찜닭으로 1년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영화를 한 편 보는 게 훨씬 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 것이다. 학급 마무리를 고 이태석 신부와 함께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고, 관람료가 반액으로 할인되었으므로 나는 더 많은 아이가 이 영화를 보러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최종 확인한 관람객은 모두 48명. 우리 반 아이들 28명 외에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는 동료 교사 다섯을 포함 스무 명 남짓. 이는 몇 해 전, 독립영화 를 본 아이들 10.. 2019. 11. 23.
낡은 절집 가득한 온기와 정담(情談) 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기행 전남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는 애당초 우리의 여행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리암 다음의 목적지로 선암사를 넣은 것은 제대로 마음속에 새길 능력도 변변찮으면서 명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과욕 때문이다. 지도를 여러 번 살펴보는 과정에서 보길도로 가는 길목에 순천 조계산이 있었고, 승보사찰 송광사 너머 산자락에 깃든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를 발견한 것이다. 송광사는 두어 차례 들렀으나 선암사는 초행이다. 노승과 동자승이 등장하는 뒷간 광고로 널리 알려진 이 절집을 나는 작가 조정래의 출생지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나는 조정래보다는 그의 부친을 먼저 알았다. 70년대에 고등학교에 다닌 이라면 국어 교과서에 실린 다음 노래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나도 푯.. 2019. 11. 22.
“사장님, 이거 말고 딴 영화 틀어주세요” 경북 안동의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씨네마… 144석 규모의 맞춤형 서비스 ‘인구 16만의 소도시 안동에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없다’라고 하면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소도시 안동에도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다’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건 사람들 대부분한테서 ‘정말?’ 또는 ‘설마?’ 같은 단말마 성(?)의 경악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럴 만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그 말 많던 위원장은 최근 해임되었다. 그는 ‘좌파’들의 수중에 떨어진 영화판을 구하기 위해 권력이 파견한 ‘백기사’였지만 단 14개월 만에 ‘흑기사’라는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에서 지원하는 ‘예술영화 전용관’에 선정된 영화관은 2009년에 전국에서 겨우 10개 영화관뿐이었기 때문이다. .. 2019. 11. 22.
문화재등록 거부한 ‘겁 없는’ 촌부들, 누구야? 경북 군위 한밤마을 주민들의 돌담길 보전하는 방법 지방자치가 자릴 잡으면서 지자체들의 관광자원 개발은 바야흐로 백화제방 시대를 맞은 감이 있다. 지자체들은 빤한 재정을 도울 ‘백기사’로 관광 수입을 겨냥한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포맷의 축제가 겹치는 것이나, 관광객을 끌 만한 ‘거리’만 있으면 기를 쓰고 관련 스토리텔링에 골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문화재등록’을 거부한 한밤마을 사람들 그런 상황에서 집집이 오래된 돌담으로 둘러싸인 유서 깊은 마을이 문화재 등록을 거부했다면 뉴스가 될 만하지 않은가. 그것도 마을 주민들이 투표로 부결시킨 것이라면 이들의 뜻과 의지는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관’이 권하는 일을 깨끗이 물리친 이 ‘민’이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 사람.. 2019. 11. 21.
‘골목길 구제금융’, 전당포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전당포, 그 성쇠와 부침의 연대기 ‘전당포(典當鋪)’는 그 이름도 고색창연하다. ‘이발소’가 ‘바버샵(barber shop)’이 되고, ‘미장원’이 ‘헤어·뷰티 살롱(hair·beauty salon)’ 따위로 진화하는 이 시대에도 전당포는 여전히 전당포다. ‘가게 포(鋪)’ 자가 붙은 이름으로 가끔 ‘지물포(紙物鋪)·시계포·자전거포’ 따위가 쓰이긴 하지만, 이는 케케묵은 ‘부름말’일 뿐 그걸 상호로 쓰는 데는 없다. 오래된 가게라는 뜻으로 쓰이는 ‘노포(老鋪)’도 마찬가지다. 지물포는 ‘지업사’로, 시계포나 자전거포는 ‘포’ 자를 떼어낸 상호를 쓰고, 손님들도 ‘포’ 대신 ‘시계방’과 ‘자전거방’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전당포는 예나 지금이나 전당포다. 사양길로 떨어지던 전당포가 새로이 성업 중이라 해도.. 2019. 11. 21.
첫아이 ‘돌사진’ 찍던 그 사진관…추억 돋네요 경북 군위 화본마을에 있는 추억박물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추억은 과거와 현재, 혹은 슬픔과 기쁨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한 시절의 슬픔과 아픔을 환기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고통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그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린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두 마음속에 따뜻한 등불 하나 켜지는 것이다. ‘추억’을 상품으로 파는 시절 사내들이 군대 얘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세대들이 그 끔찍한 가난을 입에 올리는 이유도 그것이 지나간 고통을 ‘일별해 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의 한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시절의 고통과 아픔을 복기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따위 추억을 입에 올리겠는가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바뀌면서 이제는 그 추억을 상품으로 파는 시대가 되었.. 2019. 11. 20.
“나라 없는 몸… 무덤은 남겨 무엇하겠느냐” [항일의 땅과 사람, 안동①] 내앞 마을, 일송 김동삼과 월송 김형식 지명은 마을의 생성과 역사, 지리적 특성 따위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한 지역의 공동체적 삶을 어우르고 있는 정서적 지리적 표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정비된 1914년 이후 사람들의 마을 이름에서 삶의 향기와 정겨움은 사라져 버렸다. 이 식민 관리들은 고유어로 이루어진 마을이나 지명을 ‘반듯하게’ 한자로 바꾸었다. 애당초 한자 없이는 표기 자체가 어려운 문자를 쓰던 일제로서는 우리말 지명의 의미 따위를 고려할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주의 ‘한밭’이 반듯하게 ‘대전(大田)’이 된 것처럼 임하의 내앞마을은 ‘천전리(川前里)’가 됐다.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 우리 근대사의 곡절 많은 소용돌이.. 2019. 11. 19.
그리운 극장, 추억의 단관 영화관 시대 단관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다 인터넷에 국내 최초 영화관인 단성사 관련 기사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법원경매에서 세 차례나 유찰돼 최저 입찰가격이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이다. 어떤 신문에선 ‘주인을 찾지 못하는 현 상황’을 ‘잔혹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 있는 낡은 사진 속에 한자 간판 ‘단성사(団成社)’를 단 옛 영화관 건물이 오래 눈길을 끌었다. ‘단성사’ 소식에 단관 극장을 생각하다 물론 나는 단성사 극장을 전혀 모른다. 거기 가 본 적은 물론이고 그게 서울 어디쯤 있는 극장인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7, 80년대 따위의 일간지 하단을 장식하던 영화 광고에서 본, 한자 약자 ‘단(団)’자를 쓴 이름은 눈에 익었다. 이른바,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의 시대[관련 글 : ‘가설 천.. 2019. 11. 19.
‘가설 천막극장’에서 만난 영화와 노래들 유년 시절, 가설 천막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유행가를 배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의 극장은 모두 333개, 스크린은 2,184개다. 대부분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일 터이니 가히 ‘영화의 전성시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겠다. 영화를 보려면 그걸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을 찾아다녀야 했던 단관 중심의 과거 극장가는 그야말로 옛이야기가 되었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떠올리는 ‘가설극장’ 그러나 여전히 영화관이 없는 시군이 적잖다. 군청 소재지가 있는 소읍에 있던 영화관은 대부분 문을 닫은 지 오래여서 시골 사람들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관이 있는 대도시로 원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문화 소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경상남도에선 ‘작은 영화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한다. .. 2019. 11. 19.
흙, 혹은 나무로 돌아가기 장인어른 1주기에 어제는 장인어른의 1주기였다. 고인과 동기간인 처숙(妻叔)과 고모 두 분이 각각 부산과 대구에서 달려왔다. 어차피 각별한 슬픔 따위를 느끼기에는 모인 사람들이 산 세월이 만만찮았다. 처삼촌과 큰 처고모는 일흔이 넘었고, 작은 처고모도 올해 회갑이다. 간단한 추도회를 마치고 다리가 불편한 장모님을 뺀 일가가 마을 뒤의 선산에 올랐다. 올해 중학 2학년이 될 하나뿐인 친손자가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고인에게는 무덤이 없다. 고인보다 몇 해 전 세상을 뜨신 어머님의 산소, 그 발치 아래 선, 키 큰 소나무 아래 당신의 뼛가루가 뿌려졌다. 한 해 동안 이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지나간 눈과 비바람 가운데서 그것은 녹아 기쁘게 흙 속에 스며들었으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장.. 2019. 11. 18.
게으름뱅이 독자의 ‘책 읽기’ 지리멸렬해진 요즘 나의 ‘책 읽기’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책 읽기가 ‘지리멸렬’해진 게.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사야 할 책을 정리해 두었다가 일괄 구입 주문을 내는 것은 예와 다름이 없다. 책은 시간은 다투어 택배로 도착한다. 그러나 기다렸던 책을 펴는 순간의 긴장이나 설렘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읽을 날을 위하여 새로 산 책은 따로 서가에다 꽂지 않고 쌓아둔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어느 날부터 그것들은 시나브로 한 권 두 권 서가에 꽂히고 만다. 어쩌다 한번 들쳐지기나 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배달되어 온 모습 그대로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채 얌전히 서가로 처박히고 마는 책들! 지리멸렬해진 ‘책 읽기’ 세상에 가장 비싼 책은 ‘읽지 않은 책’이라 했던가. 지난 몇 해 동안 그런 과정.. 2019. 11. 18.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난생처음 본 내장산 단풍터널… ‘가을의 본좌’는 단풍부터 다르다 가을이 ‘단풍의 계절’이라는 걸 모르는 이야 없지만, 단풍을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다. 굳이 단풍을 보겠다고 길을 떠나도 때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 걸음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기 일쑤다. 한 열흘쯤 늦추거나 당기면 맞아떨어지겠지만, 그게 말처럼 수월치 않은 것이다. 가을 단풍의 본좌 그간 단풍 이야기를 두어 차례 기사로 썼다. 구미 태조산 도리사(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와 대구 팔공산 단풍길의 단풍(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이다. 도리사 단풍은 핏빛이라는 기억을 돌이키려 두어 차례, 팔공산 단풍길은 꽤 여러 해에 걸쳐 찾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나.. 201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