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전체 글2135

[근조] 고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라 김근태 전 의원,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어제저녁 YTN에서 오보가 떴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숙연히 애도하는 걸 보면서 그가 남긴 자취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풍운아였음에도 시대가 품어주지 못한 이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매체를 통해 알려진 그의 이미지에 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적 겸손과 진정성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가 고통스럽게 지나온 7, 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무관하지만, 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 교육 민주화 운동의 말석에 참여한 것을 통해 그에게 동지적 연대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그가 도봉구에서 낙선했을 때, 나는 내가 모욕받은 듯한 치욕을 느.. 2019. 12. 30.
최남선, 죄과(罪過)는 다섯 가지나 나는 ‘무죄’다 참회의 ‘자열서’에서조차 무죄를 주장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시인 우리는 신체시(新體詩)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의 작자로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을 만난다. 최초의 신체시로 평가되는 이 노래는 근대 자유시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있을 뿐, 정제된 형식을 갖추거나 일정한 장르적 특성을 지닌 시편으로는 볼 수 없다. 이 작품은 그가 창간한 잡지 『소년(少年)』 창간호(1908년 11월호)에 실렸는데, 이때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요즘 같으면 고등학교 졸업반일 나이에 잡지를 창간하였다는 게 놀랄 만한 일이지만, 그것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한글을 깨쳐 열한 살 때부터 《황성신문》에 투고하던 육당의 비범성과 함께 근대로 이행하던 ‘시대’의 소산.. 2019. 12. 29.
겨울 여행, ‘눈꽃 전차’를 만나다 아내와 함께한 겨울 여행 겨울 여행에서 눈을 만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행운이긴 하다. 그러나 자칫 그것은 여행자의 발길을 묶어 예기치 않은 여정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므로 에누리 없이 행운이라고는 못한다. 하여, 눈은 풍성하게 내리되 길이 막히지 않고 눈부신 설경을 펼쳐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가히 ‘서설(瑞雪)’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성년의 어떤 시기부턴 ‘눈’은 그리 생광스러운 배경이 아니다. 푸짐하게 내릴 때 주는 기쁨과 감동은 ‘잠깐’이지만 쌓인 눈이 얼고 다시 녹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지저분함’은 ‘오래’이기 때문이다. 큰 눈 온 다음 날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설원을 바라보며 지른 탄성은 이내 이런저런 불편 때문에 내는 짜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관련 글 : 눈, ‘설.. 2019. 12. 29.
추억의 시장기, ‘누렁 국수’를 아십니까 ‘칼국수’ 대신 ‘누렁 국수’ 식성은 결국 ‘피의 길’을 따르는 듯하다. 아이들의 식성이 어버이들과 한참 다른 듯해도 결국은 부모의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 건 세월이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 가운데서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유전되는 것이 미각인 까닭이다. 마흔 고개를 넘기면서 나는 아니라고 믿었던 내 미각이 선친의 그것을 되짚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년이 된 아이들의 식성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이들의 미각이 역시 내가 밟아왔던 길을 꼼짝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우쳤다. 대를 이어 재현되는 피의 정직한 순환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삽십대 중반을 훌쩍 넘기면서부터 나는 국수에 끌리기 시작했다. 굳이 ‘끌린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그게 단순한 식성의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2019. 12. 26.
수백 년간 연못에 ‘수장된 비석’의 정체 보물로 지정 예고된 정자, 경북 김천 방초정 이야기 인근 김천에 있다는 정자 ‘방초정(芳草亭)’의 이름을 들은 것은 7년 전, 구미로 들어와 살면서다. 안동에 살면서 웬만한 정자는 다 돌아본 터라, 선산도 어떨까 싶었는데 정작 이름난 정자가 몇 되지 않았다. 방초정은 범위를 넓히다 김천에서 확인한 정자였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도록 나는 그쪽 걸음을 통 못했다. 방초정 이름을 다시 들은 건 지난달 하순이다.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을 예고한 10건의 문화재 가운데 강릉 경포대 등과 함께 김천 방초정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방초정 소재지가 김천시 구성면임을 알았다. 구성(龜城)이라면 흑돼지로 유명한 지례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그간 지례를 두어 차례 찾으면서도 모르고 스쳐 지.. 2019. 12. 24.
보신탕집 떠나는 똥만이 마음은 어땠을까 [서평] 박상규 기자의 자전적 청소년 소설 어린이를 위한 시와 이야기를 각각 ‘아이 동(童)’자를 써서 동시, 동화라고 부르고 이를 ‘아동문학’으로 뭉뚱그리는 것은 매우 고전적인 분류법이다. 문학의 예상 독자를 어른과 아이로 대별할 때 구획하는 전통적 범주의 분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세상은 한갓진 문학적 상상력을 뛰어넘는 형식으로 변화해 왔고,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써 문학의 성격과 형식도 훨씬 다양해졌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독자를 어린이로만 한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수 있다. 동화 가운데에는 어른들이 읽어도 무방한 작품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황선미의 동화 (2000)은 지금까지 150만 부가 넘게 팔려 ‘100쇄’를 기록한 작품이다. 올해에는 영문판 출간 한 달 만에.. 2019. 12. 20.
한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들을 남기고 떠난 젊은 어머니 한글날 아침 식탁에서 나는 그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두 자녀를 기르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젊은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였다. 입안에 밥을 떠 넣다 말고 나는 잠깐 숨을 죽였다. 눈시울만큼이나 뜨겁게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 왔다. 이게, 무슨……. 나는 간신히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먼저 가서 미안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 데도 사주지 못해 미안해.” 그게 스물일곱 살, 젊은 엄마가 7살, 5살배기 철부지 아들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이는 8일 오전 자신의 원룸 창고의 가스 배관에 목을 매었다.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원룸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철부지 아들 신발 사주지.. 2019. 12. 20.
계절의 미각, 고추 부각과 콩잎김치 고추 부각과 콩잎 김치 고추 부각 나이 들면서 좀 눅어지긴 했지만 나는 입이 짧은 편이다. 어릴 때부터 젓갈 따위는 질색이어서 젓갈을 넣은 김치도 먹지 않을 정도였다. 세월이 약이던가, 이제 아내가 깔끔하게 조리한 멸치 젓갈에도 더러 젓가락이 갈 정도이니 발전이라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좋아하는 반찬은 대체로 담백한 것들이었다. 김이나 오징어채, 멸치나 달걀 조림 따위의 반찬을 즐겼고, 나물류는 대체로 무난하게 잘 먹었다. 스물을 넘기면서 흠씬 빠진 반찬으로 고추 부각이 있다. 풋고추에다 밀가루를 발라 찐 뒤에 바짝 말려서 기름에서 튀겨낸 이 음식이 ‘부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안 것은 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부각’은 대체로 ‘식물성 식품에 찹쌀풀을 발라서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기름에.. 2019. 12. 19.
좁지만 편안했던 ‘내 인생의 첫 집’을 떠나며 복직하여 마련한 24평 작은 집을 떠나며 내일모레면 이 도시를 떠난다. 2월 중순쯤에 나올 전보 명령에 앞서 서둘러 이사를 하는 것은 집을 산 이가 하루라도 빨리 집을 비워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1월 말까지 수업이 남아 있고 2월 초에도 며칠 간 근무를 해야 하지만 부득이한 일이다. 아침에 아파트 앞 이발소에 가서 마지막 머리를 깎았다. “여기 한 십 년쯤 다녔지요?” 하고 물었더니 늙수그레한 이발사는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고 되묻는다. 예천에서 여기로 옮아온 게 1997년이다. 그해 7월에 준공검사를 앞두고 시공업체의 부도로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는 예천 서본리의 오래된 국민주택을 떠나 난생처음 내 명의의 아파트에 들었다. 좁지만 편안했던 ‘내 인생의 첫 집’ 식구들 모두 행복하게 새집에 입주했다.. 2019. 12. 17.
이제 ‘허접하다’도 ‘개기다’도 쓸 수 있다 국어원, ‘2014년 표준어 추가 사정안’ 발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은 국민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삐지다, 놀잇감, 속앓이, 딴지’ 등 13항목의 어휘를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2014년 표준어 추가 사정안’을 발표했다. 발간(1999) 이후 언어생활에 쓰이면서도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낱말들을 검토해 온 국어원이 2011년 8월, ‘짜장면, 맨날, 눈꼬리’ 등 39항목을 표준어로 추가[관련 기사 : 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한 지 세 해 만에 다시 표준어를 더한 것이다. 어문 규범과 언중들의 언어생활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언중들이 쓰는 낱말 가운데에 는 규범 바깥에 있는 말이 꽤 된다. 이번에 추가된 표준어는 .. 2019. 12. 16.
[오늘] 국군과 유엔군, 중공군에게 밀려 ‘흥남철수’ 시작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12월 15일, 흥남항을 통한 해상 철수 시작 장진호 전투, 그리고 흥남철수 1950년 12월 1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함경남도 흥남항을 통해 해상 철수를 시작하였다. 12월 23일까지 아흐레 동안 이루어진 흥남철수(興南撤收)로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한 국군과 유엔군 등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7,500대의 각종 차량, 35만 톤의 물자를 완전하게 철수시켰다. 1950년 12월, 당시 서부전선으로 북진한 제8군은 육로로 후퇴할 수 있었지만, 동부전선 장진호(長津湖) 방면으로 북진한 미 제10군단의 병력은 원산지역이 중공군에게 넘어가자 퇴로가 막혔다. 활로는 해상 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진호 전투는 같은 해 11월 27일, 중국 제9병단이 장진호 지.. 2019. 12. 14.
[오늘]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 교수형 선고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12월 15일, 예루살렘 법정 아이히만에게 교수형 선고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정부가 연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은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에게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이히만이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린 평화는 짧았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Simon Wiesenthal)과 이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 2019.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