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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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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측은지심(惻隱之心)’ 전직 대통령의 딸에게 보내는 민초들의 ‘연민’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의 하나로 인(仁)의 본질이라고 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불쌍히 여겨서 언짢아하는 마음’이다. 물에 빠진 아이의 예로 제시한 측은지심은 이성적 판단 이전에 인간이 본능으로 가진 어진 마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상대를 불쌍하게 여길 때 말하곤 하는 ‘안됐다’라고 하는 감정과 상통한다. 따라서 ‘측은하다’거나 ‘안됐다’고 하는 감정은 타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일종의 공감인 것이다. 그 공감이 상대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참 안됐고 측은하다’ 뜬금없이 ‘측은’을 이야기하는 것은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아내가 만난 60대 이웃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통령을 보고 ‘측.. 2020. 1. 8.
‘호작질’과 ‘저지레’ - 정겨운 우리말 ① 손장난? 아니 ‘호작질’ 선친께선 목수셨다. 일생을 전업의 목수로 사신 건 아니고, 젊은 시절 한때 나무를 만지셨다. 아버지께선 지금은 없어진 고향 집을 지으셨고 내 어릴 적 우리 집 곳곳에 있던 나무로 만든 가구들도 대부분 당신께서 손수 다듬으셨다. 방앗간과 대문간 그늘에 짜놓은 커다란 평상이나 길쭉한 나무 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왕겨를 때던 부엌마다 비치된 소쿠리도 아버지께서 만드신 거였다. 왕겨나 재를 담아내던 손잡이 달린 그 소쿠리는 바닥은 함석으로 손잡이는 나무로 만든 거였는데 용도에 따라 크기도 여러 가지였다. 때로 아버지께선 긴히 소용에 닿지 않는 것도 금방 뚝딱 만들어 내시곤 했는데, 그걸 만드실 때 누군가가 무얼 하느냐고 물으면 좀 겸연쩍으신지, “뭐 호작질 삼아서…….”하고 얼버무리시곤 했.. 2020. 1. 7.
2019년 불발 군대 ‘영창’ 폐지, 올해는 시행된다 헌법상 영장주의와 평등주의에 반하는 영창제도 2019년부터 폐지한다던 영창, 올해는 폐지될 듯 군 영창(營倉)이 사라진단다. 20일, 국회 국방위가 사병에 대한 영창제도를 폐지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2019년 1월부터 사병의 징계 중 영창이 폐지되는 것이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낯선 감옥인 ‘영창’이 일반의 화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5년 7월 방송인 김제동 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장성 행사에서 사회를 보던 중 군사령관의 배우자를 아주머니라고 호칭했다가 13일간 영창에 수감됐다”고 말하면서다. 이때, 군대를 다녀온 지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군대에서 못할 일이 뭐가 있나. 그러고도 남았지’였다. 대체.. 2020. 1. 7.
김광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의 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 곡진한 삶의 흔적과 체취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발언은 낮으면서도 적지 않은 울림을 갖고 있다. ‘묘비명(墓碑銘)’은 어느 부자의 무덤 앞에서의 상념을 통해 ‘역사’와 ‘시인’을 노래한다.[ 시 전문 읽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기성세대로 편입한 혁명 세대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고 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던 그들은 ‘살기 위해 살고’,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옛사랑이 피 흘린 곳’을 지나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다. [시 전.. 2020. 1. 6.
<카트>, 공감 이후 영화 의 공감과 연대 서로 다른 계급, 계층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류 계급의 삶과 그 양식에 대해서는 알 만큼은 안다. 자신의 삶과는 무관할뿐더러 허상에 그치긴 하지만 그걸 마치 손바닥 들여다보듯 아는 것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날마다 그들의 삶을 시시콜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류계층이 허상이나마 상류 계급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부자들의 이해는 지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가난한 이들에겐 부자들의 삶이 동경의 대상이지만 그 역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짝꿍이었던 부잣집 아들로부터 ‘돈이 왜 없느냐’는 반문을 받고 말문을 잃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런 상황은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흔히 인용되는 마리 앙투.. 2020. 1. 6.
‘전주완판본체’와 옛 글자 닮은 공개 글꼴들 전주시가 공개한 ‘전주완판본체’, 그리고 옛글자 공개글꼴 옛 글자를 닮은 공개글꼴들 꽤 열심히 신문을 읽는 편인데도 놓쳤던가 보았다. 어저께 우연히 옛 글자를 닮은 공개글꼴이 있는가 싶어 검색했더니 지난해 7월에 전북 전주시가 ‘전주완판본체’를 공개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름 그대로 이 글꼴은 ‘완판본(完板本)’ 방각본 소설에서 집자(集字)해 만든 것이다. 17세기 이후 상업적 동기로 서울과 전주 등에서 출간된 목판본, 즉 방각본(坊刻本) 소설에 쓰인 글자는 사람 손으로 새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형미가 남다르다. 비록 현대물에 쓰이는 글꼴의 세련미와는 비길 수 없지만 투박한 모습은 사람들의 의고적(擬古的) 취향을 자극하는 것이다. 필사로 쓰인 고문서에서도 느낌은 비슷하다. 글꼴 디자인을 통해 이 .. 2020. 1. 5.
그 강 건너 불빛 -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1960년대 여성 듀엣 은방울 자매의 히트곡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 공중파의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가 있다. 주로 흘러간 옛 노래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대별·주제별로 옛 노래를 들려준다. 저 시기에, 저런 주제의 유행가가 저렇게 많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공연히 그 노래가 떠올려주는 옛날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에 담긴 ‘세월’, ‘시간의 자취’들 유행가에 무슨 심오한 철학이, 삶과 사랑에 대한 대단한 성찰이 담겼을 리는 없다. 그것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가장 대중적인 주제의 삶과 사랑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노래할 뿐이다. 그런데도 유행가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그 노래에 담긴 세월과 시간의 자취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단순히 리듬과 멜로디로서가.. 2020. 1. 4.
함양 상림(上林)에서 최치원을 생각한다 겨울, 2008년 1월 겨울 여행을 다녀왔다. 쉰을 전후한 중년 사내 셋이 함께했다. 목적지는 경남 함양과 산청. 일행 중 한 친구의 고향이 함양 안의다. 그는 당연히 이 여행의 길라잡이 역을 맡았고, 가장 연하의 한 친구는 그 죄(?)로 운전을 맡았다. 나이 덕에 나는 조수석에서 느긋하게 연변 풍경을 즐기면서 필요하면 사진을 찍어댈 수 있었다. 중년 3인의 겨울 나들이 첫날은 용추계곡을, 이튿날엔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을 훑은 뒤, 정여창 고택을 거쳐 함양 읍내의 상림(上林)을 찾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곳이 화림동 계곡의 정자와 함양 상림이었다. 물론 산청의 덕천서원 등 남명 조식의 유적지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이후 나는 죽 대구에서 공부했는데 그 시기의 대구의 살인적 더위를.. 2020. 1. 2.
도찐개찐 : 오십보백보 ‘도찐개찐’ vs ‘오십보백보’ 어저께 인터넷 매체 에 오른 표제어 가운데서 ‘도찐개찐’이라는 낱말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가 거기다’, ‘오십보백보’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긴 하지만 그게 공식 문서에 쓰인 걸 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에서 ‘도찐개찐’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건 표제어에 오르지 않은 낱말이다. 의 ‘한글맞춤법 검사기’에 넣으니 대치어로 ‘오십보백보’를 들며 아래 도움말을 붙이고 있다. “여기서 쓴 ‘긴’은 ‘윷놀이에서, 자기 말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합니다. ‘진’과 ‘찐’은 사투리입니다. 결국 ‘도’나 ‘개’가 그게 그거라는 뜻으로 현재 주로 ‘오십보백보’를 씁니다. 맹자가 한 ‘오십보백보’보다는 순우리말이어서 좋긴 하지만, 아직 널리 쓰지 .. 2020. 1. 1.
[사진 한 장] 소녀, ‘희망’을 말하다 고3 여학생의 발언 ‘안전한 대한민국’ ‘엄지 뉴스’에 예쁜 여고생 사진 하나가 떴다. [기사 ☞ 바로 가기] 누군가가 찍은 ‘폰 사진’이다. 제목은 ‘고3 수험생, 보약 아닌 단식 택하다’. 칠판을 배경으로 여학생 하나가 서 있다. 춘추복인지 하얀 블라우스 위에 입은 조끼에 꽂힌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오는데, 소녀는 노란 바탕에 검고 굵직한 글씨가 쓰인 종이 한 장을 들고 있다. 종이에는 굵직한 글씨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쓰여 있다. 칠판에는 이 여학생이 썼음 직한 단정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고3 수험생, 보약 아닌 단식 택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원합니다. 2014. 9. 27 세월호 참사 165일째 ○○여고 박○○ (*실제 사진에는 실명이 드러나 있지만, 본인의 허락 없이 쓰므로 이를.. 2020. 1. 1.
[오늘] 혁명의 완수-쿠바혁명군, 아바나에 진입 [역사 공부 ‘오늘’] 1959년 1월 1일, ‘7월 26일 운동’ 주력부대 아바나에 진입 산타클라라 전투의 승리 이어 아바나 진입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라울 카스트로 등이 이끄는 쿠바의 청년 게릴라 전사들은 1958년 12월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독재자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하였다. 그리고 1959년 1월 1일, 마침내 ‘7월 26일 운동’ 세력의 주력 부대가 아바나에 진입하였다. 그것은 1953년 7월 26일 시작된 쿠바혁명의 완수였다. 당시 쿠바는 1933년 9월 ‘하사관들의 반란’으로 불리는 쿠데타 이후 최고 권력자가 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01~1973)가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1940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 2019. 12. 31.
얼음 낚시, 혹은 파한(破閑)의 시간 얼음 낚시 구경 누차 밝혔듯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마땅한 취미도 기호도 갖지 못한, 이른바 ‘잡기’에는 아예 손방이다. 당연히 ‘낚시’도 모른다. 선친께서는 물론, 돌아가신 형님도 낚시광이라 할 만한 분이었고, 중형도 그 방면으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렇다. 벗들 가운데도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자연 그들의 낚시 길에 어쩌다 동참할 기회도 있긴 했는데 결과는 ‘역시’였다. 나는 입질조차 없는 수면에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나절을 꼬박 지새우는 그들의 인내와 기다림에 경의를 표하는 편이다. 대신 30분을 견디지 못하고 주리를 틀고 마는 자신은 낚시와는 털끝만 한 인연도 없는 게 확실하다고 여긴다. 낚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다.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도구 중 하나가 .. 2019.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