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어, 함부로 생략해선 안 된다
술병에 붙이는 음주 경고문이 21년 만에 바뀌었는데 이 문구가 문법에 맞지 않은 비문(非文)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보건복지부를 이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의 문구는 주어와 서술의 호응이 되지 않는 비문이라는 것이다. [관련 글 : ‘주어의 생략’을 ‘주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술병에 붙은 ‘과음 경고 문구’를 읽어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흡연 및 과음 경고 문구 등 표시내용’은 고시로 지정된 의무사항이다. 소주든 맥주든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모든 주류용기에는 지정된 경고 문구를 표시해야 한다.
이번에 개정된 고시의 경고 문구는 세 가진데 그 중 ‘임신 중 음주’의 위험성을 경고한 문구가 잘못 쓰였다. 해당 문구는 문장 안에 세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과음이 ‘암 발생의 원인’이라는 것,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과 유산(을 유발한다는 것)’,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올바른 문장이 되려면 주어와 서술어가 짝이 맞아야 하는데 이를 ‘주술호응’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흔히 쓰는 비문으로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형이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가 있다. 이 문장에는 주어 ‘동기는’에 어울리는(호응하는) 서술어가 없다. ‘읽게 되었다’의 주어는 생략된 ‘나’이지 ‘동기는’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바르게 고치려면 주어 ‘동기는’에 호응하는 서술어를 써야 한다. 대체로 주어 ‘~는’ 서술어 ‘~이다’와 어울린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형이 추천해서였다(이다).”로 써야 바른 문장이 된다.
문제의 문장은 세 가지 정보가 담겼다. 셋 다 주어는 ‘음주는’이다. 그러나 두 번째 정보는 서술어를 생략해서 세 번째 문장과 서술어를 공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럴 경우, 이 문장의 뜻은 본래의 뜻과 반대가 되어 버린다.
(1)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이다.
(2)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을 저해한다.)→(을 유발한다.)
(3)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한다.
본 문장의 의미는 ‘임신 중 음주가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을 유발한다.’인데 세 번째 정보의 서술어를 취할 경우 ‘저해한다’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생략해선 안 되는 서술어를 생략하여 비문이 된 것이다.
우리말에선 서술어를 공유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동질적인 의미의 낱말에 한해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꼼짝없이 비문이 될 수밖에 없다.
(1) 동생은 수학과 영어를 좋아한다.(○)
(2) 동생은 축구는 물론이고 노래도 잘 부른다.(×)→ 동생은 축구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
(3) 이 배는 사람이나 짐을 싣고 다닌다.(×)→ 이 배는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다닌다.(○)
정부 부처에서 고시한 내용이 어법에 어긋나는 걸 보는 기분은 좀 거시기하다. 그러나 비문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이들은 좀 많은가.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비문을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 대통령의 비문]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쓴 글이 비문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그의 말은 ‘번역기’가 필요할 정도니 말이다. 국어교육, 그중 쓰기와 말하기 교육이 부실해서일까. 대체로 비문은 한 문장에 여러 정보를 담으려다 보니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을 정보별로 짧게 나누어 쓰는 게 비문의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2016.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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