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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을 ‘저해한다’?

by 낮달2018 2020. 9. 15.

서술어함부로 생략해선 안 된다

 

▲ 모든 주류용기에는 지정된 경고 문구(과음 경고 문구 등)를 표시해야 한다 .

술병에 붙이는 음주 경고문이 21년 만에 바뀌었는데 이 문구가 문법에 맞지 않은 비문(非文)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보건복지부를 이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문제의 문구는 주어와 서술의 호응이 되지 않는 비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술병에 붙은 ‘과음 경고 문구’를 읽어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흡연 및 과음 경고 문구 등 표시내용’은 고시로 지정된 의무사항이다. 소주든 맥주든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모든 주류용기에는 지정된 경고 문구를 표시해야 한다.

 

이번에 개정된 고시의 경고 문구는 세 가진데 그 중 ‘임신 중 음주’의 위험성을 경고한 문구가 잘못 쓰였다. 해당 문구는 문장 안에 세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과음이 ‘암 발생의 원인’이라는 것,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과 유산(을 유발한다는 것)’,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올바른 문장이 되려면 주어와 서술어가 짝이 맞아야 하는데 이를 ‘주술호응’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흔히 쓰는 비문으로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형이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가 있다. 이 문장에는 주어 ‘동기는’에 어울리는(호응하는) 서술어가 없다. ‘읽게 되었다’의 주어는 생략된 ‘나’이지 ‘동기는’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바르게 고치려면 주어 ‘동기는’에 호응하는 서술어를 써야 한다. 대체로 주어 ‘~는’ 서술어 ‘~이다’와 어울린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형이 추천해서였다(이다).”로 써야 바른 문장이 된다.

 

문제의 문장은 세 가지 정보가 담겼다. 셋 다 주어는 ‘음주는’이다. 그러나 두 번째 정보는 서술어를 생략해서 세 번째 문장과 서술어를 공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럴 경우, 이 문장의 뜻은 본래의 뜻과 반대가 되어 버린다.

 

(1)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이다.

(2)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을 저해한다.)→(을 유발한다.)

(3)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한다.

 

본 문장의 의미는 ‘임신 중 음주가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을 유발한다.’인데 세 번째 정보의 서술어를 취할 경우 ‘저해한다’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생략해선 안 되는 서술어를 생략하여 비문이 된 것이다.

 

우리말에선 서술어를 공유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동질적인 의미의 낱말에 한해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꼼짝없이 비문이 될 수밖에 없다.

 

(1) 동생은 수학과 영어를 좋아한다.(○)

(2) 동생은 축구는 물론이고 노래도 잘 부른다.(×)→ 동생은 축구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른다.(○)

(3) 이 배는 사람이나 짐을 싣고 다닌다.(×)→ 이 배는 사람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다닌다.(○)

 

정부 부처에서 고시한 내용이 어법에 어긋나는 걸 보는 기분은 좀 거시기하다. 그러나 비문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이들은 좀 많은가.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비문을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 대통령의 비문]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쓴 글이 비문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그의 말은 ‘번역기’가 필요할 정도니 말이다. 국어교육, 그중 쓰기와 말하기 교육이 부실해서일까. 대체로 비문은 한 문장에 여러 정보를 담으려다 보니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문장을 정보별로 짧게 나누어 쓰는 게 비문의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다.

 

 

2016.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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