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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더는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by 낮달2018 202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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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자, ‘가정부’ 아닌 ‘가정관리사’로

▲ ILO 가사노동자 협약 국내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가정관리사들(6.18.) ⓒ 협회 누리집

“가사노동자를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서울방송(SBS)>에서 방영할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의 제목을 바꾸라고 요구한 주체는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노동자회·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의 여성단체다. ‘가정부’라는 이름이 가사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직업을 비하’한다는 이유에서다.

 

어쩐지 낯설어 뵈지 않는다 싶더니 이 ‘가사서비스 노동자’와 관련한 제목 논란은 2011년도에 <한국방송>(KBS)에서도 있었다. 당시 한국방송은 ‘식모들’이란 제목의 드라마를 방송하려다 여성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로맨스 타운’으로 제목을 바꿨었다.

 

가정-부(家政婦)

「명사」

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

 · 가정부를 두다.

· 그가 거실에 앉아 일을 보는 동안 가정부는 음식을 차려 놓고 그가 식탁 앞에 앉기를 기다렸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들 여성단체는 <SBS>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정부는 가사서비스 노동자들의 직업을 비하하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용어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이미 2011년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국제적 추세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는 가사노동자의 노동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2011년 국제노동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한 바 있다.

 

식모 → 가정부 → 파출부 → 가사도우미 → 가정관리사

 

올해 6월 16일에는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기념하기도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가사노동자들이 노동법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전문성을 인정해 가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이 기자회견에 주체로 참여한 전국가정관리사협회(http://www.homeok.org/homeok/)는 ‘돌봄 노동’의 하나인 가사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30만 가사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이다. 한때 ‘가사도우미’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가정관리사’라는 전문 직업용어를 쓰고 있다.

 

5, 60년대만 해도 이들 가사노동자는 ‘식모(食母)’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표준국어대사전>)여서 ‘밥식(食)’ 자를 썼던 걸까. 이름은 ‘어미’로 불리었지만,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도회로 간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처녀들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10대 중반에 도회지 부잣집으로 ‘식모살이’를 떠난 누이들은 시골에 얼마나 많았던가. 이들은 근로계약서는 물론이고, 정해진 임금도 없이 시집갈 때까지 무한노동으로 한 집안을 건사해야 했다. 주인은 혼인 적령기에 이들을 시집보내 주는 걸로 수년간 노동에 대한 임금을 갈음하기도 했다.

▲ 조선작의 단편을 영화화한 <영자의 전성시대>의 한 장면. 영자의 첫 직업이 가정부였다.

1970년대 조선작의 단편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의 여주인공 영자의 첫 직업이 바로 식모였다. 주인과 그 아들에게 번갈아 몸을 빼앗기며 살다 쫓겨나 여직공을 거쳐 버스 안내원(차장)이 되었다가 팔 하나를 잃고 창녀가 된 영자. 원인 모를 화재로 불에 타 죽게 되는 영자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이 소설은 1970년대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쓰라린 기록이다.

 

영자, 70년대 하층민의 쓰라린 삶

 

이들이 ‘식모’에서 ‘가정부’라는 다소 순화된 이름으로 불리게 된 때는 70년대 말이나 80년대 초쯤이 아니었나 싶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감초로 등장하게 되면서 이들 가정부는 대체로 처녀들보다는 ‘○○댁’이라 불리는 기혼여성들이었던 것 같다.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젊은 여성들은 공단의 일터로 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엔간한 여유만 있으면 한 사람씩 가정부를 두던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도처에 일자리가 생기면서 별로 대접도 받지 못하는 가정부 일을 할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게고, 적당히 ‘먹고 입히’는 걸로 임금을 대신하는 시대는 이미 끝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쓰는 데 만만찮은 비용이 들게 되면서 그래도 일손이 필요한 가정을 위해서 생긴 게 ‘파출부’였다. 가정집에 붙박이로 들어가 사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만 근무하는 형태여서 마땅히 일자리를 찾지 못한 고학력 여성들이 파출부 일에 종사하는 사례도 있었다.

 

90년대에 한 대기업에서 일하던 친구가 그랬었다. 그 시절 ‘부장님 사모님’들은 아이들 과외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로 나가야 했단다. 본격적으로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오르던 시기였으니 자녀들에게 양질의 사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중년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나서기도 했다는 얘기다.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사노동자들, 특히 이른바 ‘회장님’ 집에서 주방을 맡은 이는 더는 ‘○○댁’이거나 ‘아줌마’가 아니다. 이들은 우아하게 ‘미세스 ○’로 불리는 요리나 가정관리의 전문가들이다. 주인 사모님으로부터 이것저것 요리법을 배워나가던 저 왕년의 시골뜨기 처녀는 옛날이야기가 된 것이다.

 

‘가정부’나 ‘파출부’ 대신 ‘가사도우미’라고 불리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던가. 어떤 직업의 이름이 바뀌는 것은 단순히 ‘어감이 좋고 나쁨’에 있지 않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한 사회의 정치 경제적 변동과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입’ 하나 더는 것만으로 집안에 큰 도움이 되었던 5, 60년대에는 초등학교만 마친 시골 큰아기들이 도회의 부잣집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효도가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열악한 대우와 비인간적 차별을 감수해야 했고, 부자들은 ‘밥과 옷’을 제공하는 것만으로 이들의 무한노동을 요구할 수 있었다.

 

‘노동’과 ‘인권’을 깨친 노동자로 선 가사노동자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이를 가사노동 고용관계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적 계약관계가 정착하면서 이들을 고용하는 비용도 커졌고 이들에 대한 처우도 그런 사회적 변동을 따라가야 했던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가사노동자는 예전처럼 가난한 저학력의 시골 처녀나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모든 걸 감내하는 기혼여성이 아니었다. 임금이 필요한 것은 다를 바 없지만, 예전처럼 열악하고 비인간적 처우를 견딜 사람은 없다. 이들은 자신의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를 알고 있으며 임금의 크기보다 인간적 처우가 더 중요하다고 믿을 만큼 인권 의식도 갖춘 ‘노동자’들이 된 것이다.

 

‘식모’에서 ‘가정부’로의 변화는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철학의 변화라기보다 정서적 의미를 고려한 것이었던 듯하다. ‘가정부’의 ‘가정’은 대학의 ‘가정과’와 마찬가지로 ‘뜰 정(庭)’자를 쓰지 않고 ‘정사 정(政)’자를 쓴다. ‘식모’가 노골적으로 ‘밥’을 이름에 넣은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가정을 다스리다’의 뜻을 담았다.

▲ 가정관리사협회에 따르면 가사노동자는 모두 30만이다. ⓒ 가정관리사협회 누리집 갈무리

그러나 대학의 ‘가정과’가 결국 ‘가정관리학과’라 바뀐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아마 전국의 가사노동자들이 모여 ‘전국가정관리사협회’를 조직한 것은 그러한 변화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서 주인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기던 ‘식모’에서 ‘가정관리사’로의 명칭 변화는 이 나라 자본주의 이행 과정의 일부라는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가정부’냐, ‘가정관리사’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지금 이 시대에 ‘식모’라는 명칭을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새삼스럽게 ‘가정부’ 운운하는 것은 이 시대의 변화와 그 정신에 반하는 일이고 사회적 관계를 바라보는 철학의 문제라는 얘기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여성단체의 요구에 대한 방송사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SBS>는 “‘수상한 가정부’는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원작 계약의 조항과 극적 효과를 고려했을 때 제목을 변경하기 어렵다. 다만, 드라마 내용에서 가정부란 대사를 최대한 배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가정부’란 명칭이 제목에 쓰이는 것이 드라마의 ‘극적 효과’에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변화를 도외시하고 ‘원작’과 ‘드라마’를 강조하는 것은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어떤 어휘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그 정신을 확인하고 추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는 그들을 ‘가정부’라 부르지 말라.

 

 

2013. 9. 7. 낮달

 


▲ 지난해에 가사노동자들은 다시 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2019.6.12.)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협약’(이하 가사노동협약)를 채택한 것은 2011년 6월 16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100차 총회에서다. 이후 우리나라 가사노동자들은 해마다 이 협약을 비준하기를 촉구해 왔으나, 10년째 오리무중이다.

 

202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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