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

‘분단문학’의 거목, 작가 이호철 떠나다

by 낮달2018 2020. 9. 18.

이호철(1932~2016. 9. 18.))

 

▲ 인도 다름살라에서 소설가 이호철. 그는 분단문학의 거목이었다.  ⓒ 이호철 누리집

소설가 이호철(李浩哲,1932~2016)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던 작가는 지난 18일 오후 7시 32분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단신으로 월남했던 19살 청년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남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단신 월남 19살 청년에서 분단문학의 거목으로

 

일주일이면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고 삼팔선을 넘었던 작가는 결국 한반도 분단과 이산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고인은 1950년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참전한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풀려난 뒤 이남에서 작가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해 왔다.

 

1955년 단편 ‘탈향(脫鄕)’이 <문학예술>에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초기 작품들은 사회 저변의 소시민적 삶의 생태를 주로 그렸지만 1961년에 단편 ‘판문점(板門店)’에서 분단 상황과 그 사회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1970년대 전반기에 발표한 연작소설 <이단자(異端者)>는 조국의 분단 상황이 빚은 비리들을 다루었고, 1990년의 연작 단편 <남녘 사람 북녘 사람>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과 분단에 대한 문제의식과 반성적 사고를 담았다.

 

연작 단편집 <남녘 사람 북녘 사람>은 일본과 중국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미국, 폴란드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의 타계에 언론들이 ‘분단문학의 큰 별’이 졌다고 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것은 등단 이후 60여 년 동안 분단의 비극과 전쟁, 이산가족 문제를 파헤쳐온 이력을 기려서다.

 

▲ 미국과 일본, 프랑스, 스페인에서 간행된 연작 단편집  <남녘 사람 북녘 사람>(왼쪽부터 )
▲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는 1966년 2월부터 12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집에선 이 신문을 구독했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와 한글 이름이 같다. 물론 한자는 달라서 그가 ‘넓을 호(浩)’자인 반면 나는 ‘호경 호(鎬)’자다. 내가 그의 소설을 처음 만난 것은 11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우리 집에서 구독하고 있던 <동아일보>에 그의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연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문을 나누어 읽던 부모님께서 소설의 주인공들 이야기를 하시던 때의 기억이 아련하다. 아마 양친께서도 작가의 이름이 막내와 같다는 사실을 흥미로워하셨을 것이다. 매일 신문에서 연재란을 들여다보면서도 내가 그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연재소설이란 형식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였을 듯싶다.

 

내가 <서울은 만원이다>를 읽은 것은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면서였던 듯한데, 그 내용에 대한 기억은 거짓말처럼 없다. 아마 나는 <서울은 만원이다>를 신문 연재소설인데다 그 제목에서 드러나는 통속성으로 예단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서울은 만원이다>은 1966년부터 2월부터 11월까지 연재되었는데 당시 폭발적인 인기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도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이합집산하는 마이너리티들의 삶을 다룬 이 풍속소설을 폄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물론 훨씬 뒷날이다.

 

▲  이호철의 소설 작품들. 그의 작품은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 '닳아지는 살들'

 

이호철을 새롭게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다. 나는 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작 ‘닳아지는 살들’(1963, <사상계>)이 우리 단편 소설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를 기준으로 평가하더라도 이 연작들(‘무너 앉는 소리’, ‘마지막 향연’)은 ‘무진기행’(김승옥), ‘삼포 가는 길’(황석영), ‘중국인 거리’(오정희), ‘강’(서정인) 등의 작품과 함께 그 목록의 가장 윗부분에 놓여야 하는.

 

“식모는 응접실 문을 열었다. 영희는 정애의 한 손을 잡고 있었다. 성식은 다시 신문을 펼쳐 들고 있었다. 그러나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니고, 불빛에 안경알만 번쩍였다. 늙은 주인은 그냥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그들은 누구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늙은 주인은 맏딸을, 정애는 아직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맏시누이를, 영희는 언니를, 성식은 누님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누구도 분명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의식은 없었다. 도대체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저 모두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것이라도 없으면 한 집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살 명분조차 없게 되는 셈이었다. 이제는 이런 일에 적당히 익숙해진 터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일에 모두 넌덜머리를 낼 만도 하였다. 결국 이 기다림의 향연은 늙은 주인이 역시 아직은 이 집안의 주인이라는 것을 암시해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맏딸이 돌아온다고 고집을 부리면 맞이할 준비들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 중편소설 ‘닳아지는 살들’ 중에서

 

이 연작을 가르치면서 작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빙그레 웃곤 했다. 눈앞의 교사와 작가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도 아이들에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숨 막히는 권태와 무기력에 숨겨진 비극을 전하기 위해 꽤 공을 들이곤 했지만, 아이들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닳아지는 살들’은 날마다 월남할 때 두고 온 맏딸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실향민의 아픔과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기다림과 무기력 속에 침몰해 간다. 이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어디선가 ‘꽝당꽝당’ 울리는 쇳소리뿐이다.

 

이들은 모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백치 아버지를 따라 맏딸을 기다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금속성 소음을 들으며 가족들은 끝없는 기다림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월 속에서 가족의 유대는 마멸되어 간다. 그것이 바로 ‘닳아지는 살’이다.

 

전후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족의 권태와 비극을 통해서 이 작품은 실향민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 또한 분단의 비극에서 비롯됨을 그려내고 있다. 작가가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이 작품은 분단의 비극이 한 가정에 가져다준 정신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다.

 

70년대 민주화운동 앞장

 

작가는 1970년대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하면서 문인 간첩단 사건(1974)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투옥되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1985년에는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를 맡았고, 87년 6월항쟁까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냈다.

 

▲ 1974년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법정에 선 작가(맨 오른쪽). 이 사건은 2011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국소설가협회 공동대표, 한국문인협회 고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낸 작가는 동인문학상 외에도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독일어로 번역된 소설 <남녘 사람 북녘 사람>으로 독일 예나대학이 주는 국제 학술·예술 교류 공로상인 ‘프리드리히 실러’ 메달을 받기도 했다.

 

작가가 팔순을 맞은 2011년에는 고인과 가까운 문인, 예술인 등이 주축이 되어 사단법인 ‘이호철 문학재단’을 발족했고 동료 문인과 지인 제자들의 글을 모은 기념문집 <큰 산과 나>를 펴내기도 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작가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국립 5·18민주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19살에 고향을 떠나 돌아가지 못한 고향으로 이제 작가는 돌아갈 수 있을까. 분단 조국의 차가운 철조망을 넘어 그가 자유롭게 조국의 하늘을 넘나들며 영면하시길.

 

 

2016. 9. 19. 낮달

 

* 4년 전에만 해도 이용했던 '이호철 누리집'을 찾을 수 없다. 그의 사후에 누리집을 문을 닫은 것일까….

댓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