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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간다는 온돌 ‘아자방’은 [아:짜방]이다

by 낮달2018 20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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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 ‘아자방’의 발음은 [아:짜방]

▲ 경남 하동 지리산 칠불사에 있는 선방 '아자방'은 한번 불을 지피면 100일을 간다고 <삼국유사>가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일 밤 케이블의 보도전문 채널 뉴스에서 경남 하동 지리산 칠불사에 있다는 ‘아자방(亞字房)’ 관련 뉴스를 시청했다. 기자가 [아자방]이라고 읽어서 나는 무언가 하고 귀를 쫑긋했는데, 화면에 잠깐 비친 그 선방의 편액 ‘亞字房’을 보고서야 그게 [아:짜방]의 오독임을 알았다.

 

천 년 전, 신라 효공왕 때 지었다는 이 선방은 방안 네 귀퉁이를 높게 만들어 그 모양이 한자 ‘버금 아(亞)’를 닮아 ‘아자방’으로 불린다. 한 번 불을 지피면 온기가 100일이나 이어졌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하는데 최근 발굴·복원 작업으로 그 비결이 밝혀졌다는 기사다.

 

아자방이 온기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가마 형태의 대형 아궁이에 이중 구들을 사용해 불이 서서히 오래 타도록 하고, 한 번에 많은 장작을 쌓아 불을 지핀 데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6·25전쟁 무렵에 소실됐다가 복원된 아자방은 축조 때만큼은 아니지만, 실험 결과 25일간 온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 칠불사 '아자방'을 기자는 예사소리로 읽었지만, 된소리인 [아ː짜방 ]으로 읽어야 한다.

현재 경남 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된 아자방은 이번 발굴·복원 작업에 따라 국가 문화재로 승격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칠불사에서는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아자방 온돌문화축제’가 나흘 동안 열렸다.

 

‘아자방’에 쓰인 ‘자(字)’는 명사로 ①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의 부호. = 글자, ②(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글자를 세는 단위, ③ ‘날짜’를 나타내는 말 등의 뜻을 나타낸다. ‘하늘 천 자’라고 할 때는 ①의 뜻, ‘이름 석 자’는 ②, ‘오늘 자 신문’은 ③의 뜻을 지닌 예다.

 

이 ‘자(字)’는 독립적으로 쓰일 때는 예사소리로 발음되지만, 낱말에서나 문장에서 구(句)로 쓰일 때는 발음이 좀 달라진다. 구(句)의 발음에 대해서도 표준 발음법에서 따로 규정한 바가 없으니 발음의 원칙이라 할 만한 기준은 없는 셈이다.

 

위 ①도 ‘하늘 천 자’는 [짜]로 나지만 ‘무슨 자’라고 할 때는 예사소리로 난다. ②도 마찬가지. ‘이름 석 자’는 [짜]로 나지만, ‘글자 한 자 두 자’에서는 예사소리다. ③에서는 대체로 [짜]로 나는 것으로 보인다.

단어도 일정한 기준으로 나누기 어렵다. 어떤 이의, ‘정자(正字)·본자(本字)·고자(古字)·약자(略字)’의 발음 관련 질문에 대한 국립국어원은 답변은 좀 두루뭉술하다.

 

‘표준 발음법 제23항’에서는 받침 ‘ㄱ(ㄲ, ㅋ, ㄱㅅ, ㄹㄱ), ㄷ(ㅅ, ㅆ, ㅈ, ㅊ, ㅌ), ㅂ(ㅍ, ㄹㅂ, ㄹㅍ, ㅂㅅ’ 뒤에 연결되는 ‘ㄱ, ㄷ, ㅂ, ㅅ, ㅈ’은 된소리로 발음한다고 제시하고 있으며, 그 용례로 ‘국밥[국빱], 깎다[깍따], 꽃다발[꼳따발], 옆집[엽찝]’ 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규정으로 볼 때 ‘정자, 본자, 고자’는 [정자/본자/고자], ‘약자’는 [약짜]로 발음하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정자/고자/약짜]로 발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된소리되기(경음화)’는 불완전한 규칙으로 예외적인 발음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된소리되기’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원칙)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 창호의 종류 가운데 하나인 아자창(왼쪽)과 만자창(오른쪽)

같은 글자지만 뜻이 다를 때도 발음이 달리 난다.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한자로 된 숙어나 성구(成句) 또는 문장”을 뜻하는 ‘문자(文字)’는 예사소리지만, “인간의 언어를 적는 데 사용하는 시각적인 기호 체계”인 ‘문자(文字)’는 [문짜]로 읽는 것이다.

 

실제 낱말에서 이 ‘자’의 쓰임을 보면 두 번째 이하 음절에 오면 [자]로 발음할 때도 있고 된소리인 [짜]로 발음될 때도 있다. ‘금자탑(金字塔)’은 예사소리로 발음되지만, ‘기역자·십자로·일자’ 등은 모두 [짜]로 난다. ‘사주팔자’의 ‘팔자(八字)’도, 판검사(判檢事)·변호사(辯護士)·의사(醫師) 등을 통틀어 말할 때 쓰는 ‘사자’도 [짜]로 발음한다.

 

“문살을 ‘亞’자 모양으로 짠 창”인 ‘아자창(亞字窓)’, “ 창살이 ‘卍’자 모양으로 된 창”을 이르는 ‘만자창(卍字窓)’도 [짜]로 읽는다. 당연히 지리산 칠불사의 ‘아자방’도 [아ː짜방]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 발음법에 일정한 기준이 없으니 ‘아자방’을 예사소리로 읽은 기자를 나무랄 수만도 없다.

 

그러니 발음을 제대로 하려면 많이 보고 많이 들어서 발음 사례를 폭넓게 익히는 수밖에는 없다. 이런 문제들이 ‘국어가 어렵다’라고 하는 항변에 내가 마땅한 답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라면 이유다.

 

 

2020. 11.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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