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의 작가 이상운 떠나다

by 낮달2018 2020. 11. 8.
728x90
SMALL

소설가 이상운 1959 ~2015. 11. 8.

▲ 작가 고 이상운(1959~2015)

오늘 아침 신문 ‘궂긴 소식’란에서 작가 이상운의 부음을 읽었다. 8일 새벽,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능일이 며칠 남지 않은 3학년 교실에서 그 부음을 읽고 나는 잠깐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아, 나는 자습하는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던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좋이 10년이 넘었다. 매체에서 작가라고 소개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나지만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그냥 작간가 보다, 하고 만다. 이상운도 그런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 대신 그가 쓴 간병일기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를 읽었다.

 

그는 가까운 포항 출신이다. 1959년생이니 우리보다 몇 년 아래다. 그는 1997년에 장편소설 <픽션 클럽>으로 대산 창작기금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6년 장편 <내 머릿속의 개들>로 ‘제1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그의 이력을 나는 정작 그의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으며 그의 저작이라곤 앞의 책을 읽은 게 다다. 그런데도 그 간병기를 읽고 묘한 연대 의식 같은 걸 느꼈다. 그는 삼 년 반 동안 고령의 병든 아버지를 돌보았다. 간병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온갖 돌발적인 상황을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이미 신체의 기능들이 대부분 그 본래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 고령의 병든 부친과 종일, 한 공간에서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 삼 년 반은 그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함께 ‘삶과 노화에 대한 배움과 깨달음’을 선사해 주었다고 했다.

 

“삶의 긴 여로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아버지를 통해 드러난 죽음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생생하고 직접적인 고통의 현장이었다. 어떤 웅장한 사상으로도, 어떤 창의적인 관념으로도, 어떤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도 그 슬프고 추한 몰락의 모습은 가려지지 않았다.

나는 죽어가는 한 인간과 밀착해 보살피고 관찰하고 성찰하면서 삶과 노화와 질병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많은 객관적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었다. 이것은 도통 말이 없는 분이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나는 그의 기록을 따라가면서 2002년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었다. 간병 중에 맞닥뜨린, 예기치 않았던 긴급 상황 앞에서 당황하면서도 그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중증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보여주는 돌발 상황마다 아내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도망가기 바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 2015 전숙희 문학상 수상작

요즘에야 나는 가끔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잠시라도 돌봐드릴 수 있었다면 어떨까 하고 지난 시간을 뉘우치곤 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데도 스스로 아버지의 병구완을 떠맡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훨씬 더 멀고 큰 여로에 오른 아버지를’ ‘슬프지만 기뻐하며 배웅해’ 드렸다.

 

나는 때때로 병구완하는 아들이 아닌 병구완을 받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내게 병구완할 어버이가 계시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시나브로 노화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어서였을까.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그에게 강한 연대감을 느꼈던 것은 동년배인데다가 간병기를 통해 드러난 그의 생각과 태도가 우리 세대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그가 보여준 희생과 헌신의 태도를 통하여 나는 내가 하지 못했던 병구완의 회한을 대리 보상받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상운 작가가 전심전력을 다해 기록한 간병기, ‘현실감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기저귀를 묵묵히 갈며, 언젠가 내게도 무심히 닥칠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며 보낸 3년 반의 기록’인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는 올해 제5회 전숙희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8일 새벽에 일어난 교통사고는 이 작가의 삶과 문학을 고스란히 앗아갔다. 향년 56세. 내가 혼자서 마음속에서 올리는 분향은 같은 지역 출신의 동년배로서, 어버이를 잃은 아들로서, 자식의 배웅을 받아 떠나야 할 아비로서의 추모고 애도이다. 작가 이상운의 명복을 빈다.

 

 

2015. 11. 9. 낮달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