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①] 경북 군위군 고로면 아미산(峨嵋山)
지난 7일은 입동(立冬)이었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미루었던 나들이를 이날 나선 것은 전혀 비가 올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날이 맑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간다 간다 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아미산을 드디어 찾았다.
경북 군위읍에 사는 벗의 경차를 타고 고로면 석산리로 향했다. 군위에서만 30여 년째 살고 있는 벗은 익숙하게 꼬불꼬불한 지방도로를 여유롭게 달렸다. 도중에 인각사(麟角寺)와 일연공원을 들렀다가 군위댐(화북댐)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군위(軍威)는 경상북도 한가운데쯤에 있는 조그만 고장이다. 남으론 팔공산과 대구광역시에 닿고, 동으로는 청송군·영천시와, 서로는 구미시와 칠곡군, 북으로는 의성군과 접경하고 있다. 군 이름인 군위는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해 설명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쓰던 지명이다.
경북의 중간쯤에 있지만, 군세는 보잘 것 없다. 인구는 2017년 9월 말 기준으로 외국인을 포함해 2만4735 명. 울릉군과 영양군에 이어 끝에서 3위다. 마땅히 다른 지역에 내놓을 만한 산업도 없다. 농공단지가 2개소 있으나 산업구조는 3차 산업이 과반(52.5%)이다. 재정자립도는 5.6%.
김수환 추기경 생가 동네 주변에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공사가 한창이고, 이 밖에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여러 군데다. 국비나 도비를 받아서 하는 사업일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드는 의문은 여럿이다.
“이 조그만 지자체에 돈은 어디서 나와 곳곳이 공사인가?”
“모르지요. 군세는 작은데도 어디서 나오는지 복지사업도 줄을 잇던데요….”
주민들은 대구의 통합 신공항 유치를 두고 갈등 중이다. 케이투(K2)로 불리는 대구 군사공항과 대구 민간공항이 경북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지금 의성과 군위가 신공항 유치로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들 사이에 찬반이 갈리면서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찬성하는 사람은 누구야?”
“군수와 군의원, 땅 가진 사람들이지요. 공무원들은 군수 눈치 봐서 찬성하고…….”
통합 신공항 이전 후보지로 두 군데가 선정되어 있다. 하나는 군위군 우보면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군위군 소보면과 의성군 비안면 지역이다. 정작 대도시 대구가 내치고자 한 공항을 두 시골 지역에서 서로 유치하겠다고 나섰는데 주민들은 찬반으로 맞서고 있다.
‘~는기오’와 ‘~구마’를 쓰는 남부 방언권
의성 아래에 있지만 군위의 고장 말은 대구, 칠곡과 함께 경북 남부 방언으로 가를 수 있다. 의성부터 안동 등 북부지방은 의문형 어미를 ‘~니껴’로 쓰지만 군위는 칠곡이나 대구처럼 ‘~는기오’를 쓰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평서형 어미로도 북부지방의 ‘~니더’ 대신에 ‘~구마’를 쓰는 곳이 군위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고향>의 주인공이 쓰는 사투리,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는 대구 근교의 사투리로 추정되는데 여기서도 군위와 같은 고장 말이 쓰인 것이다.
농기구 ‘삽’을 ‘수금포’라고 말하면 의성 사람은 못 알아듣지만 군위 사람은 알아듣는다. 이 역시 군위 지역이 경북 남부 방언 권에 속한다는 표지다. ‘수굼포’는 네덜란드어로 ‘삽’을 뜻하는 ‘스콥(schop)’에서 차용한 일본어 ‘스콤푸’에서 왔다.
그래서인가, 칠곡이 고향인 나는 군위에 대해서는 의성이나 안동보다 훨씬 가까운 고장이라는 느낌이 있다. 낯선 고장이라도 말투가 비슷한 것은 뜻밖의 친화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미산 입구의 텅 빈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1시 반께. 구름다리 너머 곧추선 벼랑 위의 바위 봉우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해발 737.3m의 이 산에 왜 ‘아미산’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중국의 어메이산(峨嵋山)은 중국 도교와 불교의 성지다. 여기 말고도 강원도 홍천과 충청도 보령에도 아미산이 있다고 한다.
중국 삼대 영산(靈山)이자, 중국 사대 불교 명산으로 보현보살의 성지인 어메이산은 유네스코 세계 복합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아미’라 하면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蛾眉)’를 떠올리기 쉽지만, 중국과 한국의 산 이름에서 ‘아미’는 똑같이 ‘산 높을 아, 산 이름 미’를 쓴다.
중국의 아미산도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산이라 하는데, 기이한 암봉의 품격을 보고 이 산 역시 ‘아미산’이라 이름했던가. 수려한 풍경을 즐기기 위해선 땀깨나 흘리는 걸 피할 수 없다. 산은 초입부터 급경사로 시작됐다. 땀을 흘리며 10여 분 올라가자 비로소 산등성이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바위 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여느 산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수려한 풍경을 연출한다. 산 아래에서 수직으로 서 있는 봉우리가 송곳 바위, 그보다 조금 나지막한 그다음 봉우리가 2봉, 그다음에 성큼 높아지는 봉우리가 제3봉, 앵기랑 바위다.
이 3봉은 동자승의 모습을 닮았다 해서 앵기랑 바위가 됐다. 이 바위는 한국전쟁 때 마을의 수호신 노릇을 했고 1970년대 월남으로 파병된 동네 청년들이 이 바위의 음덕으로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앵기랑 바위 아래서 산행을 멈추었다. 워낙 가팔라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실족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산 위에서 균형이 무너져 몸을 가누지 못할 때가 더러 있었던지라 나는 얌전하게 이쯤에서 하산하자고 말했다.
아미산 산행은 종주 코스, 원점회귀 코스 등 여러 갈래로 가능하다. 가장 짧은 원점회귀 코스만 해도 4km 남짓에 2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산행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이 산의 수려한 풍정을 만나러 왔으니 이쯤에서 하산해도 아쉬울 것은 없을 터였다.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닮은 아미산 바위 능선
바위로 이어진 능선, 이른바 바위 능선(암릉,巖陵) 가운데 최고는 설악산의 공룡능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미산의 그것을 ‘작은 공룡능선’이라고 표현하는 등산가들이 많은 것은 이 산의 바위 능선이 공룡능선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하다는 얘기겠다.
가파르게 올라 2봉과 앵기랑 바위 앞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이 산을 찾은 이들의 기록에 따르면 첫 출발은 아찔한 바위 봉우리 코스지만 뒤에는 흙이 많은 ‘육산(肉山)’을 타게 된다고 한다. 산행의 처음은 완만하다가 나중에 어려운 산길을 타야 하는 게 여느 산과는 다른 점이다.
땀이 차 겉옷을 벗고 바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객쩍은 이야기를 나누다 내려오면서 문득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풍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았더니 지금 단풍은 발아래 산과 들과 마을에 불타고 있는 것을.
언제 다시 아미산을 찾아 가장 짧은 코스라도 돌아볼 날이 있기는 할까. 우리는 의성 탑리(塔里)에 있는 친구에게 쪽지를 보내고 아미산을 떠났다. 산을 핑계 대고 벗을 찾는 것은 어쨌든 하루 일정을 꽉 채우는 괜찮은 일이었다.
2017. 11.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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