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빼빼로 데이’보다 ‘가래떡의 날’
<한겨레> 칼럼 ‘[유레카] 빼빼로 데이(정영무)’를 읽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건네준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과자 한두 개를 씹으며 우리 시대의 씁쓸한 풍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내일을 보낼 뻔했다. 천 년에 한 번 온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고 요란을 떨어대지만, 기실 내일은 열여섯 번째 맞는 ‘농업인의 날’이고 ‘지체장애인의 날’ 열한 돌이기 때문이다.
워낙 유행과 추세를 받아들이는 데는 정평이 난 사회이긴 하지만, 무슨 날에다 의미를 붙여서 이를 기념하는 날은 좀 유난스럽다. ‘밸런타인데이’가 그렇고 ‘화이트데이’가 그렇다. 정작 어른들은 그 의미도 제대로 새기지 못하는데 청소년들은 그걸 스스럼없이 자기 삶의 일부로, ‘관계’와 ‘우의’를 확인하는 장치로 받아들인다.
그런 젊은이들의 여유와 기지를 굳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날들이 기업 마케팅 전략과 만나면서 왜곡된 소비문화로 이어지는 게 문제다. 모두 기리는 날이니 나 혼자 그런 문화로부터 소외될 수 없다는 청소년들의 의식이 경쟁적 소비로 확산하기도 한다.
이 과자를 생산하는 회사는 아예 따로 ‘빼빼로 누리집’을 두고 그것이 ‘문화’라고 주장한다.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빼빼로 데이는 1994년 부산의 여중고생들이 ‘친구끼리 우정’을 전하며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라는 뜻으로 이 과자를 선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빼빼로 데이는 무슨 날 중에서도 ‘편의점 매출이 가장 높은 날’이라 하니 업체가 이날이 ‘문화’가 되었다고 주장할 만하긴 하다.
제16회 농업인의 날
농업인의 날은 1996년에 정부 지정 공식 기념일이 되었다. 하필 11월 11일을 택한 것은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자가 되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삶의 근거지, ‘흙’이 겹치는 날을 농업인의 날로 정한 것은 과자 모양을 본뜬 날보다야 훨씬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농업인의 날’보다는 빼빼로 데이로 더 잘 알려진 이 날은 예의 과자와 비슷한 일자 모양의 ‘가래떡’으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빼빼로 데이 대신 이날을 ‘가래떡 데이’로 지정하여 사내 행사를 시작한 것은 2003년 안철수연구소였다. 이후 이 행사는 농림부의 농업인의 날 행사의 일환이 되었다고 한다.
올 농업인의 날 행사는 농촌진흥청 대운동장에서 11월 11일(금)부터 13(일)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소비자와 함께하는 농촌 사랑 한마음 직거래 장터가 열리고 참여 소비자와 가족들을 위한 꼬마 메주 만들기, 전통 두부 만들기, 떡메치기, 꽃떡 만들기, 잡곡 타작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베풀어진다. 12일에는 “농업인의 날 특집 KBS 출발드림팀” 공개 방송도 현장에서 녹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빼빼로 데이에 대적하기에는 ‘가래떡’은 여전히 중과부적이다. 정작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주식으로 하루 세끼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농업과 농민들의 삶에 대해서 무심한 까닭이다. 이 나라의 식량주권을 고군분투 지키고 있는 농업은 스토리텔링을 내세운 과자 나부랭이 앞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이 나라 농업과 농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한미 FTA를 결사반대한다며 경북의 농민들이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이는 뉴스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초점이 되고 있는 아이에스디(ISD)에 가려서 농업 부문의 피해는 묻혀버린 상태다. 농업인의 날을 맞는 농민들의 수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11회 지체장애인의 날
‘지체장애인의 날’은 농업인의 날과는 달리 법정 기념일은 아니다. 2000년 지체장애인협회가 정한 날이기 때문이다.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들이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직립을 의미하는 숫자 1이 네 번이나 겹치는 11월 11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지체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80~90%를 차지한다고 한다. ‘세상을 향해 당당히 일어서자’라고 외치지만 세상은 여전히 힘들고 접근하기 어렵다. 보행이 어려운 지체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여러 가지 제도가 도입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체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도, 장애인을 위한 콜택시도 태부족이라 한다. 지하철역 수직 리프트 시설에서의 장애인 추락 참사로 시작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의 권리는 완전하지 못하다. 제도뿐 아니라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도 아쉽기만 하다.
오늘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입시의 중압에서 벗어난 수험생들은 내일 가벼이 거리로 나서 빼빼로 데이를 즐길 것이다. 내일 교사들의 자리에는 한두 통쯤의 빼빼로가 11월 11일을 넌지시 확인시켜 줄 것이다. 아이들에게 빼빼로가 아니라 농업인의 날을, 지체장애인의 날을 어떤 방식으로 알려주면 좋을지를 잠시 고심해 본다.
2011. 11.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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