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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68

[2022 텃밭 농사 ②] 제대로 돌보지 않아도 작물은 제힘으로 자란다 *PC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고구마는 멀칭 작업을 하지 않고 심었는데 가문데다가 제대로 돌보지 않아 다 죽게 생겼다는 얘긴 지난 글에서 이미 했다. 죽으면 하는 수 없다고 내버려 두었는데, 5월 19일에 가보니 어라,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린 놈이 적지 않았다. 아내가 친구에게서 얻어 온 배색 비닐(작물이 올라오는 부분을 투명하게 한 것)을 이미 고구마를 심은 이랑에다가 덮어씌우고 구멍을 뚫어 고구마 순을 끄집어내어 주었다. 아래 뿌리가 살아 있는 놈은 놔두고, 아예 죽은 놈 자리에는 땅콩을 심었다. 촉이 난 땅콩을 구멍을 얕게 파서 심으면서도 그게 살아날지 의심스러웠다. 그럭저럭 심고 나니 고구마와 땅콩이 뒤섞인 밭이 되었다. 묵은 밭의 .. 2022. 6. 1.
[2022 텃밭 농사 ①] 고추 농사는 쉬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올해는 고추 농사를 쉬어가기로 했다. 지난해엔 고춧가루 22근을 수확하면서 이태째 농사지은 보람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거두기까지 우리 내외가 감당해야 했던 수고가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다시 병충해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시시때때로 소환되는 밭일로 나는 일상이 흐트러짐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고추 농사, 스무 근 수확 이루고 접었다] 결론은 일찌감치 1년을 쉬어가는 것으로 정리됐다. 아내는 고구마나 땅콩을 심어서 그거나 거두고 그밖에는 식탁에 오를 만한 채소 몇 가지나 가꾸자고 했다. 올해에 따로 3월 전에 미리 거름을 뿌리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4월께에 퇴비 두 포를 사서 텃밭에 대충 뿌려둔 것은 그래서였다. 지난해 수확을 끝내고 버려둔 텃밭에 시금치를 심어놓고 지난겨울.. 2022. 5. 21.
베란다의 고추 농사 베란다의 고추 농사(1) 함부로 ‘농사’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땅의 농부들에게 저지르는 결례라는 걸 안다. 그러나 마땅히 달리 붙일 말이 없어 마치 도둑질하듯 감히 농사라고 쓰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난생처음으로 소출을 겨냥하고 땅에다 심은 게 고추였다. 잡풀들의 끈질긴 공세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비록 굵지는 않았지만, 소담스럽게 열매를 달고 햇볕에 빨갛게 익어, 얼치기 농사꾼을 감격게 했던 게 몇 해 전이다. 이후, 어디서건 고추밭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예사롭지 않게 되었다. 잘 걸운 밭에 익어가고 있는, 거의 검푸른 빛깔의 무성한 고추 이파리와 길쭉길쭉 실하게 자라고 있는 고추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행복에 겨워하고, 그걸 ‘사랑스럽다’라고 여기는, 농부의 어진 마음의 밑자락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2022. 3. 6.
[2017 텃밭일기 6] 수확에 바빠 ‘까치밥’을 잊었다 묵은 밭의 고추를 뽑고 배추와 무를 심은 지 한 달이 지났다. 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감나무 꼭대기까지 타고 오른 호박 이야기로 헛헛한 기분을 달랬었다. [관련 글 : 따, 말아? 감나무 꼭대기의 호박] 일주일쯤 뒤에는 새 밭의 고추도 뽑았다. 탄저를 피한 푸른 고추 몇 줌을 건지는 걸로 우리 고추 농사는 마무리되었다. 틈틈이 따낸 고추는 아내가 노심초사 끝에 햇볕과 건조기로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기 여러 번, 얼추 열 근에 가까운 양이 되었다. 고춧가루의 고운 빛깔에 아내는 무척 흡족해했고 진딧물과 탄저에도 그쯤이라도 건진 걸 나 역시 대견하게 여겼다. 추석을 쇠고 차일피일하다 보니 열흘이 훌쩍 지났다. 명절 끝에 고구마를 캐자고 했는데 그게 자꾸 미루어진 것이었다. 고구마를 캐고, 못 가본 새에.. 2021. 10. 19.
[2021 텃밭 농사 ⑧] 고추 농사, 스무 근 수확 이루고 접었다 우리 집 고추농사 기록, 스물두 근을 땄다 8월 중순에 고춧가루 9근을 건졌다는 얘기는 지난번에 썼다. 8월 24일에 새로 따 말린 고추를 빻아 3.8kg(6.5근)을 얻었다. 합해서 15.5근인데, 4.5근만 더 수확하면 작년과 같아진다며 우리는 흡족해했다. 다음날(8.25.)에 밭에 들러 갈라진 고추[열과(裂果)]를 따왔다. 그것도 잘만 말리면 얼마간 보탬이 되는 것이다. [관련 글 : 2021 텃밭 농사 ⑦ 세 차례 수확으로 고춧가루 아홉 근을 건지다] 올 고추 농사, 고춧가루 스물두 근을 이루다 8월 30일에 이어 9월 8일에 사실상 마지막 수확을 했다.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며 병충해가 온 밭에 번졌다. 이때 딴 고추를 말려서 빻으니 4근쯤 나왔다. 반 근이 모자라는 스무 근이 된 것이다. 이제 .. 2021. 10. 3.
[2017 텃밭 일기 5] 따, 말아? 감나무 꼭대기의 호박 감나무 꼭대기까지 오른 호박 바람 온도가 심상찮다. 한여름이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어느덧 계절은 가을로 곧장 들어서 버린 것이다. 갈아엎은 묵은 텃밭에 쪽파를 심은 게 지난달 말이다. 그다음 주에는 쪽파 옆에다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정한 이치지만, 얼치기 농부는 제가 한 파종도 미덥지 못하다. 심긴 심었는데 쪽파가 싹이 트기나 할까, 배추 모종 심은 건 죽지 않고 뿌리를 내릴까 하고 지레 걱정이 늘어진 것이다. 어제 아침 텃밭에 들러 우리 내외는 새삼 감격했다. 쪽파는 쪽파대로 듬성듬성 싹을 내밀었고, 뿌리를 내릴까 저어했던 배추도 늠름하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밭 귀퉁이 한구석에서 볕도 제대로.. 2021. 9. 16.
[2017 텃밭 일기 4] 탄저가 와도 ‘익을 것은 익는다’ 지난 일기에서 밝혔듯 장마 전에 찾아온 불청객, 탄저(炭疽)를 막아보겠다고 우리 내외는 꽤 가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아내의 성화에 식초 희석액을 여러 차례 뿌렸다. 내가 좀 뜨악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아내가 직접 분무기를 메고 약을 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관련 글 :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아내가 일이 있어 두 번쯤은 나 혼자서 텃밭을 다녀왔다. 지지난 주에 시간 반쯤 걸려 익은 고추를 따는데 탄저로 흉하게 말라 죽고 있는 고추를 보면서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두 주쯤 먼저 가꾼 묵은 밭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여서 다음번에 들를 때는 밭을 갈아엎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탄저는 ‘자낭균류에 의해 일어나는 식물의 병’()이다. ‘탄저.. 2021. 8. 29.
[2021 텃밭 농사 ⑦] 세 차례 수확으로 고춧가루 아홉 근을 건지다 2021 농사, 고춧가루 수확 7월 27일에 처음으로 홍고추를 수확했다. 4월 29일 모종을 심은 지 꼭 89일 만이다. 거의 해마다 고추를 심고 거두는 일인데도 그 감격은 늘 새롭다. 아마 아이를 얻는 어버이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유독 그 마음이 더 애틋했던 것은, 작년에 이어 올 고추가 이전에 우리가 지은 농사와는 달리 굵고 알찼기 때문이었다. [관련 글 : 첫 홍고추 수확의 감격] 고추가 익기 시작하면 한 주일 간격으로 따내야 한다. 수천 평 고추 농사를 짓는 이는 거의 매일 고추를 따내야 한다지 않은가. 첫날 따낸 고추가 7kg, 사흘 후에 따낸 게 8kg으로 합쳐 15kg이었는데, 세 번째 수확한 8월 6일에는 앞선 이틀간 수확과 같은 15kg을 따냈다. 그날 고추밭에 돋아나기 시.. 2021. 8. 17.
[2018 텃밭 일기 3] ‘화수분’ 우리 텃밭 손바닥만 한 텃밭의 알찬 '수확', '화수분'이 따로 없다 텃밭은 ‘화수분’이다? 일찍이 본 적 없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엔간한 더위면 비교적 잘 견뎌낸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더위는 차원이 좀 다르다. 바깥 온도가 37, 8도를 오르내리니 실내 온도도 32도를 웃돌 수밖에 없다. 견디다 못해 에어컨을 켜고 마는데, 10년 전에 장만한 에어컨은 지난 9년 동안 쓴 시간의 두서너 배를 올해에 썼다. ‘불볕더위’로 고생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농작물도 죽어나는 모양이다. 벼는 병충해가 늘었고, 과수와 채소는 착과 불량과 생육 부진 등으로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단다. 텃밭도 더위와 가뭄에 배배 곯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에 득달같이 갔더니 고추와 가지는 이파리가.. 2021. 8. 9.
[2017 텃밭 일기 3]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텃밭 고추에 탄저(炭疽)가 온 것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다. 눈 밝은 아내가 고추를 따다가 탄저가 온 고추를 따 보이며 혀를 찼을 때, 나는 진딧물에 이어 온 이 병충해가 시원찮은 얼치기 농부의 생산의욕을 반감해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딧물로 고심하다가 결국 농약을 사 치고 나서도 나는 마음이 내내 개운치 않았다. 약을 쳤는데도 진딧물은 번지지만 않을 뿐 숙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무렵 만난 선배 교사와 고추 농사 얘기를 하다가 들은 얘기가 마음에 밟히기도 했다. 집 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이 선배는 부지런한데다가 농사의 문리를 아는 이다. 내가 어쩔까 망설이다가 내 먹을 건데 뭐, 하고 약을 쳐 버렸다고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개처럼 큰돈을 들여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도리가 없.. 2021. 7. 29.
[2021 텃밭 농사 ⑥] 첫 홍고추 수확의 감격 우리 텃밭의 고추가 익기 시작한 것은 7월 16일 무렵이다. 아내는 고추가 익을 때가 됐는데 하면서 홍(紅)고추를 은근히 기다렸다. 가끔 둘러보는 농사 유튜버들의 고추는 벌써나 익었더라고 하면서 아내는 우리가 고추를 심은 게 좀 늦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관련 글 : [2021 텃밭 농사 ⑤] 마침내 고추가 익기 시작했다) 내 반응은 원래 좀 뜨악하다. 아, 익을 때가 되면 어련히 익을까. 물론 내게 홍고추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우리 텃밭 농사에 아내와 같은 수준의 애착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20일과 23일, 일주일 새에 두 번이나 더 텃밭에 들렀다. 병충해가 들끓을 거라는 아내의 조바심 탓이었다. 텃밭에 오면 아내는 가장 먼저 고추 포기를 일일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병들고 시든 고.. 2021. 7. 28.
[2021 텃밭 농사 ⑤] 마침내 고추가 익기 시작했다 1. 방제(防除), 방제, 방제……(7월 10일, 13일) “반풍수(半風水) 집안 망친다”라고 했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병충해 핑계를 자꾸 댄 뜻은 일종의 알리바이를 위해서다. 약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시시콜콜 이야기함으로써, 방제는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의성서 농사를 짓는 내 친구는 내가 농약을 치는 걸 심상하게 받아들여 주었다. 그뿐 아니라 아무도 내가 농약을 치는 걸 따로 지적하거나 비난한 이는 없다. 그런데도 알리바이 운운하는 것은 한편으로 텃밭 농사에 굳이 방제까지 하려는 게 지나친 욕심이면서, 농약에 대한 이해나 인식의 부족 탓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음을 의식한 결과다. 7월 3일에 약을 치고 왔는데 일주일 후에 들렀더니 상태는 더 나빠져 .. 2021.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