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텃밭의 알찬 ‘수확’, ‘화수분’이 따로 없다
텃밭은 ‘화수분’이다?
일찍이 본 적 없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엔간한 더위면 비교적 잘 견뎌낸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더위는 차원이 좀 다르다. 바깥 온도가 37, 8도를 오르내리니 실내 온도도 32도를 웃돌 수밖에 없다. 견디다 못해 에어컨을 켜고 마는데, 10년 전에 장만한 에어컨은 지난 9년 동안 쓴 시간의 두서너 배를 올해에 썼다.
‘불볕더위’로 고생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농작물도 죽어나는 모양이다. 벼는 병충해가 늘었고, 과수와 채소는 착과 불량과 생육 부진 등으로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단다. 텃밭도 더위와 가뭄에 배배 곯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 일주일간의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에 득달같이 갔더니 고추와 가지는 이파리가 곯아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고추는 힘겹게 빨갛게 익은 열매를 총총히 달고 있었다.
불볕더위 이겨내고 고추가 익었다
바싹 마른 땅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작업 방석을 깔고 앉아 고랑을 타면서 아내와 고추를 땄다. 아내는 연신 고맙다, 이 가뭄에도 자라준 고추에 ‘고맙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건 해마다 때가 되면 피는 꽃을 바라보며 그게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벅찬 생명의 순환으로 이해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땅에 심기만 하면 저절로 알아서 자라는 작물이지만 숨 막히는 불볕더위를 이겨내고 열매를 맺는 고추의 시간에 대한 경이다.
고랑마다 고무호스로 듬뿍 고이도록 물을 대고 돌아왔다. 그게 얼마나 작물의 타는 목을 축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집에 와서 다듬으니 고추는 다섯 근은 족히 돼 보였다. 아내는 초벌로 베란다에 한 이틀쯤 말린 고추를 아파트 주차장 볕 잘 드는 데다 자리를 펴고 말리기 시작했다. 혹시 비가 올까 노심초사했지만 더위가 계속되면서 볕이 워낙 뜨거워 며칠 만에 제대로 건조를 끝낼 수 있었다.
아내는 얇은 부직포를 사서 차일 펴듯 고추 위에다 덮었다. 볕이 너무 뜨거워 너무 익을 수 있다는 게다. 거기다가 건조용 비닐을 사 와 고추 위에 덮기도 했다. 그게 건조를 앞당긴다는 거였다. 어쨌건 그리 마음 쓴 보람이 있긴 했다.
그저께 1주일 만에 다시 텃밭을 찾았다. 일주일 동안 익은 고추가 제법 실했다. 고추를 따고 물을 댔다. 호박은 너무 더워선지, 더는 열매를 맺지 않고 있어 아내는 일찌감치 누렇게 익은 호박을 죄다 땄다. 개중에는 짐승이 갉아먹은 놈도 있다. 어쨌든 호박 네 개를 따 놓으니 마음이 푸짐해진다.
가지도 몇 개 땄는데 더위 먹었는지 새들새들 곯았다. 물을 대다가 살펴보니 가지 하나가 마치 미라처럼 수분이 쏙 빠진 채 달려 있었다. 어쨌든 올여름에도 가지는 정말 실컷 먹었다. 가지는 따로 보살피지 않아도 쑥쑥 자라서 우리 집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
아내는 호박잎을 좀 따고, 밭 가장자리에 저절로 자란 들깨의 잎도 조금 땄다. 이래저래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우리의 수확은 알차기만 하다. 우리 텃밭은 거의 ‘화수분’이다. “재물이 자꾸 생겨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는 그 화수분 말이다.
아내는 다시 고추 말리기에 들어갔다. 비가 오려나, 바람에 돗자리가 접히지 않았나, 두어 시간마다 한 번씩 뒤집어 주어야 한다며, 아내는 외출해서도 전화를 걸어서 고추를 챙기곤 했다. 작년처럼 열 근은 따야 할 텐데…, 아내의 노심초사는 여전하다.
2018. 8. 9.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텃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텃밭 일기 4] 탄저가 와도 ‘익을 것은 익는다’ (1) | 2021.08.29 |
---|---|
[2021 텃밭 농사 ⑦] 세 차례 수확으로 고춧가루 아홉 근을 건지다 (2) | 2021.08.17 |
[2017 텃밭 일기 3] 진딧물 가고 탄저 오다 (0) | 2021.07.29 |
[2021 텃밭 농사 ⑥] 첫 홍고추 수확의 감격 (0) | 2021.07.28 |
[2021 텃밭 농사 ⑤] 마침내 고추가 익기 시작했다 (0) | 2021.07.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