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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68

2020 텃밭 농사 시종기(2) 고추 농사 ① 제대로 짓는(!) 고추 농사 새로 얻은 집 앞 텃밭을 두고 우리가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러나 덥석 받아놓고 못 하겠다고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3월 초순께 농협에서 산 퇴비 2포를 시비(施肥)했다. 농사짓던 땅이라 할 만한 이력도 없는 메마른 땅이라 그거로 해갈이 될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4월 1일에 처가의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18일에 집 앞 텃밭에도 비닐을 깔면서 이랑을 만들었다. 내외가 작업하고 있는데 이웃 농사꾼 둘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역시 공터에 땅을 부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농사 경험은 텃밭 가꾼 게 전부라고 했다. 멀칭을 마치고 그날, 김천 아포에 있는 육묘장에 가서 포기에 500원씩을 주고 고추 모종.. 2020. 7. 12.
2020 텃밭 농사 시종기(1) 감자 농사 두 번째 감자 농사 올해 블로그는 가히 ‘개문 휴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나흘이면 한 편씩 꼬박꼬박 무언가를 끄적이던 때와 달리 올해는 마치 질린 것처럼 글쓰기를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정말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글을 써낸 지난 10여 년이 거짓말 같을 지경이다. 물론, 아주 문을 닫고 논 것은 아니다. 그간 블로그에 썼던 1천몇백 편의 글 가운데, 그나마 쓸 만한 글을 골라 새로 티스토리에 재수록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 왔기 때문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 7월 10일 현재, 블로그에 쌓인 1,094편의 글이 그 결과다(여기엔 일부러 중간중간에 넣어 놓은 ‘예비’ 꼭지가 있으니 실제 글은 이보다 적다). 오늘까지 올해에 새로 쓴 글을 몇 편이나 될까 세어 봤더니, 모두 27편이다.. 2020. 7. 11.
[2010 텃밭일기 ⑥]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다 ‘장마’라더니 정작 비는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잠깐 내리다 그친다. 변죽만 울리고 있는 장마철,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그래도 두어 차례 내린 비는 단비였던 모양이다. 밭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새파랗게 익어가는 작물들의 활기가 아주 분명하게 느껴진다. 밭을 드나들 때마다 저절로 이웃집 고추와 우리 걸 비교해 보게 된다. 밭 어귀의 농사는 썩 실해 보인다. 이들의 고추는 키도 훤칠하니 클 뿐 아니라 대도 굵고 전체적으로 고르게 자라서 한눈에 턱 보면 농사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것이 탐스러워 보’여서 만은 아니다. 파종 시기도 빨랐고 제대로 가꾸어 준 표시가 역력한 것이다. 밭 주인이 성급하게 뿌려준 비료로 골병이 들었던 우리 고추는 거기 비기면 뭐랄까, 그간 .. 2020. 7. 11.
[2010 텃밭일기 ⑤] 첫 결실, 시간은 위대하다 고추에 지지대를 박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처가에 들른 김에 장모님과 함께 종묘사에 들러 지지대 서른 개를 샀다. 개당 300원, 9천 원을 썼다. 고추 포기마다 쳐 주지는 못하고 서너 포기 간격으로 지지대를 박아 놓고 짬이 나지 않아 며칠을 보냈다. 지지대 사이를 비닐 끈으로 이은 것은 며칠 전이다. 두둑에 심은 고추의 열이 고르지 않아서 두 겹으로 친 줄이 고춧대를 제대로 감싸지 못할 것 같다. 서툰 농사꾼은 어디서든 표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한 포기밖에 없는 오이 위에는 장모님께 얻어 온 온상용 철근(?)을 열십자 모양으로 박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오늘 다시 며칠 만에 밭에 들렀다. 밭 어귀에서부터 펼쳐지는 초록빛 물결이 훨씬 짙고 푸르러졌다. 시간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시.. 2020. 6. 24.
[2010 텃밭일기 ④] 과욕이 남긴 것 섣부른 비료 주기, 고추 모를 죽이다 텃밭 농사가 주는 기쁨은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쌓여간다. 밭머리에서 우썩우썩 자라고 있는 상추와 쑥갓을 뜯어와 밥상에 올리고, 날마다 빛깔을 바꾸며 크고 있는 작물을 바라보는 기쁨이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는 달리 비닐을 덮기 전에 미리 퇴비를 얼마간 뿌렸건만, 밭 주인은 초조했나 보다. 우리는 시내 종묘사에서 소형 포대에 든 비료를 사 왔다. 장모님은 물비료를 조금 주고 말라고 했건만 우리는 그걸 귀담아듣지 않았다. 금비를 주려면 뿌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고랑 쪽에다 소량을 묻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필요한 건 ‘욕심’이 아니라 ‘시간’이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아내가 낮에 비료를 뿌렸다고 했다. 일손을 덜었다 싶어서 나는 흡족해했다. 그런데 .. 2020. 6. 23.
[2010 텃밭일기 ③] 햇상추를 비벼 먹으며 어제는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텃밭에 들렀다. 부지런한 농군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밭에 미리 나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이랑에 비닐을 덮어준 선배다. 그도 일찌감치 밭을 둘러보러 나온 것이다. 빠진 데 없이 잘 가꾸어진 밭은 빗속에서도 시퍼렇게 살아난 작물들의 풀빛으로 한껏 그윽해 보였다. 며칠 만인가. 한 일주일가량 못 본 사이에 밭은 무성해졌다. 감자와 고추, 상추와 쑥갓, 콩과 고구마, 토마토와 열무 따위의 작물들이 뿜어내는 생기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텃밭 머리에 선배가 뿌려준 상추와 쑥갓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아내와 나는 감격의 탄성을 내질렀다. 솎아 주어야 할 만큼 잘 자란 상추와 쑥갓 앞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고추와 가지는 이제 제법 늠름하게 자리 잡았다. 말라죽은 것처럼 .. 2020. 6. 22.
[2010 텃밭일기 ②] 파종 이후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난 뒤 이내 비닐을 덮으려고 했는데 차일피일했다. 비가 오거나, 다른 일이 겹쳐서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 둘러본다고 들렀더니 우리 몫의 두 이랑에 얌전히 비닐이 덮여 있었다. 아뿔싸, 한발 늦었다. 밭 옆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께서 당신네 일을 하면서 덮어 주신 것이다. 일을 덜어 고맙긴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따로 공치사하는 대신에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제 때에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치기는 어디서나 표가 나는 법이다. 어린이날에 미리 처가에 들렀다 오는 길에 장모님으로부터 고추, 가지, 들깨, 땅콩 등의 모종을 얻어왔다. 돌아와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밭에 나갔더니 선배와 동료 교사 한 분이 고구마를 심고 있었다. 뒤늦은 공치사는 거기서 했다. 여러 해 거기서.. 2020. 6. 21.
[2010 텃밭일기 ①] 다시 텃밭에서 새로 또 텃밭을 얻었다 새로 텃밭을 얻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쯤, 거리로 치면 1km 안팎에 있는 밭이다. 말구리재 근처의 안동공고 운동장과 이어진 이 언덕배기에 있는 밭은 일종의 주말농장이다. 그동안 주로 안동공고 교사들이 분양받아 푸성귀나 고구마를 갈아 먹었던 밭이다. 집 가까이 있는데도 나는 정작 이 주말농장을 몰랐었다. 이 농장의 존재를 알게 된 지난해, 나는 공고에 근무하는 선배 교사께 내년에는 두세 이랑쯤 텃밭을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었다. 두 이랑이 맞을지 세 이랑쯤이 나을지는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밭을 규모를 몰랐기 때문이다. 한 일주일 전쯤에 나는 선배로부터 두 이랑을 받아 놓았다, 푯말을 세워두었으니 밭에 가서 확인해 보라는 전갈을 받았다. 나는 이내 밭에.. 2020. 6. 20.
[2008] 수확, 그리고 파농(罷農) 고추농사, 수확과 동시에 밭을 엎었다 내 고추 농사가 끝났다. 지난 10월 30일에 마지막, 몇 남지 않은 고추를 따고 나서 나는 고춧대를 뽑아 얌전하게 고랑에다 뉘어 놓는 것으로 2008년도 내 텃밭 농사를 끝냈다. 마땅히 검은 비닐마저 걷어내야 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밭 한쪽의 가지도 포기째로 뽑아 놓았다. 여느 해처럼 올 농사도 우연히 시작했다. 밭을 일구어 고추 모종을 심은 게 지난 5월 10일이다. 땅이 척박해 제대로 작물이 자랄 것 같지 않았던 농사였는데, 자연과 생명의 힘은 놀랍다. 내 고추는 그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쏠쏠하게 내게 풋고추를 선사해 주었고, 얼마간의 고춧가루가 되어 주었다. 그간 여러 번 딴 얼마 되지 않은 익은 고추를 아내는 가위로 썰어서 베란다의 부실한 햇볕.. 2020. 6. 19.
[2008] 미안하다. 내 고추, 가지야 늦은 봄에 파종하고 나서 ‘척박한 땅’이라고 천대하며 내버려 두었던 땅이다. 자연 임자들의 가꾸고 다독이는 손길은 멀어졌다. 다락같이 오른 기름값도 한몫했다. 밭에 한번 가봐야지 않으려나? 내버려둬. 자라면 다행이고 안 되면 그만이지, 뭐. 내외는 번갈아 가며 타박을 했다. 하긴 제대로 줄기도 실해지기 전에 힘겹게 열매를 매단 녀석들이 안쓰럽긴 했다. 빈약한 줄기와 잎 쪽에 새까맣게 붙은 진딧물을 없애려고 농약을 사서 분무기로 뿜어준 게 한 달쯤의 전의 일이다. 고랑에 불붙듯 번지고 있는 바랭이를 뽑느라 진땀을 흘리다 만 게 한 보름쯤 되었다. 바랭이를 뽑으면서 위태롭게 달린 고추 몇 개를 따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텃밭은 서글프기만 했다. 그리고 어제, 좀 느지막하게 밭에 들렀는데 맙소사. 한발 .. 2020. 6. 19.
[2008] 고추밭, 그 후 얼마 만인가, 그저께 아내와 함께 고추밭을 다녀왔다. 그러려니 하긴 했지만 고추밭은 좀 그랬다. 동료가 심은 두 이랑은 반 넘게 시들었는데, 그나마 우리가 가꾼 이랑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밭에 대왕참나무를 심은 동료에게서 얻은 모종이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우리가 시장에서 사다 심은 고추 모종은 키는 작지만 비교적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먼저 심었던 고추 모종은 웃자라 줄기도 잎도 부실한 상태에서 꽃이 피면서 자기 성장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몇 포기는 고추 열매를 맺었다.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상태에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어린 나이에 배가 부른 소녀를 보는 것처럼 안쓰러웠다. 고추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인데도 고랑마다 이어지고 있는 바랭이의 기습은 .. 2020. 6. 19.
우리 반 고추 농사 (Ⅳ) 고추가 익다 내 고추 농사가 반환점을 돌았다. 지난 8월 초순께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난 뒤, 지난 16일 개학 때까지 녀석들은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했다. 하긴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이 드문 시기였으니 목이 타는 일은 없었겠다. 7월 말께엔 빨갛게 익고 있었던 녀석은 하나뿐이었는데, 보름이 지나는 동안 새끼를 친 듯 네댓 개가 빨개져 있었다. 그리고 하룻밤씩 자고 나면 녀석들의 뺨에 어린 붉은 기는 골고루 펴지면서 시나브로 더 고와지는 중이다. 고추 키는 더 자라지 않는다. 흙의 문제인지 보살핌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달린 열매는 길쭉하지 않은 대신 배가 볼록한, 아주 속이 꽉 찬 놈들이다. 익는 과정도 눈에 조금씩 보인다. 짙은 풀빛이 뭐랄까, 멍든 것처럼 검은 빛이 도는 우중충한 빛깔이 되.. 2020.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