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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68

[2021 텃밭 농사 ④] 거름주기와 약 치기 사이… 1. 거름주기와 수확(6월 28일) 첫 수확을 하고 엿새 뒤다. 이제 우리 고추밭은 제법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낸 고랑을 사이에 두고 고춧대는 열매를 다닥다닥 달고 있다. 밭 주인의 눈에는 마치 딱 벌어진 어깨를 자랑하는 실팍한 장정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거기 달린 고추의 크기나 굵기가 예사롭지 않다. 풋고추로 먹으려고 한 줌을 따 집에 와 재어 보니 15cm 가까이 되었다. 아마 20cm 가까이 자라는 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우리가 고춧가루 스무 근을 이룬 것은 전적으로 이처럼 크고 굵은 고추의 품종 덕이다. 이게 장모님이 지은 부촌 고추가 아닌가 싶다. [관련 글 : 장모님의 고추 농사] 내가 건성으로 밭을 둘러보며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아내는 알.. 2021. 7. 9.
[2021 텃밭 농사 ③] 텃밭 농사도 ‘심은 대로 거두기’는 매일반 1. 풀매기(6월 5일) 지지대를 세워준 게 5월 26일, 열흘 만에 텃밭에 들르니 고랑마다 돋아난 풀이 말이 아니다. 일찍이 첫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나는 텃밭 일이 풀과의 씨름이라는 걸 알았다. [관련 글 :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며칠만 한눈을 팔면 풀은 마치 임자의 게으름을 비웃듯 밭고랑을 잠식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랭이 등 잡풀들의 공세에 기가 질리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새록새록 나날이 짙어지는 잡풀의 기습을 불가항력이라고 느낀다면 ‘폴과의 공존’을 선택해도 좋다. 요즘 농사꾼 가운데서는 굳이 고랑의 풀을 뽑지 않고 버려두는 경우도 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곧이곧대로 농사일을 곁눈질하며 자란 사람이라, 풀과의 공존 따위를 입 밖에 낼 수 없다. 부지런히 틈만 있으면 놈들을 .. 2021. 7. 5.
[2021 텃밭 농사 ②] 거름 주고, 곁순 따주고…, 밭주인의 몫 1. 거름주기(5월 13일) 5월 13일에 밭에 거름을 주었으니, 모종한 지 꼭 보름 만이다. 시비(施肥)는 전적으로 아내가 판단하고 시행한다. 아내는 틈만 나면, 농사짓기 유튜브를 열심히 읽는데, 그게 농사짓는 데 얼마간은 도움이 된다고 보는 모양이다. 내가 건성으로 아내의 말을 듣고 마는 것은 그게 유튜버마다 조금씩 처방을 달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농사 일정을 따르는 거야 대동소이하지만, 병충해 방제나 작물 재배법은 저마다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처방이 달랐다. 고추 하나만 해도 얼마나 많은 종류의 병충해가 있는가, 진딧물과 총채벌레부터 시작하여 무름병, 탄저 등등 병충해는 수도 없는데, 이걸 잡는 비방은 저마다 다른 것이다. 글쎄, 잘은 몰라도 농사 유튜버 가운데 전문 농사꾼이 얼마나 될.. 2021. 6. 30.
[2021 텃밭 농사 ①] 다시 또 텃밭 농사를 시작하다 1. 퇴비 뿌리기(3월 16일) 해마다 농사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의논이 엇갈린다. 아내는 아내대로 왕복 1시간 이상이 걸리는 텃밭 탓을 하면서, ‘기름값 타령’을 하곤 했다. “사 먹는 게 낫지,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 운운하는 이 레퍼토리는 전통과 역사도 깊다. 그러나 이 푸념은 반만 진실이다. 아내가 그걸 이유로 농사를 접겠다고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손바닥만 한 텃밭에 불과하지만, 농사가 주는 기쁨만큼 가끔은 억지로 시간을 내어 텃밭을 돌보아야 하는 부담도 있긴 하다. 이참에 농사를 엎어버릴까 하는 유혹이 전혀 없지도 않은 텃밭 농사를 우리는 10년도 넘게 지어 오고 있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텃밭이 남의 땅이 아니라, 장모님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한 주에 두.. 2021. 6. 25.
[2017 텃밭 일기 2] 산딸기, 밭에서 익다 텃밭 걸음이 잦아졌다 요즘 텃밭 걸음이 잦다. 아내가 사흘돌이로 텃밭 타령을 해대고 나는 두말없이 그러자고 날을 받아서 집을 나선다. 주 1회도 쉽지 않던 지난해에 비기면 텃밭 걸음이 잦아진 것은 풀을 매야 해서, 물을 주어야 해서, 진딧물을 살펴봐야 해서 등의 이유 때문이다. “꼴같잖은 농사지으면서 이런 말 하면 거시기하지만, 농작물이 임자 발걸음 소리 듣고 자란다잖우?” “아무렴. 자주 들여다봐야 뭐가 돼도 되겠지.” 농사일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자라면서 밭일을 거든 경험이 있는지라, 아무래도 일하는 가락이 좀 다르다. 같이 일을 하다가도 가끔 아내에게 퉁을 맞곤 하는 까닭이다. 힘쓰는 일은 다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내 일은 시뻐 보인다 싶으니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 2021. 6. 1.
[2018 텃밭일기 1] 작물은 절로 자라는 줄 알았다 글쎄, 간간이 짬을 내어 돌보아 온 텃밭에 불과하긴 하나 그간 햇수로 치면 우리 내외의 농사는 여러 해 연륜(?)을 쌓았다. 어쨌거나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기쁨과 안타까움을 맛보면서 농부의 마음도 얼추 헤아리게 되었다는 건방을 떨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8년 텃밭 농사를 시작하다 해마다 농사일을 시작할 때를 미루고 늦추다 간신히 모종을 심고 시작하는 텃밭 농사,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겨우내 거의 찾지 않았던 텃밭을 찾은 게 4월 중순께다. 3월에 아내가 뿌려둔 상추가 겨우 싹을 내밀고 있는 묵은 밭은 그나마 깨끗했지만, 유채를 뿌려두었던 새밭은 유채 대와 웃자란 풀로 무인지경이었다. 한 시간 남짓 대와 풀을 뽑아내고 장모님이 남긴 마지막 퇴비 네 포대를 풀었다. 퇴비 뿌리고 일주.. 2021. 5. 25.
어떡하나…, 올 농사 주말 농사를 지어 보나 마나 하고 나는 꽤 망설였다. 예전과 달리 평일에는 시간 내는 게 어려운데다가 마땅히 주변에 텃밭을 구하기도 어려웠던 탓이다. 후배가 권해 준 갈라산 아래 텃밭은 거리가 마땅찮아서 포기하고 같은 국어과 동료가 얻어서 대왕참나무를 심어 놓은 밭의 자투리땅을 얻었다. 안동댐 위 동악골, 전통 찻집 뒤편에 있는 내 텃밭은 대여섯 평 남짓인데, 땅이 척박해 보인다. 혼자서 갈기에는 버거워서 같은 학년을 맡은 동료 교사와 나누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은 고작 두어 이랑이 제격이다. 동료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에 아내와 함께 가서 두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깔았다. 마땅히 이랑과 고랑을 구분하여 땅도 좀 일구어야 하나 대충 두둑을 만드는 걸로 때웠다.. 2021. 5. 23.
[2010 텃밭일기 ⑨] 거둠과 이삭(2) 그간 모두 여덟 편의 ‘텃밭일기’를 썼다. 첫 일기는 4월 28일 텃밭농사를 짓기로 결정한 뒤 밭에 퇴비를 뿌린 일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파종, 햇상추, 개화, 결실, 병충해에 관한 이야기를 한 꼭지씩 다루었고 9월 5일에 올린 마지막 여덟 번째 일기는 고추를 거두고 이를 말린 이야기였다.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의 구조물 지붕과 에어컨 실외기 위 등을 오가며 건조한 고추는 아내가 방앗간에 가 빻았더니 네 근 반쯤이 나왔다고 했다. 한 열 근은 너끈히 거둔다고 했던 이는 이웃 이랑에서 고추를 지었던 선배다. “애걔, 겨우 그거야?” “올 고추 농사는 다 그렇대. 그간 우리가 따 먹은 풋고추를 생각해 보우.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지 뭐…….” 맞다. 뒷간 갈 적과 볼일 보고 난 다음의 마음이 다른 것일 뿐이.. 2020. 10. 28.
우리 반 고추 농사(Ⅴ) 익은 고추를 따다 지난 5월 이래 내가 노심초사 가꾸어 온 우리 반 고추농사를 오늘 걷었다. 점심시간에 마지막 사진을 한 장 찍고 화분을 교사 뒤편으로 옮겼다. 일부러 시켰던 것도 아닌데 그 동안 꾸준히 화분에 물 주는 일을 도맡았던 이웃 반 아이와 우리 반 아이 둘이 거들었다. 아이들에게 포기를 뽑으라니 그것도 수월찮은 듯 낑낑대더니 겨우 지지대와 함께 뽑아놓는다. 그나마 총총히 달린 몇 개의 고추를 훑어 따고 나서 화분은 뒤편 산기슭에다 갖다 엎었다. 지난 몇 달간 몇 그루의 고추를 훌륭히 길러 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 장한 흙인데, 그 양이 보잘것없다. 저 한정된 토양을 더 기름지게 하느라고 나는 몇 번씩이나 유기질 비료를 거기 듬뿍 파묻었던가. 내려오는데 문득 기독인들이 ‘아멘’ 이라 중얼.. 2020. 10. 27.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② 처음으로 고춧가루 20근을 거두다 좋은 모종으로 시작한 고추 농사 올해는 고추를 심되 비싼 모종, 상인 말로는 족보가 있는 모종으로 심었다는 건 이미 말한 바다. 글쎄, 긴가민가했는데 고추가 자라면서 이전에 우리가 10여 년 이상을 보아온 고추보단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우리 내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만, 돈을 더 준 게 돈값을 하는구먼.” “그러게. 엄마가 지은 고추가 전부 이런 종류였던가 봐.” 그렇다. 일단 키가 좀 훌쩍하게 크는데, 키만 크는 게 아니라 검푸른 빛깔을 띠면서 뻗어나는 가지의 골격이 심상찮았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고, 그게 쑥쑥 자라서 10cm 이상 가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선보이자, 우리 내외는 꽤 고무되었다는 얘기도 앞서도 했었다. 처음으로 익은 고추는 지난 회에서.. 2020. 9. 24.
[2010 텃밭일기 ⑧] 거둠과 이삭(1) 늦장마가 띄엄띄엄 계속되고 있다. 가뭄으로 말라가던 고추는 아연 생기를 얻었고 뒤늦게 새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많이 늦었다. 이웃의 고추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고추도 이미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밭에 당도한 병충해는……, 결국 ‘불감당’이었다. 그럴 수 없이 잘 자라 미끈한 인물을 자랑하던 고추가 구멍이 뚫리거니 시들시들 고는 걸 지켜보는 것은 못할 짓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다. 결국 센 놈만 살아남는 것……,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아내와 나는 사나흘 간격으로 밭에서 익은 고추를 따 왔다. 고추를 따 보면 뜻밖에 내가 지은 농사가 만만찮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지은 농사가 수월찮지?” “그럼!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고추를 따다 먹은 지 아우? .. 2020. 9. 2.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배추벌레와 교감하는 시인, 그러나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2020.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