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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2 텃밭 농사 ②] 제대로 돌보지 않아도 작물은 제힘으로 자란다

by 낮달2018 2022.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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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 이미지로 볼 수 있음.

 

▲ 고구마도 완연히 살아났고, 지난 번 심은 땅콩도 순을 벋었다.

고구마는 멀칭 작업을 하지 않고 심었는데 가문데다가 제대로 돌보지 않아 다 죽게 생겼다는 얘긴 지난 글에서 이미 했다. 죽으면 하는 수 없다고 내버려 두었는데, 5월 19일에 가보니 어라,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린 놈이 적지 않았다.

 

아내가 친구에게서 얻어 온 배색 비닐(작물이 올라오는 부분을 투명하게 한 것)을 이미 고구마를 심은 이랑에다가 덮어씌우고 구멍을 뚫어 고구마 순을 끄집어내어 주었다. 아래 뿌리가 살아 있는 놈은 놔두고, 아예 죽은 놈 자리에는 땅콩을 심었다.

 

촉이 난 땅콩을 구멍을 얕게 파서 심으면서도 그게 살아날지 의심스러웠다. 그럭저럭 심고 나니 고구마와 땅콩이 뒤섞인 밭이 되었다. 묵은 밭의 상추 옆에도 배색 비닐로 멀칭을 한 다음, 좀 달게 땅콩을 심었다. 몸뚱이를 반쯤 드러낸 땅콩을 바라보면서 나는 영 미덥지 않았다.

▲ 고구마순이 제법 벋어나와 이제 제법 꼴을 갖추었다.
▲ 살아날까, 미덥지 않던 땅콩도 조그맣게 잎을 내밀었다. 배색 비닐은 아내가 친구에게서 얻은 것이다.

에이, 죽으면 그만이지. 어떡할 거야……. 핑계는 언제나 ‘죽으면 할 수 없다’다. 얼치기 농사꾼 주제에 달리 뾰족한 수는 없긴 하지만, 중얼대면서도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세상에 어떤 농부가 죽으면 하는 수 없다고, 심으면서 내빼는 짓을 할까 말이다.

 

날이 매우 가물다. 올봄부터 지금까지 비다운 비가 내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지난겨울에도 눈 한 번 제대로 오지 않았으니 가물다는 농민들의 비명을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한창 감자가 굵어질 때라 물을 주러 24일 저녁에 다녀갔고 어제 아침에 다시 밭을 찾았다.

 

새로 멀칭한 이랑에 새파랗게 모양을 갖춘 고구마순이 벋어 나왔다. 도대체 싹이 날 것 같지 않던 땅콩 씨앗도 새파란 잎 서너 개씩을 피워올렸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흡족하다. 임자가 시원찮은 농부라도 무릇 모든 작물은 제힘으로 자라는 것이다.

▲ 물대기. 맨 왼쪽의 들깨와 호박 골에 호스를 물을 대었다. 나중에 아내는 물뿌리개로 작물마다 젖도록 물을 주었다.

알이 굵어지면서 흙 밖으로 드러난 감자의 북을 돋워주고 무성해진 상추를 솎아주고 난 뒤, 아내는 두어 시간 동안 물을 댔다. 나는 창고에서 이것저것 연장을 정리하고, 나중에 짬을 내어 짜 맞추려고 잘라둔 나무판을 정리했다. 아내는 처음엔 호스로 고랑에다 물을 대다가 이랑이 말라 있으니 물뿌리개로 이랑도 젖도록 물을 주었다.

 

뿌리가 흠씬 젖도록 물을 댔다고 본 아내는 그제야 가자고 했다. 돌아오는 길, 동네 어귀의 보리가 누렇게 익어 있었다. 한 보름 전만 해도 푸르던 보리 이삭이 어느새 수확을 눈앞에 둔 것이다. 하긴 걸으러 나가다 보면 논에는 모내기를 끝낸 논이 제법이다. 내일이면 6월이다.

 

▲ 우리 동네의 공터 밭에서 익고 있는 보리. 5월 10일
▲ 마을 어귀의 보리밭. 보리는 누렇게 익었고, 수확만 기다리고 있다.

 

2022. 5.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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