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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1 텃밭 농사 ⑦] 세 차례 수확으로 고춧가루 아홉 근을 건지다

by 낮달2018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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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농사, 고춧가루 수확

▲ 고추 포기가 힘겨울 만큼 달린 고추를 보며 우리는 늘 힘을 얻곤 한다. (7월 30일)
▲ 두 번째로 수확한 홍고추. 광주리에 담긴 크고 실한 고추는 농사가 지닌 치유의 의미를 환기해 준다.(7월 30일)
▲ 이렇게 굵고 실하게 자라서 벌레 먹은 고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을 갈라보면 기가 막힌다. (7월 30일)

7월 27일에 처음으로 홍고추를 수확했다. 4월 29일 모종을 심은 지 꼭 89일 만이다. 거의 해마다 고추를 심고 거두는 일인데도 그 감격은 늘 새롭다. 아마 아이를 얻는 어버이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유독 그 마음이 더 애틋했던 것은, 작년에 이어 올 고추가 이전에 우리가 지은 농사와는 달리 굵고 알찼기 때문이었다. [관련 글 : 첫 홍고추 수확의 감격]

 

고추가 익기 시작하면 한 주일 간격으로 따내야 한다. 수천 평 고추 농사를 짓는 이는 거의 매일 고추를 따내야 한다지 않은가. 첫날 따낸 고추가 7kg, 사흘 후에 따낸 게 8kg으로 합쳐 15kg이었는데, 세 번째 수확한 8월 6일에는 앞선 이틀간 수확과 같은 15kg을 따냈다. 그날 고추밭에 돋아나기 시작한 풀도 맸다.

▲ 세 번째 수확 날. 이랑마다 풀이 잔뜩 돋아났다. 한 차례 방제한 고추 포기마다 약의 물기가 묻어 있다. (8월 6일)
▲ 세 번째 수확한 고추는 앞선 두 번을 합한 양이었다. (8월 6일)
▲ 한 두 시간가량 풀을 매고 나니 밭 고량이 깨끗해졌다. (8월 6일)

고추 농사는 수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고추는 무엇보다 수분이 싹 빠지도록 잘 말려야 한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고추는 물러져서 상하기 쉽다. 이 고추 말리기의 방식에 따라 이른바 태양초가 태어난다. 

▲ 초벌로 그늘에서 말려 최소한의 수분을 뺀 고추는 건조기에 들어가서 열로 건조를 시킨다. (8월 5일)
▲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경계석 위에서 말리는 우리 고추. 왼쪽처럼 고추를 넌 다음, 오른쪽처럼 부직포를 덮었다. (8월 5일)
▲ 올해 새로 산 10단짜리 건조기(왼쪽)와 몇 해 전부터 써 온 건조기. 이것도 부족하여 사은품으로 받은 조그마한 건조기도 돌리고 있다.

태양초(太陽椒)는 ‘햇볕에 말린[양건(陽乾)] 고추’다. 햇볕에 말린 이 고추는 고운 붉은 색을 띠어서 시장에서 값도 더 받는다. 그러나 햇볕 상태를 따라야 하는 데다가 워낙 손이 많이 가므로 선택의 폭이 좁다. 고추 농가에서 대부분 건조기에 넣어 말리는 ‘화건(火乾)’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고추와 생선 따위를 말리는 데 쓰는 건조망에서 말리는 고추

우리 집에선 햇볕 좋은 날에는 바깥에서 말리고, 날이 좋지 않으면 가정용 소형 식품 건조기에 넣어서 말린다. 지난해에는 남의 기계 하나를 빌려서 두 대를 돌리고 고추 농사를 짓는 아내 친구의 대형 건조기 신세를 지는 등 갖은 방법으로 고추를 말렸다.

 

심은 고추가 지난해의 60%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건조기 1대로도 될 듯했는데, 올해 수확이 예상을 넘으면서 의논 끝에 건조기 한 대를 더 샀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무슨 가전제품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소형 건조기까지 돌리느라 우리 집 베란다에선 기계음이 요란하다.

 

아내는 아파트 마당에 말릴 때는 발을 펴고 그 위에 고추를 널고 그 위에는 얇은 하얀 부직포를 덮어서 직사광선을 피했다. 수분도 덜 빠진 고추를 햇볕에 바로 내놓았다가는 고추가 꺼멓게 타버리는 불상사도 있을 수 있다면서. 아내는 틈만 나면 건조기를 열어보고 고추를 뒤집어 놓거나 무른 고추를 가려내는 일로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다.

 

아내는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얼마 전에는 고추나 생선 등을 말리는 데 쓴다는 모기장으로 된 건조장 하나도 사서 에어컨 실외기 위에다 걸기도 했다. 농사 유튜버들이 만들어 쓴다는 고추 건조대를 만들어 달래서 각목을 사서 만들어 놓았는데, 아직 그걸 쓰지 못하는 것은 새로 시작한 장마 때문이다.

 

아내는 말린 고추를 위생 봉투에 넣고 봉하여 냉장고에 보관했다. 상온에 놔두었다가는 말린 게 죄다 헛수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봉지, 두 봉지 보관하게 시작한 건고추로 냉장고가 비좁은 정도가 되자, 이를 한데 모아 방앗간으로 갔다.

▲ 아내가 그간 차곡차곡 말려서 저장한 건고추를 방앗간에 가서 빻아 왔다. 생각보다 많은 9근이이서 우리는 희희낙락했다. (8월 14일)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은 고추 한 포대를 들고 나서는 걸 보고 나는 한 열 근 나오려나 했는데, 고추를 빻아 돌아온 아내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나도 바로 맞장구를 쳤다.

 

“한 다섯 근이나 될까 했는데, 아홉 근이라오.”

“그래, 내가 그랬잖아? 아마 올해도 우린 스무 근 이룰 거야.”

 

내가 무슨 전문 농사꾼도 아니면서 흰소리를 한 것은 어쩐지 그럴 것 같아서였다. 고추의 생육과 작황, 그리고 예년에 비겨 병충해가 덜하다는 것 등을 고려하면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

 

9근(5.4kg)을 두 봉지로 나누어 식탁에 얹어놓고 사진을 찍고 벗과 아이들에게 올 농사의 수확이라고 SNS 메시지를 날렸다. 올해는 대체로 고추 농사의 작황이 좋은 모양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한 해 동안 먹을 양념으로 고춧가루 스무 근을 이루는 건 감격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해마다 지을까 말까를 망설이다 시작하는 농사, 내년에도 어김 없이 고추 농사를 지어야 할 듯하다. 건조기뿐 아니라, 건조망과 내가 짜놓은 고추 건조대까지 마련해 놓고서 농사를 접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어쨌든 고르지 않은 날씨에 노심초사하면서 고추를 말리는 아내의 수고로움에 스무 근 수확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2021. 8.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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