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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68

우리 반 고추 농사(Ⅲ) 장하다, 고추야! 교무실 베란다에 내다 놓은 내 고추 화분에 퇴비를 넉넉하게 묻어 주었더니 시퍼렇게 잎이 짙어지고 줄기가 실해지면서 다투어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얘긴 일찌감치 한 바 있다. 두어 포기에서 잎마름병인지, 이파리가 말라 들어간다고 근심했더니, 줄줄이 댓글을 달아주신 고참 농사꾼으로부터 마른 잎은 아까워 말고 잘라내어라, 더 자라기 전에 지지대를 세워 주어라, 벌레 잡는 데엔 설탕물도 쓸 만하다는 등의 노하우를 배웠다. 이틀 후에 학교 뒷산에서 다듬어 온 나무로 지지대를 세우고, 물이 잘 빠지도록 벽돌 두 개로 화분을 괴고 유실된 흙도 조금 보충했다. 어차피 화분이 놓인 곳은 한데니 예고 없이 내리는 비에도 끄떡없도록 채비를 한 셈이다. 그게 필요할까 어떨까 고민하다가 에라, 해서 나쁘지는 않.. 2020. 6. 18.
우리 반 고추 농사(Ⅱ) 복합비료로 죽은 모종, 다시 심다 우리 반 교실 앞 통로에다 고추 모종 네 포기씩을 심은 화분 두 개를 갖다 놓은 건 지난 4월 24일이다. 모종을 사며 함께 산 의심스러운 ‘복합비료’가 문제였나 보다. 처음 일주일 가까이는 싱그럽게 자라는 듯하더니만 연휴 끝에 돌아오니 잎이 마르면서 죽어가기 시작했다. 집에 가져가 화분에 심은 고추에서는 진딧물이 끊기 시작하고……. 결과적으로 처음 심은 고추는 실패였다. 미련을 끊고 뽑아 버리고, 새 모종을 심었다. 지난번에는 화분 하나에 네 포기를 심었는데, 아무래도 달다(경상도에서 ‘간격이 좁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싶어서 세 포기로 줄였다. 처가에서 얻어온 쿰쿰한 냄새가 나는 퇴비를 적당히 흙을 헤집고 넣어주고 며칠이 지났더니 단박에.. 2020. 6. 17.
우리 반 고추 농사(Ⅰ) 신록(新綠), 고추 심기 4월도 막바지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열공’ 모드로 들어갔고, 며칠 동안 출제 때문에 끙끙대다 다시 맞는 날들이 어쩐지 수상하고 어수선하다. 한 학기가 ‘꺾여서’인지 다소 숨 가쁘게 달려온 두 달간의 팍팍한 시간이 불현듯 막연해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가, 블로그를 살피고 돌보는 일도 시들하고 심드렁해졌다. 모두들 바쁜 모양인지 오블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느껴진다. 이웃들 집을 한 바퀴 도는 일도 뜨악해지고,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 근방에도 가지 않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신록이 그나마 변치 않는 감격을 선사해 준다. 학교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은 조그만 숲인데 이 숲은 시방 .. 2020. 6. 17.
[2017 텃밭 일기 ①]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텃밭 농사와 농약, 그 ‘윤리적 딜레마’ 지난해 농사는 좀 늦었었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좌충우돌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새 5월이었다. 시기를 놓쳤는데 농사가 되기는 할까, 저어하면서 텃밭에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은 게 5월 하순이었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 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미리 이랑을 지어 검은 비닐로 씌우는 이른바 ‘멀칭’ 과정을 생략하고 시작한 농사에 우리는 잔뜩 게으름을 피웠던 것 같다. 매주 한 번꼴로 밭을 둘러보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밭에 들르는 일이 뜸해졌던 것이다. 9월 중순께 다시 들렀을 때 텃밭은 바랭이와 쇠비름 같은 풀이 우거져 마치 흉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임자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졌어도 우리 .. 2020. 5. 18.
밭, 혹은 ‘치유’의 농사 농사를 지으며 작물과 함께 농사꾼도 ‘성장’한다 오랜만에 장모님의 비닐하우스에 들렀다. 여든을 넘기시고도 노인은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억척스레 몸을 움직여 한 마지기가 훨씬 넘는 밭농사를 짓고 계신다. 북향의 나지막한 산비탈에 있는 밭에는 모두 세 동의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두 동은 나란히 나머지 한 동은 맞은편에 엇비슷하게 서 있다. 예년과 같이 주가 되는 작물은 역시 고추다. 해마다 우리 집을 비롯하여 경산과 부산에 사는 동서, 처고모 댁의 김장용 태양초가 여기서 나는 것이다. 키가 훌쩍 큰 품종인데 가운뎃손가락 굵기의 길쭉한 고추가 벌써 주렁주렁 달렸다. 유독 장모님 고추만이 인근에서 가장 빠르고 굵고 실하게 열린다고 아내는 자랑인데, 아마 그건 사실일 것이다. 오른쪽 비닐하우스 위쪽은 .. 2019. 6. 29.
초농기(初農記), 첫 농사의 기록 학교 한귀퉁이의 텃밭에 지은 첫 농사 올봄에 학교 가녘에 있는 밭의, 한 세 이랑쯤의 땅을 분양받았었습니다. 물론 이 분양은 소유권이 아닌 경작권에 대한 것입니다. 분양을 받고서 한동안은 엄두가 나지 않아 버려두었다가 가족들과 함께 일구고, 비닐을 깔고, 고추와 가지, 그리고 상추 등속을 심었지요. 이게 제대로 자라기나 할까,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채. 그러나, 씨앗들은 주인의 의구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파릇파릇 움을 틔워 새잎으로 자라났습니다. 의심 많은 임자는 그제야 새잎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주는 기쁨에 조금은 우쭐대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수업이 빌 때마다 거기 들러 그 녀석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시간이 주는 보람은 남달랐지요. 농촌에서 나고 자랐지만, 따로 농사짓기의 경험이 없.. 2019. 6. 28.
조바심의 기다림, 백일 만에 ‘감자’가 우리에게 왔다 ‘생산’이면서 ‘소비’인 얼치기 농부의 텃밭 감자 농사 전말기 올해 처음으로 감자를 심었다. 빈 고향 집 손바닥만 한 텃밭에 소꿉장난처럼 지어내니 굳이 ‘농사’라 하기가 민망한 이 ‘텃밭 농사’도 햇수로 10년이 훨씬 넘었다. 늘 남의 밭 한 귀퉁이를 빌려서 봄여름 두 계절을 가로지르는 이 농사로 얼치기 농부는 얻은 게 적지 않다. 우리 내외의 첫 감자 농사 그게 고추나 호박, 가지 따위의 수확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실 거다. 오가는 길이 한 시간 남짓이어서 아내는 늘 ‘기름값도 안 나오는 농사’라고 타박을 해대고, 내가 그게 기름값으로 환산할 일이냐고 퉁 주듯 위로하는 일도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감자를 심자는 제안은 아내가 했다. 연작이 해롭다며 지난해 고추를 심지 않은 밭에 무얼 심.. 2019. 6. 28.
첫 수확과 호미, 이 땅 어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한다 [ 텃밭일기 2018] ② 첫 수확과 호미, 이 땅 어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한다 지난해 6월에 쓴 텃밭 일기다. 오늘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고 ‘호미’에 관해 쓴 이 글이 생각났다. 기사는 영주의 대장간에서 전통 방식으로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경상북도 최고 장인의 호미가 아마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한다. 미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한국산 농기구 ‘영주대장간 호미(Yongju Daejanggan ho-mi)’가 크게 이른바 ‘대박’을 냈다는 것. 국내에서 4000원가량인 이 호미는 아마존에서 14.95~25달러(1만6000원~2만8000원)로 국내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지만, ‘가드닝(gardening·원예)’ 부문 톱10에 오르며 2000개 이상 팔렸다고 한다. ㄱ자로 꺾어진 ‘호미’는 .. 2019.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