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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2 텃밭 농사 ①] 고추 농사는 쉬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by 낮달2018 2022.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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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밭에도 고구마순을 심었는데, 가물어서 살아난 놈이 얼마되지 않았다.
▲ 간신히 살아남은 고구마순. 죽었다고 여긴 순들도 순차적으로 살아났다.

올해는 고추 농사를 쉬어가기로 했다. 지난해엔 고춧가루 22근을 수확하면서 이태째 농사지은 보람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거두기까지 우리 내외가 감당해야 했던 수고가 만만찮았다. 무엇보다 다시 병충해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시시때때로 소환되는 밭일로 나는 일상이 흐트러짐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고추 농사, 스무 근 수확 이루고 접었다]

결론은 일찌감치 1년을 쉬어가는 것으로 정리됐다. 아내는 고구마나 땅콩을 심어서 그거나 거두고 그밖에는 식탁에 오를 만한 채소 몇 가지나 가꾸자고 했다. 올해에 따로 3월 전에 미리 거름을 뿌리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4월께에 퇴비 두 포를 사서 텃밭에 대충 뿌려둔 것은 그래서였다.

 

지난해 수확을 끝내고 버려둔 텃밭에 시금치를 심어놓고 지난겨울을 넘겼더니 새봄에 잘 자란 시금치를 거두어 우리도 먹고, 친구들에게도 조금씩 나눌 수 있었다. 3월 말께 아내는 상추씨를 뿌려둔 밭에, 집에서 싹이 난 감자를 씨감자로 잘라서 한 이랑에 심었다. 시장에서 산 씨감자만 심었지, 손수 씨감자를 자른 게 난생처음이어서 아내는 긴가민가하면서, 싹 안 나면 하는 수 없다며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 감자 두 이랑 사이에 뒤늦게 고추와 가지를 몇 포기 심었다. 오른쪽에 대파, 그 아래 쪽파, 앞쪽으로는 부추, 상추가 자라고 있다.
▲ 흠뻑 물을 주고, 고추와 가지에 지지대를 세운 밭. 일주일 후에는 그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6주가 안 되어서 감자는 두둑마다 싱싱한 가지를 뻗으며 올라왔다. 흙 아래서 감자는 얼마나 굵어지려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걸 바라보기만 해도 기쁘고 좋았다. 아내는 비슷한 시기에 담 밑에다 대파 모종을 두 줄 심고, 그 앞줄에는 쪽파 씨를 심었다. 대파는 이제 중키 정도로 자랐고, 쪽파는 이제 겨우 한 뼘쯤 자랐다.

 

4월 마지막 주에 육묘장에 가서 사 온 고추와 가지 몇 포기와 고구마순을 심었다. 청양고추가 세 포기, 그리고 맵지 않은 놈으로 세 포기, 가지 두 포기를 심었다. 정말 조촐하기 짝이 없지만, 그게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었다.

 

어째 날이 가물다.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와도 찔끔 오고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쯤 밭에 들르니 따로 물 줄 시간도 없다. 다른 작물은 그나마 괜찮은데, 심은 뒤에 물만 조금 주고 온 고구마가 시원찮을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만에 들르니 다섯 이랑 중에 살아남은 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도 모른다고, 물을 흠뻑 주고 돌아왔더니 그날 저녁 비가 좀 왔다.

▲ 고구마를 심은 밭에 뒤늦게 멀칭을 하고, 중간중간에 땅콩을 심었다. 오른쪽 아래 원 안에는 심은 땅콩.

일주일 뒤에 다시 들르니 군데군데 살아난 놈들이 눈에 띈다. 텃밭 농사를 짓는 아내의 친구가 심고 남은 땅콩이 있다며 가져가래서 어제(5.19.) 아내와 받아왔다. 아예 아침에 도시락을 준비해 와서 얻어온 멀칭 비닐을 깔고 땅콩을 심었다. 동시에 고구마밭도 뒤늦게 멀칭을 했다. 비닐을 깔고 구멍을 뚫고 고구마 순을 꺼내주었다.

 

결국 고구마밭인지, 땅콩밭인지 애매모호한, 고구마와 땅콩이 섞인 밭이 되었다. 오랜만에 호스를 대놓고 물도 흠뻑 주었다. 그렇게 오전 작업을 하고 나서 늦은 점심을 먹고, 쉬다가 돌아왔다. 한동안은 잊어도 좋겠다. 안 그래도 오른 기름값, 아내가 기름값으로 사먹는 게 낫지 않으려나 푸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아내나 나나 안다.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지는 말고, 일주일마다 한 번씩 들러 살펴주기만 해도 밭은 임자에게 자신이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걸 돌려준다는 걸. 우리가 군말 없이 밭을 찾는 것도 오직 그래서가 아니던가. [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2022. 5.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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