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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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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殉愛譜) 묘비명과 4월의 신록 동네 뒷산의 순애보 묘비명 “내가 한 십 년쯤 아프기라도 하면 당신은 내가 꼴도 보기 싫겠지?”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내게 불쑥 그렇게 묻더니 대답 따위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듯 아퀴를 지었다. “아니, 십 년이 뭐야, 1년만 자리보전을 해도 진절머릴 낼 거야, 당신은. 틀림없어.”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이 궁해서 웬 뜬금없는 얘기냐고 퉁을 주었더니 아내는 이번에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요기 앞산 어귀에 잘 가꾼 무덤이 있잖우? 등성이 오르기 전에. 거기 비석에 쓰인 글 읽어 본 적 없지? ‘무정한 당신’이라는 그 묘비 말이우.” “글쎄. 그런 묘비명이 있었나?” “그게 말이우. 삼십 년을 병고에 시달렸다는 마누라한테 바치는 묘비명이라는 거 아니우. 세상에 십 년도 .. 2020. 4. 27.
지아비와 함께 편히 쉬시라 김지원 1959~2012.4.26 인간의 삶에서 ‘죽음’을 떼어낼 방법은 없다. ‘낙양성 십 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을 굳이 불러오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고매한 사상가도, 억만금을 가진 부자도, 대중의 사랑을 먹고살던 연예인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선남선녀들도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슬프다. 그러나 우리는 살 만큼 산 ‘자연사’는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인다. 호상(好喪)이란 이름이 따르는 부음이 그것이다. 그 죽음이 더욱더 애틋한 것은 아이들의 죽음이고, 좀 이르게 찾아온 죽음이다. 그것은 ‘자연사’와 달리 쉬 받아들일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4년 전에 우리가 저세상으로 배.. 2020. 4. 26.
목계나루와 신경림의 ‘목계장터’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남한강 강변의 내륙 포구 목계리 어제 우연히 목계 나루터를 다녀왔다. 원주의 토지문학공원을 거쳐 법천사·거돈사 등 절터를 돌아오던 귀갓길에서였다. 원주도 초행이었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들어간 충주 쪽도 낯설기는 매일반이었다. 오후 내내 날씨는 찌푸린 채였고, 네 시가 넘으면서 비가 찔끔찔끔 뿌려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강변을 끼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남한강이었던가. 오른쪽으로 제법 큰 다리 하나를 흘낏 스쳐보았다고 느꼈는데, 눈앞에 ‘목계나루터’라 새긴 거대한 돌비가 튀어 들어왔다. ‘목계’라……, 저게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의 그 ‘목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내 짐작이 맞았다. 목계(牧溪)는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2020. 4. 26.
버스 종점의 할미꽃 우리 동네 버스 종점에 핀 할미꽃 집에서 한 백여 미터를 걸어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시내 여러 방면에서 오는 버스의 종착지니 이른바 종점(終點)이다. 정류장은 지금은 문을 닫은 음식점의 뜰 앞이다. 며칠 전,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 뜰의 수양버들 아래 피어 있는 할미꽃을 만났다. 버스 종점에 핀 할미꽃 올봄, 거의 하루걸러 북봉산을 오르면서도 만나지 못한 할미꽃이다.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어나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지만 정작 할미꽃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할미꽃을 동네에서 만나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거기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할미꽃이 언제부터 귀한 꽃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에 할미꽃은 진달래처럼 지천이었다. 양지바른 무덤들 주위에 다소곳이 피어나던 그 꽃.. 2020. 4. 25.
도심 골짜기에서 ‘도원경(桃源境)’을 만나다 도화 대신 살구꽃, 두엄 냄새의 ‘무릉도원’ 한 열흘쯤 전이다. 오전 쉬는 시간에 교정 안팎을 산책하다가 아닌 ‘무릉도원’을 만났다. 꽤 높은 산기슭에 자리한 학교로 오르는 길은 물매가 제법 센 언덕이다. 정문을 지나 그 내리막길을 허정허정 걷고 있는데 문득 돌린 시선에 그 언덕길 아래 골짜기가 잡혔는데, 세상에……. 언덕길 아래는 꽤 깊은 골짜기다. 반대편은 잡목이 듬성듬성 서 있는 산비탈인데 골짝 안으로는 층층이 밭을 갈아 놓았다. 거기 연분홍빛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채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낮은 골짜기에 내리는 햇살은 눈에 부셨다. 주변에도 몇 그루의 어린나무가 있었지만 만개한 복사꽃은 그것을 굽어보는 행인을 압도해 왔다. 도심에서 만난 ‘무릉도원’ 내려가 볼 만한 짬.. 2020. 4. 24.
‘아기공룡 둘리’, 서른 살이 되었다 ‘아기 공룡 둘리’ 30주년 오늘 아침 컴퓨터를 켜고 구글(www.google.co.kr)에 접속했더니 대문 로고에 낯익은 얼굴들이 떠 있다. 확인해 보니 ‘아기공룡 둘리 탄생 30주년’이다. 아, 이럴 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윤동주와 박완서의 탄생을 기렸던 구글이다. [관련 기사 보기 : 윤동주에서 박완서까지 - 구글 로고의 진화] 구글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문 로고를 통해서 그 나라의 중요한 기념일이나 인물을 꼼꼼히 챙기는, 이른바 열린 ‘마인드’를 보여 왔다. 구글은 설날과 한가위 같은 명절은 물론이고 한글날도 빼놓지 않고 기린다. 비록 그날의 로고를 바꾸는 일시적 형식에 불과하지만, 국가별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구글이 지향하는 개방성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에 따르면 ‘아기.. 2020. 4. 23.
<프레시안>, ‘한글 문패’도 달았다 제호 로고 한글로 바꾸었다 어제도 들어갔고 그제도 들어갔으니, 오늘이 분명하다. 온라인 신문 이야기다. 창간 이래 지금까지 영자로 된 제호 을 고수하던 이 신문이 오늘 처음으로 ‘한글 문패’를 달고 있는 걸 확인했다. 한글 제호를 쓰겠다는 공지도 따로 보이지 않는데도. 초기화면 맨 위 한복판에 떠 있는 한글 제호는 신선하다 못해 신기하다. 진한 감색의 고딕-이탤릭체 글꼴이다.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아주 산뜻한 느낌이 우선이다. 아, 진작 한글 제호를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애당초 이 나라에서 신문 제호는 죄다 한자였다. 그것도 세로쓰기 시절의 관행대로 1면 맨 오른쪽 위에 세로로 썼다. 모르긴 해도 한글 제호를 썼던 신문은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과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제호뿐 아니.. 2020. 4. 23.
한국 ‘2020 언론자유지수’ 42위로 ‘아시아 1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하락세 완전 회복 국경 없는 기자회(RSF : Reporters Without Borders)가 발표한 ‘2020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지난해 41위에 이어 42위를 기록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6, 70위대로 떨어진 순위는 문재인 정부 들면서 40위대를 회복한 뒤 이 순위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31위로 최고 순위를 기록했던 우리나라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하락을 거듭하여 2016년에는 70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 63위로 반등하면서 이후 40위대에 안착했다. 이러한 언론자유지수의 회복은 지난해 국경 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한 것처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자유지수가 크게 떨어진 한국은 문.. 2020. 4. 22.
TK(대구경북)는 언제쯤 ‘김부겸’들을 받아들일까 21대 총선 ‘폭정’과 ‘생지옥’ 내건 통합당 계열 싹쓸이...‘정치적 고립’ 냉정히 성찰해야 미래통합당 소속의 정치인들이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나 ‘폭주’, ‘폭정’ 같은 원색적 표현으로 비난하기 시작한 것은 자유한국당 시절부터였으니 그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표현의 정합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정치인의 언어와 표현이란 그 정치적 편향성만큼이나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했다. ‘폭정’과 ‘생지옥’, 주권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예의 표현은 그들의 주관적 정서이면서 동시에 자당 지지자들에게 상대 정당과 그 정치 행위를 부정적으로 프레임 짓는 의미로서 꽤 기능적일 수 있다. 적어도 같은 언어와 표현을 공유하는 이들의 정치적 세계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틀도 동질적일 .. 2020. 4. 21.
‘미션(mission)’ 유감 ‘미션(mission)’은 ‘과제, 임무’를 완전히 대체했다 바야흐로 ‘미션(mission)’의 시대다. 특히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마다 미션이 넘친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칠팔십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무 망설임 없이 ‘미션’과 ‘도전’을 외쳐댄다. 사람들이 즐겨보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미션은 출연자의 능력을 재는 수단이 되거나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 동참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맛보기도 하는 것 같다. ‘미션’이라고 하면 40대 이상은 80년대에 상영된 같은 이름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터이다. 롤랑 조페 감독의 이 영화는 내용보다 신부로 출연한 로버트 드 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역할과 연기가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미션? ‘신이 내린 성스러운 임무’ 남미 오지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장엄한 영상미.. 2020. 4. 20.
동네 한 바퀴 ② 살구와 명자 지고 사과꽃 피다 4월도 중순, 사과꽃 피다 동네에 핀 꽃을 둘러보면서 쓴 첫 번째 글에서 ‘우리 동네 꽃 지도’ 어쩌고 하면서 건방을 떨었다. 그게 ‘건방’이란 걸 알게 된 것 이즘 들어서다. 늘 다니던 길 대신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꽃나무를 여럿 만났기 때문이다. 고작 그 정도를 둘러보고 ‘지도’를 들먹였으니 건방도 그런 건방이 없다. [관련 글 :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늘 주변을 살피며 다닌다고는 하지만 우리 눈이란 그리 믿을 바가 못 된다. 겨우내 헐벗은 나무를 보면서 그게 피워낼 꽃을 알아보는 데에는 내공이 필요하다. 새 숲길로 다니던 나는 겨우내 이쪽 길은 아무래도 생강나무가 전의 길만 못한 것 같다고 여겼다. 우리가 참꽃이라고 불렀던 진달래도 어쩌다 눈에 띌 뿐이었다. 처음에.. 2020. 4. 19.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를 보내며 1927년 3월 6일 ~ 2014년 4월 17일 어제 오후에 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8~2014)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림프암으로 투병해 왔고, 2012년부터는 치매 증상으로 집필을 중단한 바 있었다. 마르케스는 멕시코시티의 자택에서 아내와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7년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작가로선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노벨상을 받았고, 우리 나이로 치면 여든여덟, 미수(米壽)를 누렸다. 우리 식으로 보면 호상(好喪) 중의 호상이니 의례적 수사는 생략하자. 나는 그의 대표작 을 만났던 스무 살 무렵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번역본으로는 민음사에서 펴낸 (조구호 옮김, 아래 )이 널리 알려졌지만, 내가 처음 만난 은 김병호가 옮기고 육문사.. 2020.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