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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도심 골짜기에서 ‘도원경(桃源境)’을 만나다

by 낮달2018 2020.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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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대신 살구꽃, 두엄 냄새의 ‘무릉도원’

▲  도심 골짜기에서 만난 봄 ,  이 풍경에 압도당한 나는  ‘ 무릉도원 ’ 이 달리 있겠는가 하고 떠벌렸다 .

한 열흘쯤 전이다. 오전 쉬는 시간에 교정 안팎을 산책하다가 아닌 ‘무릉도원’을 만났다. 꽤 높은 산기슭에 자리한 학교로 오르는 길은 물매가 제법 센 언덕이다. 정문을 지나 그 내리막길을 허정허정 걷고 있는데 문득 돌린 시선에 그 언덕길 아래 골짜기가 잡혔는데, 세상에…….

 

언덕길 아래는 꽤 깊은 골짜기다. 반대편은 잡목이 듬성듬성 서 있는 산비탈인데 골짝 안으로는 층층이 밭을 갈아 놓았다. 거기 연분홍빛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채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낮은 골짜기에 내리는 햇살은 눈에 부셨다. 주변에도 몇 그루의 어린나무가 있었지만 만개한 복사꽃은 그것을 굽어보는 행인을 압도해 왔다.

 

도심에서 만난 ‘무릉도원’

 

내려가 볼 만한 짬은 없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두어 장의 사진을 찍는 거로 나는 ‘무릉도원’과의 첫 만남을 갈무리했다. 나는 이 압도적 풍경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서둘러 교무실로 돌아오는데 햇볕이 따가웠고 이마에 땀이 배어났다. 후배 교사와 교정의 꽃을 주제로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기다릴 때 그리 늑장을 부리더니만, 사방이 꽃 천지야.”
“글쎄, 말이에요. 교사 앞은 지고 교사 뒤편은 지금 절정이네요.”
“정문 아래 오른편 골짜기에 복사꽃이 활짝 피었는데, ‘무릉도원’이 따로 없더구먼.”
“가 보셨어요? 정말 그렇데요. 정말 볼 만했습니다.”

▲  ‘ 복사꽃 ’ 이라고 여겼던 꽃은 알고 보니 살구꽃이었다 .  살구꽃은 연분홍 ,  복사꽃은 진분홍이다 .

무르익은 봄은 시대를 초월한다. 요즘 보충 시간에 조선 후기에 널리 불린 잡가 ‘유산가(遊山歌)’를 가르치고 있는데 거기에도 봄은 난만(爛漫)하다.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함’을 뜻하는 난만은 유산가 첫머리의 ‘화란춘성(花爛春城)’과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결과다.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
삼춘가절(三春佳節)이 좋을씨고 도화만발 점점홍(桃花滿發點點紅)이로구나.
어주축수 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이라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예 아니냐.

 

아니나 다를까, 유산가에서도 난만한 봄의 풍경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노래한다. 그 무릉도원은 ‘버들 위를 나는 꾀꼬리’와 ‘꽃 사이를 춤추며 나는 나비’, ‘만발한 복사꽃’으로 황홀하다. 노랑과 흰색, 붉은색의 색채 대비가 어지럽다.

 

무릉도원은 서양 사람들의 ‘유토피아(Utopia)’에 대응하는 동양의 이상향이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듯이 무릉도원도 상상과 동경의 공간이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 속세를 떠난 이상향은 곧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곳’이다.

 

복사꽃 흐드러진 이상향 ‘무릉도원’

 

한 어부가 물에 떠내려오는 복사 꽃잎을 따라 오르다 발견한 이 아름다운 풍경 ‘도원경(桃源境)’은 시인 자신도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라 말한다. 하긴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누가 거기를 그리워하였으랴! 무릉도원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거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 동양의 이상향에 핀 꽃이 복숭아일까. 왜, 하고많은 꽃, 하고많은 과일 가운데 복숭아일까. 복숭아는 동양 문화권에서 불로불사와 신선 세계, 그리고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복숭아와 관련된 신선 설화가 많다.

 

우리 민속에서 복숭아는 장수의 의미도 갖는데 이는 ‘서왕모와 천도복숭아’라는 전설에서 비롯한다. 천도복숭아는 천상에서 열리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장수한다고 한다. 따라서 세속을 떠난 이상향에 도화가 우거져 있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우리 선인들이 복숭아나무가 특별한 주력(呪力)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 ‘축사(逐邪)의 힘’을 지녔다.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고 제상에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시인은 가고 노래만 남았다. 무릉도원의 선경을 일러 ‘도원경’이라 부르면서 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발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마음속에 ‘이어도’를 그리며 살았던 제주 사람들에게 그게 ‘수중 암초’이며, 거기 가라앉혔다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동판 표지의 의미는 어떻게 다가갔을까.

▲  무릉도원 골짜기로 드는 어귀
▲  연분홍 살구꽃은 진분홍 복숭아꽃과 함께 무르익은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

학교 발밑에 납작 엎드려 있는 ‘무릉도원’, 그 ‘도원경’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주 금요일이다. 그러나 정작 거기 가기도 전에 내가 발견한 ‘도원경’은 반 토막이 나 버렸다. 내가 떠벌린 무릉도원 소식에 솔깃해진 부지런한 동료 여교사가 그곳을 일찌감치 다녀왔는데, 그이는 그곳이 ‘도원경’일 수 없다는 천기(?)를 누설해 버렸다.

 

“무릉도원 말이에요. 아까 다녀왔는데 도원이 아녜요. 복숭아가 아니라 살구라 그러더라고요. 거기 일하고 계신 어르신께서…….”

 

옳다. 무릉도원에 복숭아가 없다면 거긴 무릉도원일 수가 없다. 도원경도 가당찮다. 그래도 나는 반 토막이 나 버린 도원경을 찾았다. 사진기를 둘러메고 언덕길을 내려가자 이내 골짜기 어귀에 닿았다. 복숭아가 아니라 ‘살구’라고 가르쳐 준 이가 분명한 노인 한 분이 골짜기의 밭둑에서 굴착기로 밭을 고르고 있었다.

 

복사꽃 아닌 살구꽃과 두엄 냄새의 ‘도원경’

 

골짜기로 들어서자 나를 반긴 것은 밭 곳곳에 뿌려진 두엄 냄새였다. 그리 고약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향기롭다고 할 수는 없는, 곰삭은 향기가 골짜기의 밭떼기에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밭둑 사이로 난 길 오른편의 언덕바지에 내가 복숭아나무라고 오해했던 살구나무 두 그루가 하얗고 풍성하게 꽃을 피우고 서 있었다.

 

노인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밭에 서 있는 나무들에 관해서 물었다. 노인은 ‘이건 살구, 저건 매실 쓰는 청매, 그 위는 홍매’ 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살구를 복숭아로 잘못 알아버린 눈썰미를 부끄러워하며 넌지시 건넸는데 노인은 그걸 너그러이 싸안아 주었다.

 

“복사꽃인 줄 알았는데 살구꽃이라네요. 꽃이 비슷한가요?”
“봄꽃은 다 비슷하니까요.”

▲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동요에서 그려지듯 시골에 복숭아꽃 살구꽃은 흔하디흔한 꽃이었다 .
▲  연분홍 살구꽃 . ‘ 빼어나게 예쁜 젊은 소실 ’ 로 비유될 만한 ,  농익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이다 .
▲  시멘트 위에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돌미나리의 생명력 앞에  ‘ 무릉도원 ’ 이 무색하다 .

한 30분쯤 나는 ‘도화 없는’ 도원경을 이리저리 쏘다녔다. 위에서 이 골짜기를 굽어보면서 느꼈던 어질어질한 감동에서 나는 말짱하게 깨어나 있었다. 두엄 냄새는 코에 익숙해지는 만큼 짙어지는 느낌이었고, 밭에 여기저기 심어진 어린 살구나무와 청, 홍매는 꽃을 피우고 있긴 했지만 어쩐지 도원경을 구성하는 데는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두엄과 섞인 밭이랑의 눅은 흙냄새가 편안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록 흙을 파며 자라지는 않았지만 나는 촌놈이고, 흙과 풀과 두엄이 만나 빚어내는 공기가 낯설지 않은 것이다. 밭 여기저기에 민들레가 총총 올라오고 있었고,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새소리가 들려왔다.

 

아닌 21세기에 무릉도원이라……, 나는 실소했다. 멀리서 보는 풍경이란 늘 이렇게 그럴듯해 보이는 법이다. 나는 골짜기 맨 위의 홍매화를 돌아 골짜기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학교에서 나오는 하수도였다. 좁고 높다란 시멘트 수로를 적실 듯 말 듯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수로를 뛰어 건너다 말고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런, 그 적실 듯 말 듯한 병아리 눈물 같은 물줄기에 대고 풀이 자라고 있었다. 아니, 돌미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하수에 뿌리를 내린 돌미나리의 생명력 앞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오늘의 삶에 ‘무릉도원’ 따위는 없다. 도시 안 무릉도원에는 복숭아 대신 살구꽃이 피어 있었다. 무르익는 봄, 꽃향기와 몸에 감기는 감미로운 바람 대신 두엄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더러운 오수에 뿌리를 내린 고단한 풀의 한살이가 있었을 뿐이다.

 

아닌 무릉도원에서 만난 살구꽃은 참 아름다웠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어린 시절 동요에서 그려지듯 시골에 복숭아꽃 살구꽃은 흔하디흔한 꽃이었다. 진분홍 복숭아꽃과 연분홍 살구꽃으로 무르익는 봄의 고향…….

▲  박완서의 단편  「 그 여자네 집 」 의 배경도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 행촌리 ’ 였다 .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시인은 살구꽃 핀 마을의 따뜻한 인정을 노래했다. 박완서의 단편 「그 여자네 집」의 곱단이네 집에도 큰 살구나무가 서 있었다. 그 여자의 연인 만득이는 ‘개울물이 하얗게 하얗게 실어나르는 살구꽃을 연서처럼 울렁거리며 바라보았을 것’이라 했던가. 맞다, 그 마을은 이름조차 살구 마을, ‘행촌(杏村)’이었지.

 

연분홍 살구꽃 그늘을 지나 이 살구꽃 마을을 떠난다. 떠날 때마다 남는 미련을 갈무리하고 골짜기를 빠져나오는데 아까 만났던 노인이 심상하게 말을 건네왔다.

 

“밤에도 사진 잘 나옵니까?”
“예……?”
“요즘 달이 있어 밤꽃이 좋아서요…….”
“아, 예…….”

 

노인에게 다시 오마고 말하지는 않았다. 노인이 이호우의 시조에 이른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는 걸 그리고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다시 거기를 찾지 못했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살구꽃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늦봄, 도시 안 골짜기에서 만난 ‘무릉도원’은 세월이 지나도 오래 잊지 못하리라.

 

2011. 4.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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