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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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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생각한다 초저녁잠, 노화의 증거?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게 노화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인지 저도 몰래 그 기산점을 늦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잡아 쉰을 넘기면서부터라고 해 두자. 어느 날부터 초저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밤 9시를 전후해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느 날 찾아온 ‘초저녁잠’ 천하에 없는 드라마라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보거나 읽고 있더라도 갑자기 엄습해 오는 잠 앞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고꾸라지면 두어 시간을 죽은 듯 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컷 잤다 싶어서 깨어나면 자정 무렵이다. 밤이 길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 마치 꿈결처럼 다가온다. 전전반측, 옛 국어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한 시간쯤은 기본이고, 운수 사나우.. 2020. 5. 21.
‘복 지리’? ‘복 맑은탕’! ‘복 지리’가 아니라 ‘복 맑은탕’으로 써야 맞다 나는 일본어와는 인연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배웠다. 한 일 년 남짓 배웠나, 기억나는 건 독일어를 가르치던 키 작은 선생님과 독일어 알파벳 ‘아, 베, 체, 데, 게, 하……’, 그리고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가 고작이다. 그 무렵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독일어나 불어를 가르쳤다. 80년대 초반에 부임한 첫 학교에서도 불어를 채택하고 있었다. 몇 해 후에 학력고사 득점에 유리하다면서 일본어로 바꾸기까지 그 여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친 사람은 임용 동기인 여교사였다. 70년대만 해도 독학으로 하는 일본어 공부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데에 워낙 오불관언이었다. 천성이 게으른데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대한 부.. 2020. 5. 20.
장미보다, 다시 찔레꽃 5월, ‘찔레꽃의 계절’ 해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여기저기 찔레꽃을 찾아 나서곤 해 왔다. 철 되면 피는 꽃이 올해라고 달라질 리 없건마는 4월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나는 고개를 빼고 산기슭이나 골짜기를 살펴보곤 하는 것이다. *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2010/05/28) *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2015/05/16) 그러나 찔레꽃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나 반 박자쯤 늦다. 조금 이르다 싶어 잠깐 짬을 두었다 다시 찾으면 이미 그 하얀 꽃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던 게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바빴나, 그저께 며칠 만에 오른 산어귀에서 만난 찔레꽃은 바야흐로 그 절정의 시기를 막 넘고 있는 참이었다. 지난 9일 치른 대선이 ‘장미 대선’.. 2020. 5. 20.
<한겨레> 지령 1만호…그는 우리의 ‘위로와 자부’였다 1988년 5월 15일 창간 후 32년 만에 1만 호 발행... ‘그래 한겨레’를 기대한다 18일 배달된 는 지령 1만 호였다. 1988년 5월 15일,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모토로 창간된 지 햇수로 32년, 날짜로는 1만1692일 만에 가 1만 호를 독자에게 선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1만 호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현관 앞에 배달된 신문을 집어 드는 순간, 32년 전 창간호를 받던 순간의 기억이 등불처럼 켜졌다. 창간 주주로 참여한 , 지령 1만 호 의 창간은 1970년대 와 의 자유 언론 실천 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은 정권에 굴복한 사주에 의해 기자들의 대량 해고로 치달았고, 축출된 기자들은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자유 언론 운동과 민.. 2020. 5. 19.
나들이 못 권하는 봄, 그래도 ‘황매산 철쭉’ 오랜만에 다시 찾은 5월의 황매산... 하늘과 맞닿을 듯한 진분홍빛 화원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연초에 코로나19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리라고 여긴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쯤이야 어느 날 눈 녹듯 스러질 것이고 잠시 멈칫했던 나의 일상은 곧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3월에 각급 학교 개학이 미루어질 때만 해도 사태가 가라앉으리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러나 5월도 중순이건만,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백일을 넘기면서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마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정된 공간.. 2020. 5. 19.
‘나이 듦’ 받아들이기 ‘나이 듦’이든, ‘노화’든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다 며칠 전 일이다. 퇴근하면서 며칠간 미뤄두었던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건강진단에서 나는 고지혈증 의심 판단을 받았고,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난달부터 약을 먹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약이 떨어졌고 새로 약을 처방받으러 다시 병원에 들른 것이다. 내가 들른 병원은 가정의학과 의원이다. 젊은 의사가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긋한 자세로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진료해 주어서 우리 가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조금 불안해지는 기분을 간신히 가누고 있었다. 지난번 진료에서 혈압을 재고 의사는 ‘많이 높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해 치른 두 번의 내시경 검사 때 쟀을 때 정상이었다고 대답하면서 무언가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혈압.. 2020. 5. 19.
[2017 텃밭 일기 ①]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텃밭 농사와 농약, 그 ‘윤리적 딜레마’ 지난해 농사는 좀 늦었었다. 무엇보다 퇴직 이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좌충우돌하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 새 5월이었다. 시기를 놓쳤는데 농사가 되기는 할까, 저어하면서 텃밭에 고추와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은 게 5월 하순이었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 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미리 이랑을 지어 검은 비닐로 씌우는 이른바 ‘멀칭’ 과정을 생략하고 시작한 농사에 우리는 잔뜩 게으름을 피웠던 것 같다. 매주 한 번꼴로 밭을 둘러보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밭에 들르는 일이 뜸해졌던 것이다. 9월 중순께 다시 들렀을 때 텃밭은 바랭이와 쇠비름 같은 풀이 우거져 마치 흉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임자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졌어도 우리 .. 2020. 5. 18.
그는 왜 안동시민에게 주먹밥을 나눠줬을까 ‘5·18 기념 안동 주먹밥 나누기’ 행사 준비한 차명숙씨 이 땅의 슬픈 현대사는 ‘오월’을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계절의 여왕’과 ‘메이퀸’ 따위의 달콤한 어휘로 싱그러웠던 오월은 그러나, 1980년 빛고을의 고통스러운 항쟁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유의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총성과 핏빛으로 거듭 피어났기 때문이다. ‘고정간첩의 사주로 일어난 폭동’에서 ‘사태’를 거쳐 공식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으로 정착했지만, 여전히 빛고을의 오월은 혼란스럽다. 5·18을 ‘민중항쟁’으로 부르는 사람만큼 그것을 ‘사태’와 ‘폭동’으로 이해하는 이의 숫자도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영남 사람들에게 5·18광주민중항쟁은… 스물여덟 돌 5·18을 맞아 5·18 기념재단이 벌인 설문조사 결과, 국민 열 중 하.. 2020. 5. 18.
퇴출?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한다고? 국가보훈처가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나부대다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게 지난해 12월 초순쯤이다. 당시 보도를 보고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라는 글을 썼다.(☞ 글 바로 가기) 보훈처가 들끓는 여론 앞에 무릎을 꿇고 ‘생뚱맞은 계획’을 철회한 것은 잘 아시는 바와 같다. 5·18 민중항쟁 서른 돌을 앞두고 보훈처가 다시 슬그머니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려 는 모양이다. 보도(☞ 기사 바로 가기)에 따르면 오는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공식행사에서는 빠지고 대신 식전행사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행사에서.. 2020. 5. 17.
‘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 정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내치겠다고? 보훈처,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진보진영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민중 의례’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것은 그 노래의 역사성과 노랫말에 어린 격정과 비장미가 참가자들의 마음을 격동케 해 주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은 5·18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으면서 개인적 자아를 역사적 자아로 상승시키는 심리적 체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공식 추모곡’의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도(경향신문 12월 1일 자)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5·18 기념식장에서 부를 ‘5월의 노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가.. 2020. 5. 17.
‘역사’를 거부하는가 - 5·18의 수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뺀 정부 서른세 돌을 맞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수난을 겪고 있다. 반역사, 몰역사적 극우세력의 준동이 일상화된 가운데 수구 종합편성채널조차 비열한 방식으로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에 가담했다. 끝내는 정부에서도 행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빼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 공식 기념곡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그 이유가 거의 만화 수준이다.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 의례 시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이며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2020. 5. 16.
선택, ‘노년의 거취’를 생각한다 노년, ‘요양원’ 과 극단적 선택 일곱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실 때다.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거기서 세상을 떠나셨다. 칠팔 명의,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증의 노인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병실이었는데, 그나마 가족들이 찾아와서 환자를 살펴보고 가는 가족은 몇 되지 않았다. 아내는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한숨과 함께 눈물짓곤 했다. “거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예요. 살아 있기만 하지, 그게 산목숨이야. 송장들이지…….” 그 송장과 다름없는 산목숨 가운데 자신을 낳은 육친이 누워 있고, 그것이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장인어른은 거기서 고단한 당신의 삶의 마감하셨고, 우리는 고향 선영에서 한 줌의 재로 당신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병원.. 2020. 5. 15.